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미국에 있는 회사로 이직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인재들은 국경을 넘나드는구나…. 지인의 목소리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코로나가 모든 기회를 앗아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다행스레 느껴졌다.

나도 2, 3년 전 글로벌 회사의 북아시아 법무 담당자 자리를 제안받고 상하이로 이주한 적이 있다. 약 12명 남짓의 중국인 법조인들로 구성된 리저널 오피스였는데, 외국인은 한국과 일본 법무를 담당하는 내가 유일했다. 사실 낯선 환경과 팀 내 유일한 외국인이라는 점이 조금 두렵기는 했지만, 워낙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상 그 또한 즐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도전해 보았다.

가서 지내보니, ‘법무’도 법조인 간에는 ‘만국공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덜란드계 회사였고 남아시아 법무 허브가 싱가포르에 있었기 때문에, 유럽, 싱가포르 등지의 변호사들과 긴밀히 일했는데, 관할지역의 법제는 다 달랐지만 그 법을 관통하는 배경과 취지가 일맥상통하기 때문인지, 공통의 화두가 많았고 서로가 척하면 딱 알아듣는 순간이 많이 있었다. 이는 한국 변호사는 철저히 한국법의 테두리 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예컨대, 네덜란드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M&A 계약이나 싱가포르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대리점계약은 내가 일상적으로 보던 계약들과 대동소이했기 때문에 검토를 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고, 다만 네덜란드법상 기업결합심사나 싱가포르법상 공급자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대한 규제와 같이, 사적자치가 제한되는 부분 위주로 현지법 스크리닝을 받으면 되는 정도였다. 한편, 해외 변호사들도 의외로 타법에 관심이 많았고, 서로가 새로운 관점을 들려주는 것을 즐기는 눈치였다. 코로나로 인하여 ‘불가항력’과 같은 만국 공통의 이슈가 터지자 더더욱 다른 지역에서의 대응을 알고 싶어 했는데, 이러한 상황은 내게 좋은 발언 찬스를 가져다주곤 했다.

이처럼 적극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글로벌 회사에서 한국은 그다지 큰 시장이 아니다. 실제로 중요도 면에서 중국, 인도, 일본 다음인 경우가 많다. 이때 한국 변호사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관할’에 얽매이지 않고, ‘리걸 마인드’가 필요한 가능한 모든 사안에 대하여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법무 이외의 영역이라도 말이다. 예컨대,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미국 증시에서 회사의 등급을 결정하는 주요지표가 되는 관계로, 전 세계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향상시키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아시아 대표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글로벌적 관점을 가지고, 법무 운영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글로벌 회사는 한국 변호사가 아니라, 1인분의 변호사, 나아가 일당백의 변호사를 원한다.

 

 

/임은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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