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간다. 설악산자락을 따라 단풍이 물들어가는 즈음, 우리는 서초동 법조사거리가 황금빛 조명의 촛불십자가로 변하는 경험을 하였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의 집요한 수사과정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표출되는 모습이었다.

십자가는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예수라는 한 젊은 혁명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 그 부활의 정신은 기독교정신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졌고, 서구 사회의 2000년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러한 십자가가 ‘죄와 벌’이 교차하는 서초동 법조사거리에서 국민의 촛불로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과연 저 촛불십자가가 이 시점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타오르고 있는지 우려 반 신뢰 반의 묘한 심정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오래 전 변협 상임집행부 일을 하면서, 변협이야말로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십자가라는 자부심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정부가 국정을 잘못 운영하거나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때 변협이 앞장서서 정론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변협은 그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사회현상에 대해 침묵하거나 무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간접민주주의제도의 장점들이 정치권에 의해 무력화되면서 국민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며 광장으로 몰려나오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 광화문 광장이 자칭 보수지킴이 광장으로, 서초동 법조사거리가 자칭 진보의 십자가 광장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렇게 이중적으로 분열된 사회가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은 분노와 갈등을 키우고 있는지, 이러한 충돌가치를 어떻게 통합시켜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변협이 앞장서서 그러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변협의 자세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는 로스쿨 제도의 도입에 따른 법조인 공급 과잉이라는 현실문제가 내재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인들마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경제적 문제에 함몰되어 “내 코가 석자”라며 허우적거리기만 한다면 과연 누가 정의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겠는가 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지금 국회에서는 패스트트랙 절차를 밟은 공수처 설치법안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여야가 공수처 설치에 대한 견해가 너무 달라 첨예하게 대립 중이지만, 소위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수사대상이 된 국회의원들이 많다 보니 본회의 상정 과정에 크게 물리적 충돌은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21세기 5G문화는 우리를 직접민주주의의 광장으로 유혹하지만 국민적 절제와 자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변협이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공익적 기능을 담당해 주기를 기대한다.

 

 

/오시영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동서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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