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술에 만취한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는가 아니면 그는 자유의지로 술에 만취했는가. 최근 잇달아 일어난 대형 음주사고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다.

지난 8월 유명 뮤지컬 배우의 남편인 황민씨는 만취상태에서 강변북로를 따라 운전하다가 정차된 트럭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브로드웨이를 꿈꾸던 2명의 젊은 뮤지컬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지날 9월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박모씨가 만취상태에서 차를 몰아 휴가를 나온 카투사 장병 윤창호씨를 난간 아래로 떨어뜨렸다. 검사가 꿈이었던 윤씨는 현재 사실상 뇌사상태다.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먼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개정해서 음주나 약물로 인한 범죄를 가중처벌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우리 형법에서는 계획적인 범죄와 우발적인 범죄의 법정형이 같다. 음주나 약물로 인한 범죄를 계획적인 범죄보다 일률적으로 더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형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든다.

성폭력처벌법과 청소년성보호법에서는 음주나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범죄를 범한 때에는 형법과 달리 형을 감경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을 일부 다른 개별범죄로 확대하자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별법으로 대응하는 것은 형평성 관점에서 큰 문제를 발생시킨다. 피해자의 고통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살인이 성폭행보다 나쁜 범죄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음주로 심신미약 상태에 빠져 사람을 죽이면 반드시 형을 감경하는데, 성폭행을 하면 감경하지 않을 수 있다.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차별인지 선뜻 설명하기 어렵다. 일부 다른 개별범죄에만 이 규정을 확대하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별법이 아닌 형법 개정안으로는 독일과 같이 형법상 심신미약을 임의적 감경 사유로 개정하자는 견해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조현병, 우울증, 강압에 의한 음주나 약물 등 의도하지 않은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한 범죄의 양형도 법관의 재량에 맡겨도 좋은지 보다 고민이 필요하다.

따라서 모든 범죄에 통일된 해석을 유지하면서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타당성을 도모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성범죄와 폭력범죄 등 일부 범죄에 대한 대법원 양형기준에 의하면, 음주로 인한 범행을 예견하고 자의로 만취 상태에 빠진 경우에는 가중 처벌하도록 하고 있고, 단순 만취 상태 범죄도 감경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음주범죄에 대한 이러한 양형기준을 음주 후 범하기 쉬운 다른 종류의 범죄 즉, 절도, 강도, 약취·유인·인신매매, 방화 등에 확대해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점은 양형기준은 권고사항이어서 이를 따르지 않은 재판이 존재할 수 있고, 작량감경으로 음주범죄에 대한 선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변호인과 일정한 연고 관계가 있으면 의무적으로 재판부를 재배당하는 예규를 정비할 필요가 있고, 국민 참여재판의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사법신뢰가 바로서지 않으면 책임주의 원칙도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과만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 근대 형법의 소중한 가치는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

 

/노승민 변호사·경기북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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