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시간의 무지개를 타고 조금씩 사라져가는 존재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묻고, 시간의 무지개를 함께 하는 무의식의 동행자에게도 물어야 한다. 물론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은 없다. 묻는 내가, 스스로 누구인지 모르고, 질문을 받은 이 역시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조금씩 희미해져가면서 의지하는 시간의 무지개는 무색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일곱 빛깔 무지개인 게 분명하다. 아니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빛깔일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우리 법률가 집단은 시간의 무지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가장 골치 아픈 집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검찰권 남용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가해지면서 더욱 그러하다.

최고의 감성은 최고의 지성, 즉 이성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뇌는 교육받고 훈련받은 대로 반응하기 때문에 지식의 축적으로 형성된 지성에 바탕하여 이성을 개발하고, 그 이성에 기초하여 감성으로 감응하게 된다. 그런데 최고의 이성은 최고의 감성에서 나오지 않아 문제다. 이성이 감성의 도움 받기를 거절하면 그 이성은 더욱 단단한 콘크리트가 되어 버리거나 극단적으로 세포화 되어 산산이 부서져 버리게 된다. 감성과 이성의 부조화가 빚는 비극이다. 법률가들이 그 중심에 위치해 있을 개연성이 참으로 높다.

최근 국민의 가장 많은 지탄을 받는 집단이 누구일까? 우리 법률가 집단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윤석열 총장 체제의 검찰이 최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무엇 때문일까? 검찰로서는 지금의 자신들이 가장 공명정대하게 범죄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는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느냐며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억울함의 꼭짓점에 시간의 무지개를 타고 있는 검찰의 자기인식부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이다.

검찰은 임명직이라는 한계가 있다. 임명직 공무원은 어느 누구보다 시간의 무지개의 무게를 깊이 자각하여야 한다. 검찰의 비극은 자신들의 검찰권이 본질적으로 주어진 절대권력인 양 착각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지혜로운 자는 임명직의 한계를 인식하고 타인이 조종하는 시간의 무지개에 올라탄 승객일 뿐이라며 겸손하게 된다. 이를 망각할 때 모든 관객이 지켜보는 무대 위에서 우스꽝스러운 광대 연기를 하고 있음을 자신만 알지 못하는 피에로가 되고 만다.

우리 모두는 허공 중 물방울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져버릴 시간의 무지개를 타고 있다. 인생의 홍예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배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다고 마냥 홍예다리 위에 서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따뜻한 겸손함으로 한 해를 시작했으면 한다.

 

 

/오시영 변호사

서울회, 법무법인 동서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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