“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죠?” 회사운영상 법무 리스크를 지적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한 브리핑이 끝났을 때, 내게 돌아온 질문이었다. 방금 담당자에게 대응방안을 분명히 이야기한 것 같은데 이상하다….

그렇다, 분명히 이상했다. 낯선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변호사로서 내 역할은 “지금 상황 A에 어떤 위험이 있으니, 하루 속히 A를 B로 바꾸라”고 조언하는 것이었다. A를 어떻게 하면 B로 바꿀 수 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솔직히 생각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조언을 실제로 집행하는 것은 회사 담당자들의 몫일 뿐 나의 역할은 아니라고, 남몰래 ‘분업’ 중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담당자들이 내 말을 듣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던 경우가 가끔 있었다. A보다 B가 낫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고 정작 궁금한 것은 ‘B로 가는 길’이었는데 내가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당혹감이었던 듯하다. 아, “어쩌란 말이냐”는 시그널이었구나….

깨달음을 얻은 즉시 나는 구름 위 신선놀음을 접고 땅 위로 내려오기로 했다. 모든 문제에 대하여 추상적인 해결책 대신, 그 해결책을 실무에 도입할 수 있는 구체적인(down-to-earth) 실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내에 전자계약 체결 솔루션을 새로이 변경 도입하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관성에 따라서 어떤 솔루션이 법무관리의 체계성 및 효율성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지만을 평가하려고 했다. 솔루션별 장단점을 비교하는 식으로. 그런데, 새로운 솔루션을 전사적으로 도입했을 때의 실제 상황을 상상해 보니, 전자계약 체결방식이 복잡하면 이용자 모두가 얼마나 애를 먹을지, 그러다가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라도 나오면 얼마나 민망할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 순간 정신이 번뜩 들면서 접근방식을 바꾸었다. 사내에서 전자계약을 가장 자주 체결하는 사용자들을 선별하여 각 솔루션에 대한 시험사용 기회를 부여하는 한편, 시험사용 자체가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동영상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 배포하는 식으로. 새로운 솔루션 도입이라는 해결책에만 몰두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그 해결책이 조직 내 뿌리내릴 수 있을지 ‘해결책으로 가는 길’을 설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솔루션 도입은 대성공이었다. 이미 리스크를 충분히 실험하고 헷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계약서를 협상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되든 안 되든, 우리 편에 가장 유리한 문구를 만들어 내는 데 전심을 다 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너무 큰 양보를 한다고 느끼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이번 건을 좋은 선례로 삼거나 역으로 나쁜 선례로 남기지 않을 수 있을지 더 고민하게 된다.

이제서야 목표(what)로 가는 길(how)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쑥스럽지만, 이제서라도 그렇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평생 어쩌란 말이냐는 반응만 살 뻔 했으니….

 

 

/임은수 변호사
리디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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