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다만,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자살은 고의·자해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업무상의 원인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일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된다. 여기서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란 업무상 과로, 스트레스 등 업무상 원인으로 인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발병하거나 악화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를 의미한다.

판례는 업무로 받는 스트레스가 “사회평균인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여야 업무와 자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최근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친 경우에도,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1, 2심은 “망인이 다른 지점장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한 업무를 수행했다거나 특별히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업무상 스트레스가 객관적으로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심화시킬 정도로 극심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망인의 자살에는 업무상 스트레스라는 객관적 요인 외에 이를 받아들이는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도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한편 업무상 원인으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발병 또는 악화된 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간명한 방법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 및 치료 받은 의무기록을 제출하는 것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기록이 없는데 산재 신청을 하면, 근로복지공단은 “정신질환 상태에 있었다고 볼 만한 근거가 부족하여 업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산재가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정신건강의학과 의무기록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런 경우 의무기록 이외의 자료(생전에 남긴 수첩 및 일기, 동료근로자와 유가족의 진술 등)를 통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음을 입증할 수밖에 없다.

 
 
 
/윤미영 산재 전문변호사·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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