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판례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통하여 법률지식을 쌓고 각종 교양서적을 읽어가야만 하는 법조인으로서의 나의 삶에, 획기적으로 새로운 마인드를 낳게 한 고전을 최근 것부터 역순하여 보면 능엄경, 논어, 신약성서, 도덕경, 주역 등이다. 여덟 명의 선녀와 한 명의 나무꾼이 만나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어떻게 주역의 근본 중 하나인 음양론을 착안하게 되었을까 회고하여 본다.

나는 약 30여 년 전부터 청주 북부지역의 넓은 들을 가로지르는 하천 위에 설치된 ‘팔결(八結)’ 다리에 대하여, 왜 ‘팔결’일까하는 문제의식을 평소 화두처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금강산 관광을 가서 상팔담과 구룡폭포에 대한 북한 제작의 비디오 영상물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왜냐하면 아홉 마리의 용이 등장한다는 것은 싸움을 내포하는 것이고, 이런 싸움의 개념이 유용한 것은 통상 풍수에서 오룡쟁주형(五龍爭珠型)이니 구룡쟁주형(九龍爭珠型)으로 논하여 명당혈처인 주(珠)를 도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청년 시절부터 주역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로부터 약 10년이 경과하는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주역 원문에 대한 문리가 트이는 것 같았는데, 아직도 기회가 되어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주역의 괘를 살펴보면 양(―)은 구(九)로 표시하고, 음()은 육(六)으로 표시한다. 음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양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때 음양이 화합할 수 있다. 음인 ‘六’이 거꾸로 서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양인 ‘―’이 아래에서 그대로 위로 올라가면서 합일(合一)이 될 때, 그 합일된 현상에서 나타나는 모양은 ‘거꾸로 된 팔’ ‘하늘에서 내려오는 팔’ 바로 상팔(上八)인 것이다.

이것이 팔결에 관한 화두와 이와는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주역에 관한 기초지식이 우연한 기회에 묘하게 합쳐지면서 발명(發明)된 상팔과 구룡에 관한 이치이다. 팔결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하천의 두 갈래 흐름이 하나로 합쳐져 흐르는 지형이니, 바로 “팔(八)자 모양으로 결(結)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이나 폭포 등에 구룡과 상팔이라는 이름이 들어있으면 늘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내려온다. 용이라는 개념은 물줄기나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기(氣)를 내포하는 것이니, 그와 같이 합일된 결과의 산물로 그 문화(文化)의 외연을 확장하면 여의주라는 개념도 자연히 나오게 된다. 이러한 사례가 “유명(有名)은 천지모(天地母)”라는 도덕경의 문구에 따른 명명(命名)의 한 이치이며, 음양이 합교(合交)하여 생물(生物)한 결과로 성공(成功)을 이룬다는 주역의 한 논리이다.

천지 만물 중에서 하늘에서 내려올만한 진귀한 이름에는 팔이라는 개념이 들어가니, 선녀도 팔선녀이고 신선도 팔선이다. 더 나아가 관동팔경, 양산팔경, 팔공산, 팔봉산, 팔만대장경, 팔기군 등도 그렇게 된 것이다. 육당 최남선 선생의 금강예찬을 찾아보면 구룡폭포 위로 여덟 개의 담이 형상을 이루고 있는데, 그 이름은 흑룡, 비파(청룡), 벽파(碧波), 분설(噴雪), 진주, 귀(龜), 선(船),화룡 등이다. 옛 사람을 흉내 내어 하나의 게송을 말하자면, 상팔(上八)은 모궁(母宮)이요 구룡(九龍)은 현두(顯頭)이거늘 그 현묘(玄妙)한 용(用)으로 돌장승이 애를 낳는 이치가 아니겠는가?

 

 

/김병철 변호사

충북회·법무법인 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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