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정년을 마치고 두 번째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면서 오래 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던 때가 생각난다. 변호사실에 ‘무전무죄(無錢無罪)’라는 휘호를 내걸고, 수임료 때문에 사건 수임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겠다는 각오를 했었다. 지금도 저 휘호는 내 서재에 겸손하게 걸려 있다.

하지만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 현실 속에서 과연 저 휘호가 두 번째 개업하는 필자에게 여전한 가치를 발휘할지 자신이 없다. 변호사시장이 포화상태에 있다는 근간의 소식을 접하면서 변호사로서 살아간다는 게 ‘정글 속 한 마리 맹수’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심히 두렵다. 청년들에게 법률지식과 법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시키려 애써 온 교수생활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인터넷 발달로 바둑 인구가 증가 추세에 있지만 요즘 젊은 변호사들은 바둑을 많이 두지 않는 듯하다. 다양한 취미생활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실을 처음 개업하던 당시 바둑판 하나 정도는 필수품이었고, 재판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옆 방 선배 변호사님과 바둑을 두며 인생과 재판 경험을 나누고, 간혹 가다 내기바둑으로 식사를 사기도 하는 등 바둑은 좋은 친교의 수단이기도 하였다.

바둑의 장점은 몇수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까닭에 재판과정에서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며 재공격해야 하는 변호사로서는 몇수 앞을 내다보며 결정적 순간까지 히든카드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포커페이스가 필요하다. 바둑은 그런 수읽기 훈련 수단으로 참으로 유익하다. 재판과 바둑의 진행과정은 그런 점에서 많이 닮았다.

변호사는 본질적으로 파이터(Fighter)이다. 마치 ‘Ultimate Fighting Cham pionship(UFC)’의 격투기 선수처럼 승패가 결정날 때까지 처절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특이한 직업이다. 그것도 용병처럼 의뢰인의 승리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면 마음이 메마르거나 조급해지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황폐해질 수도 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연세 많은 법조인 얼굴에서 편안함을 발견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문단 말석의 등단시인으로 시를 종종 발표하는 필자로서는 좋은 시를 골라 읽음으로써 법률가의 건조한 심성을 순화하려 애를 써왔다. 이제 9월이고, 곧이어 추석명절이다. 우리 마음이 은은한 보름달처럼 평온해질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한권의 시집을 사보는 것은 어떨까? 가까운 친지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이다. 만원도 되지 않은 저렴한 시집의 대가는 잔잔한 감동의 풍요로 나타나리라 믿는다. 인공지능바둑 알파고와의 4국에서의 이세돌의 ‘신묘한 78수’를 묵상하는 가을맞이가 되었으면 한다.

/오시영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동서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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