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 정치인 쑹메이링은 1943년 뉴욕에서 연설할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현재를 살며 미래를 꿈꿉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합니다(We live in the present and dream of the future, but we learn the eternal truth from the past).”

청나라의 강희, 옹정, 건륭 3대에 걸친 번영의 시대를 일컬어 ‘강건성세’라고 한다. 그렇지만 건륭제는 당시 영국의 끈질긴 무역협상 시도에도 불구하고 광동 외의 교역을 금하며 쇄국정책을 펼친 장본인이기도 하다. 건륭제는 “청은 부족한 것이 없다(地大博物)”고 쇄국의 이유를 댔지만, 사실 그는 유럽의 과학과 기술이 굉장히 발전했으며, 무역 관세는 청나라 국고에 도움이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당시 이미 광동 한 곳에서 발생하는 연간 관세 수입이 청나라 궁중 연간 총경비의 약 두 배였다). 건륭제가 쇄국을 고집한 것은 중화사상에 젖어서가 아니라 다른 문물의 유입이 현상유지에 불리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던 것이다. 청나라의 체제 유지에는 황제에 대한 백성들의 맹목적 충성 및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황제의 통제권이 필수불가결한데, 백성들이 자유롭게 외세와 접촉하게 되면 통제권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건륭제는 자신이 누린 절대적인 통제권이 후세에도 유지되길 원하며 쇄국을 한 것이다. 후세 황제들도 쇄국을 고집하다 열강들의 무력에 의해 개항이 진행된바, 그 확대된 교역의 과실은 청나라 국고를 채우지 못하고 배상금 명목으로 열강들에게 바로 흘러갔다. 이렇게 청 제국은 망국의 길을 간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순간 대부분 퇴보가 일어난다. 이는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다. 진화학에는 붉은 여왕 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환경이 동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선 제자리에 있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역사서를 읽다 보면 변호사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퇴보하지 않고 진보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최은미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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