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는 녹취록과 다르다. 사람의 말을 그대로 적지 않고, 작성자가 질문과 답변을 적절하게 수정한다. 작성자가 기계가 아닌 이상 조서를 작성하는 주관적인 의도가 편집 과정에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말을 그대로 적은 녹취록이라도 그 내용이 진실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편파, 허위, 왜곡, 과장된 기억이 온전히 담겨 있는 녹취록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일 뿐이다.

경찰 부인, 검찰 자백, 법정 부인인 사건이 있었다. 피고인은 검찰 조사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이 없는데 조서가 이상하게 작성돼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실질적 진정 성립을 전부 부동의했다. 변호인의 이례적인 주장에 법정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럴 순 없다면서 부동의 하는 부분을 특정하라고 검사가 요청하고, 재판부도 같은 취지로 거들었다.

괜히 까다롭게 군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 보았다. 단순한 물리적인 진술의 결합은 특정할 수 있지만, 뉘앙스가 녹아 있는 화학적인 진술의 결합은 특정할 수 없다. 관련 논문도 제출해 보고, 공동피고인에 대한 증인 지위에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진정 성립하려는 검사의 시도도 막아보았다. 결국 조서의 증거 신청은 기각되었다. 그러나 피고인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하는 조마조마함과 영상녹화물로 증명해야 할 검사의 책임을 나 혼자 짊어진 것 같은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이와는 달리 현재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에서 아동·청소년의 진술 녹취록에 대해서는 특별한 견제 장치가 없다. 조사 과정에서 동석자가 있는 한 조사 영상과 그 녹취록은 사실상 절대적인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조사 영상대로 아동·청소년의 진술이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객관 의무를 갖고 기억의 왜곡을 반대 신문에 준하는 수준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볼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전담하는 법정에선 아동·청소년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변호인과 반대하는 검사가 항상 크고 작은 실랑이를 벌인다. 그럼 도대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게 뭐냐는 자조 섞인 발언도 이어진다. 재판부에 따라서는 변론 종결 이후 의심스러울 때 직권으로 아동·청소년을 증인 신문하는 합리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피고인의 기본적인 방어권인 고소인에 대한 반대신문권 행사 여부를 재판부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던져보게 된다.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는 머지않아 내용 부인이 가능하게 되지만, 아동·청소년 성범죄 사건의 고소인신문조서는 여전히 제도적인 문제가 남는다. 법률개정이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절차가 있지만, 여론의 호응은 미지수다. 조서든 녹취록이든 불완전한 기억의 일부분일 뿐이다. 고소인의 의도적인 거짓말 혹은 비의도적인 기억의 왜곡은 조서나 녹취록만 봐서는 찾아내기 어렵다. 무기대등의 원칙에 맞게 법정에서 각자 자신의 기억에 오류가 없는지 검증하는 것. 기록 너머에 있는 진실을 찾기 위해 형사법의 본질을 되돌아보자.

 

 

/노승민 변호사·경기북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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