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어느 날, 신문 기사 검색 프로그램에서 ‘관계자’가 들어간 기사를 검색해본다. 800건 이상이다. 방송 기사까지 검색해본다면 숫자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기사까지 고려해본다면 하루 동안 우리나라 언론에 등장하는 관계자 기사는 1000건에 육박하리라.

관계자를 수식하는 표현도 다양하다. 핵심 관계자, 고위 관계자,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 관계자는 청와대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의중을 알고 있고, 검찰에선 내부의 분위기를 꿰고 있다. 그러나 관계자는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관계자는 어느 곳에나 있지만 아무데도 없다. 검찰과 청와대의 충돌,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 국면에서도 관계자는 등장했다. 관계자들은 불쾌감과 서운함을 표시하고, 상대 기관을 향해 독설의 날을 세웠다. 기관의 공식 입장은 아니기에 발언에 대한 책임의 무게는 새털처럼 가볍지만, 언론을 통해 퍼져나가는 말의 파문은 컸다.

실명이 드러나지 않는 취재원의 말은 과장되기 쉬우며, 주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언론이 익명 관계자의 말을 좇다보면, 권력 기관의 갈등 같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근원적 해법을 모색하기보다 관계자의 입을 빌려 갈등을 중계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언론이 관계자 인용 관행을 끊어내기는 쉽지 않다. 권력 기관 당국자들이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익명을 이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기관의 내부 분위기를 귀띔해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에 좋다. “청와대 관계자 발끈” “검찰 관계자 부글부글”이라는 관용구는 청와대나 검찰을 지지하는 여론을 결속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기자들에게도 관계자의 유혹은 강렬하다. 관계자 발언은 사후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자가 실명이 드러나지 않는 취재원의 발언을 기사의 의도대로 적절히 취사선택해서 배열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익명 관계자 보도의 이런 위험 때문에 외국 유력 언론사들은 익명 관계자 인용을 꺼린다. 딘 베케이 뉴욕타임스 편집국장은 2016년 3월, 익명 취재원 발언을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라는 지침을 사내에 공지했다. ‘익명 관계자 인용’은 최후의 수단일 뿐, 취재원은 실명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 관계자의 등장이 현안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딘 베케이 편집국장은 익명 취재원이 제공하는 ‘소스’는 정보일 뿐 의견 제시나 추측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익명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당국자들, 익명 관계자 의견을 무시로 인용하는 기자들이 살펴봐야 할 뉴욕타임스의 공지사항이다. 그 기자들 중 한 명인 나 역시 관계자와 이별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이권열 MB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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