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일요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기습남침으로 발발된 동족상잔 비극은 아직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남북 양측과 UN군, 중공군을 포함하여 수백만 사상자가 발생했다. 우리 법조계도 당시 전직 대법원장을 비롯해 남한 변호사의 30% 가까이 강제 납북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 평화와 번영은 이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과거 기억을 너무 쉽게 잊곤 하지만, 오늘날 세계 10위 경제대국, 6대 수출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당시 자유의 가치를 지키려 모인 UN 참전 22개국이 함께 건설한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이후 우리 국민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인류 보편의 인권 존중 가치를 꾸준히 발전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글로벌 한류를 주도하여 세계최고 수준의 문화국가로 발돋움했다. 이는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국민 모두의 염원이 모인 합심(合心)의 작품이다.

우리는 결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북한 정권의 군사위협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반만년 살아온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지키려면 자유와 창의를 박탈하는 개인숭배나 선군사상이 우선시 되는 전체주의가 더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인간존엄’의 헌법정신과 인본주의(人本主義)를 한반도 전역에 뿌리내려야 한다.

지난달에 이어 ‘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주제로 칼럼을 쓰려던 당초 목적은, 2011년 헌법재판소 위안부 판결과 2017년 대법원 강제징용공 판결 이후 악화된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을 찾고, 그 대안으로 2014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헌법재판관회의에서 제안된 ‘아시아인권재판소’ 설립구상을 되새겨 보려는 생각이었다. 유독 아시아 지역에는 유럽과 미주, 아프리카와 달리 지역별 인권재판소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사실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판결은 당시로선 시대를 앞서는 선견지명이자 혜안이었다. 국제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가에 의한 여성인권의 중대한 침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존중의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대다수가 미래지향적인 아시아인권재판소 창설 제안을 지지하였다. 다만 일본 정부는 무관심하며 암묵적 반대를 하고 있다. 만약 아시아 지역의 국제 인권재판이 활성화되면 일본의 국가책임이 강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주권국가의 법원판결을 타국 또는 타국 기업에 집행하는 문제는 양국 갈등과 대립이 불가피하며, 그보다는 국제 인권재판을 활성화해서 자유민주국가 공통의 기본가치인 보편적 인권 보장을 추구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길이다.

그런 점에서 제5기 헌법재판관들의 고뇌와 숙고 끝에 제안된 아시아인권재판소 설립이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 부디 아시아 전역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한·일 양국 지도자들의 깊은 각성이 뒤따르기 바란다.

 
 
/정진섭 변호사

서울회, 법률사무소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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