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네’는 정식 상호명이 아니었고, 한 할머니께서 내가 다니던 법학전문대학원 캠퍼스 바로 뒤쪽에 간판 없이 쭉 영업을 해오셨기에 모두들 ‘할머니네’라고 불렀다. 기숙사에서 살며 캠퍼스 담장을 넘지 않던 나와 친구들은 교내식당이 문을 닫는 공휴일이면 매번 ‘할머니네’를 찾았다. 할머니네 메뉴는 백반, 국수, 부침개가 있었고 가격은 각 5000원이었다. 나는 항상 부침개가 먹고 싶었지만, 수험생에게 과식은 좋지 않다는 생각과 밥값이 두 배가 된다는 생각에 매번 고민하다가 시키지 않았다.

변호사시험을 앞둔 추석 연휴 첫날에 ‘할머니네’를 가서 밥을 먹으며 우리들은 추석 당일의 끼니를 고민했다. 그래서 밥을 다 먹어갈 때 즈음 할머니께 “내일은 문 안 여시죠?”라고 여쭤봤다. 할머니는 잠시 가만히 계시다가 “내일도 해야지”라고 하셨다. 그러고서는 혼잣말처럼 “내가 안 열면 너희는 밥 어디서 먹냐”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다시 ‘할머니네’를 갔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우리 탁자에 와서 부침개를 올려놓으셨다.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무심한 말투로 “무슨 시험이길래 추석 때 전도 못 먹고 공부를 하누”라고 말씀을 하시곤 뒤돌아 가셨다. 우리는 감사인사를 하고 부침개를 먹기 시작했다. 부침개는 내가 그간 상상해왔던 대로 맛있었고, 따끈했다.

이듬해 변호사가 된 나는 정신없이 바뀐 생활에 적응하면서도 종종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러다 그해 연말 한 교수님을 통해 할머니의 부고를 뒤늦게 들었다.

얼마 전에 본 드라마에서 한 신부가 이런 말을 하였다. 성서에 나오는 천국과 지옥이란 형이하학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서 선하고 좋은 모습으로 회상된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간 것이지만 악한 모습으로 기억된다면 그 사람은 지옥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그 대사를 들으며 할머니네를 떠올렸다. 나의 작은 기억이 그 날 따끈한 밥과 부침개를 먹게 해준 할머니를 천국에 있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은미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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