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는 것은 순간이다. 바뀐 세상은 봄꽃 피듯 아무도 모르게 오지만, 어느 순간 용암이 폭발하듯 우리 앞에 우뚝 솟아오른다. 대한민국이 바뀌고 있다. 아니 완전히 바뀌었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변화의 끝에 검찰과 사법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지, 법률가집단이 숨을 헐떡거리며 뒤쫓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되돌아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시민이 마지막 촛불을 든 것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로 빚어진 서초사거리 십자가 시위 때였다. 그 십자가 시위의 본질은 수사의 ‘정도(正道)’와 ‘정도(程度)’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꾸중이었다. 지은 죄에 대한 ‘범죄와 처벌의 적정성’에 대한 국민적 의문의 표출이었다. 한명숙 전 총리 관련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검찰의 모해위증교사 여부가 시한폭탄의 뇌관이 되려 한다. 진위 여부야 조사 결과 밝혀지겠지만, 스스로 위증하였다며 양심고백을 한 이가 비망록을 남긴 한만호 씨에 이어 두 명이나 더 나타난 것은 사태의 위중성과 심각성을 나타내는 방증이라 하겠다. 더군다나 그들이 증언한 뒤 9년여 시간이 흐른 후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시간에 전혀 상의 없이 의식의 교감이 이루어져 따로따로 폭로에 나섰다는 것은 그들이 본능적으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내가 말을 하면 세상의 귀가 열릴 것이다”라는 자각 같은 것 말이다. 봄꽃 피듯 어딘가에서부터 귀가 열려 신원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세상, 우리는 지금 그 경계를 지나고 있다. 피야 좀 흘리겠지만, 그 경계 너머는 분명 새로운 세상일 것이다.

두려움은 침묵에 기생한다. 두려움을 쫓아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말을 하는 것이다. 어떠한 폭력이나 위협도 말 앞에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촛불로 상징되는 세상의 변화는, 태극기로 상징되는 세상의 지킴은 모두 말 속에서 피어나는 다른 종류의 꽃이다. 세상의 수많은 직업군 중 법률가만큼 거짓과 직면한, 거짓과 더불어 살아가는 직업군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거짓을 밝히고 정의를 세워 세상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진실을 감추는 것, 불의와 타협하라는 것의 반의적 표현이 내재되어 있음을 우리 모두는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거짓을 그럴싸한 진실로 호도하는 스토리텔러들이 넘쳐나고 있다. 거짓을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각색할 때도 있다. 진실과 거짓 사이의 외줄타기는 모든 법률가들의 숙명이지만, 고맙게도 정반합의 원리 또한 또 다른 원리로 작동하고 있음은 감사할 일이다.

침묵이 더이상 침묵으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 모든 언행이 기록되어 역사가 되는 세상, 그 바뀐 세상을 우리 법률가들이 벼락 맞듯 세상보다 앞장서 깊이 깨달았으면 한다.

 
 
/오시영 변호사

전 숭실대학교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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