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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선> 성폭력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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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20-01-20 16:11:05
조회수
540
성폭력범




서초경찰서 조사실
소설가 선생은 강력계 형사로부터 배달된 출석요구서를 받고 (그 출석요구서에는 ‘출석요구에 정당한 이유없이 불응하면 체포될 수 있고, 신문에 변호인의 참여가 보장되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언제까지 서초경찰서 조사실로 출두하라는 것 외에는 죄명이라든가 다른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또한 전화로 출두 시간에 관해 담당 형사와 상의한 후 출석해서 조사를 받았다.
젊은 형사는 어떤 여성으로부터 성폭력범으로 고소장이 접수되었고 이미 고소인 조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적용된 법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약칭:성폭력처벌법) 제11조가 규정한 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에 해당하고 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피의자가 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형사는 먼저 엄숙하게 “첫째, 귀하는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귀하가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합니다. 셋째, 귀하가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넷째, 귀하가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후, 또 다시 “피의자는 위와 같은 권리들이 있음을 고지받았는가요?”라고 물었고 그는 “예, 고지받은 사실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형사는 다시 “피의자는 진술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요?”라고 물었고 그는 “사실대로 진술하고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형사는 다시 “피의자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행사할 것인가요?”라고 물었고 그는 “변호사의 조력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형사와 그는 피의사실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임의문답 하였다.

문 : 피의자는 2020년 1월 18일, 그날은 토요일인데 오후 3시 21분경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서 중앙보훈병원으로 가는 9호선 상행선을 탑승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시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그 시경 9호선을 탄 사실은 있습니다.
문 : 그때 피의자는 완행열차가 아니라 급행열차를 탄 사실이 있지요. 그리고 급행열차 안은 몹시 혼잡하였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그때 피의자는 급행열차의 4호 칸의 4번 문 (4-4)에서 탑승하였지요.
답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4-4에서 탔는지는 정확지 않네요.
문 : 고소인은 동작역에서 탑승하여 4호 칸 4번 문 근처에서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매달려있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답 : 그렇다면 맞겠지요 뭐.
문 : 피의자는 그 당시 청바지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검은 패딩 코트를 입고 회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요.
답 : 아마…… 그럴 겁니다.
문 : 그때 지하철 안이 몹시 혼잡했었는데 피의자는 객차 안으로 들어오면서 열차가 출발하는 순간 몸이 약간 기울어지면서 균형을 잃었고 그 순간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았지요.
답 :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 그때 옆에 딱 붙어있던 젊은 여성 분이 기억나지 않는가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여성은 키가 168센티미터이고 머리는 목덜미에서 무팁 머리끈으로 묶어서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긴 머리였고 상의는 아이보리 색 숏패딩을, 하의는 부드러운 양가죽 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검정색 모직 스타킹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술에는 핑크색 연한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얼굴에 바른 화장품에서 풍겨 나오는 은근한 향기 때문에 기억이 날만도 한데요. 라벤더 향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요. 어떻습니까.
답 :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 그때 피의자는 고소인의 옆 얼굴을 은근슬쩍 바라보지 않았던가요.
답 : 기억 없습니다.
문 : 피의자는 몸이 잠깐 균형을 잃었을 때 순간적으로 오른손은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왼손은 얼떨결에 고소인의 엉덩이를 잡은 게 아닌가요. 그런데 고소인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가만히 있자 그때부터 처음에는 천천히 어루만지다가 나중에는 손목에 힘을 가하여 힘껏 움켜쥐고 본격적으로 주물럭거린 것이 아닌가요.
답 : 이건 소설도 아니고 참으로 터무니없습니다.
문 : 고소인은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관되게 육하원칙에 맞춰 이미 진술하였습니다. 그래도 부인하시겠습니까. 계속 부인하면 조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불리해집니다. 모처럼 바깥나들이를 하였는데 젊은 여성을 보니까 순간적으로 묘한 감정이 꿈틀거려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거 아닙니까.
답 : 그럴 수도 있겠네요.
문 : 그러니까 인정하신다는 말씀인 거죠.
답 : 인정한 건 아닙니다.
문 : 급행열차는 고속터미널역에서 사평역을 거쳐 신논현역에 도착하는데 정확히 4분 30초가 걸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내내 손을 빼지 않고 주무른 사실이 있지요. 그것도 열차 바퀴의 덜커덩거리는 리듬에 맞춰서 교묘하게 주무른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여자는 한순간 기분이 묘했다고 합니다.
답 : 그런 사실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주물럭거렸다면 그사이에 몸을 비틀고 빼내거나 아니면 소리를 질렀을 거 아닙니까.
문 : 본인 말로는 어떻게 하는지 끝까지 참고 기다렸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 다음에 신논현역에 도착하자 아쉽게도 손을 떼고 하차한 사실이 있었지요. 그때 내리지 않고 계속 그 상태로 끝까지 가지 않은 게 이상하더군요. 그러나 지하철역에서 내린 다음 연결된 교보문고 강남점으로 들어갔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피의자는 먼저 인문 코너 [F33] 평대로 가서 독서용 안경을 꺼내 쓴 다음 「노벨문학상 작가와의 대화」「시인의 거점」「우리시대의 작가」들을 골랐고, 그 다음 정치사회 코너 [E35] 평대로 옮겨서 「다크 룸」을 들고 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한참 내용을 검토하다가 구입하기로 마음먹고 그 책을 함께 들고나와 계산대에서 계산했습니다.
또한 3만 원 이상 구매 시 3천 원에 구매할 수 있는 교보문고의 판촉용 아임리더 스텐머그잔 3개를 추가로 구매한 사실이 있었지요. 그리고 나서 책과 머그잔을 서점에서 주는 두 개의 대형 봉투에 나눠 담았습니다.
답 : 틀림없는 사실입니다만 누가 나를 미행했단 말입니까. 누가 미행을 하면서 찍는다면 오싹하지 않겠습니까.
문 : 고소인은 동작역에서 9호선 열차를 탑승하여 봉은사까지 갈 예정이었으나 피의자가 너무 괘씸한 나머지 따라 내려서 몰래 촬영을 했다고 했습니다.
피의자는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나서 그 후 어떻게 행동했는지 진술할 수 있습니까.
답 : 저는 계산을 끝낸 후 서점과 연결된 지하 1층 폴 바셋이라는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 더블을 시켜서 30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 맛을 음미했습니다. 저는 쓰고 진한 맛을 좋아합니다.
그런 후에 다시 신논현역 지하철역으로 가서 이번에는 역순으로 고속터미널역까지 갔습니다.
다만 돌아갈 때는 완행열차를 탔기 때문에 그 열차는 사평역에서 약 1분간 정차했습니다. 그리고 고속터미널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여 남부터미널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갔었지요.
문 : 피의자의 집은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는 현대아파트 A동이지요. 그런가요.
답 : 예, 맞습니다. 어떻게 제 집까지 알게 되었는가요.
문 : 고소인은 신논현역에서 피의자를 뒤따라 내린 후 계속 미행하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십시오. 피의자가 계단을 내려와 서점 정문 회전문을 들어가는 순간, 평대에서 책을 읽으면서 고르는 순간, 계산하는 순간 등이 고스란히 찍혀있네요. 피의자가 틀림없죠.
그런데 고소인은 다시 피의자를 뒤따라 가면서 계속 촬영을 했고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 보시지요. 피의자의 아파트가 틀림없지요.
답 : 틀림없습니다만…… 고소인이 정말 지독하군요. 쓸데없는 짓을 했어요.
문 : 고소인이 사진을 첨부해서 고소를 하자 우리 경찰이 현대아파트에 가서 피의자를 확인하고 특정한 것입니다. 피의자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혹시 연세가 많으니까 집에서 그럭저럭 방콕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답 : 저는 이래 봬도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6편의 장편소설, 중편소설집, 단편소설집 등을 발표하였지요.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쓴다는 것은 목숨 걸고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노년에 취미로 쓴다고는 생각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소설은 죽도 밥도 안되지요.
문 : 저는 소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만 피의자가 소설가란 것은 처음 듣는군요.
답 : 그렇겠지요. 저는 틀림없이 무명작가입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요. 다른 작가들이 쓰지 못하는 것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덤벼들지만 막상 쓰고 나면 그게 그거예요. 도저히 나만의 독특한 거를 쓰지 못하니까 그 모양이에요.
문 : 성도착적 행동의 배경이 있습니까. 전과 조회를 해보니까 나온 건 없었습니다만.
답 : 그렇지요. 전 지극히 정상적인 이성애자입니다.
문 : 그런데 선생님이 작가라면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점잖으신 작가 선생님께서 그런 행위를 하다니요. 연세도 그렇고 말입니다. 창피하지 않습니까.
답 : 글쎄 말입니다…….
문 : 선생님께서 고소인과 합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하고 탄원서도 써주면 아마 잘 될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아마 돈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답 :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전 억울합니다.
문 : 요즈음 분위기를 보면 구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답 : 그런 거로 구속까지 한다는 말입니까. 가벼운 신체 접촉으로 넘어갈 수 없을까요. 모두들 신경과민이에요.
문 : 한가한 말씀 하지 마십시오. 변호사를 한 번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답 : 저는 변호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 :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그렇게 억울하시다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해볼까요.
답 : 저는 지금도 불안 강박에 시달리면서 진정제나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는데 조사를 시작하면 아마 미쳐버리겠지요. 그래서 그건 불가능합니다.
문 :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하는 용의자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변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없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답 : 저의 경우는 실제 그렇습니다.
문 : 지금도 고소인의 진술이 일관되게 정확하고 증거자료로 수십 장의 사진이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빼도 박도 못한단 이야깁니다.
그런데 피의자가 솔직히 인정하고 자백하지 않으면 대질조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질조사는 아마 거짓말탐지기보다 더 힘들 수 있습니다. 그 고소인이 여간 똑똑하고 완강한 게 아니거든요.
답 :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저도 고소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군요. 요즈음 젊은 여성들이 얼마나 똑똑하던지…… 지나치게 똑똑한 거죠.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여자의 일방적 진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에게도 방어할 기회를 주십시오. 교보문고에는 가끔 일어나는 책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서 CCTV를 설치해서 감시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하철 열차 내에도 이런 성범죄를 감시하기 위하여 CCTV가 설치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걸 조사해주시기 바랍니다. 화질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문 : 확실한데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시간 낭비가 아닐까요. 정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이건 아셔야 합니다. 거기서까지 나오면 다음 단계는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답 : ……

대질신문
고소인인 젊은 여성은 기세등등했고 여전히 분이 안 풀린 기색이다. 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용모는 단정했다.
그녀가 말했다. “이제 자세히 보니까 정말 나이가 많으시군요. 그런 분이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빌지는 못할망정 끝까지 부인하다니요. 저로서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피의자가 말했다. “글쎄…… 제가 실제 했다면 백 번 용서를 빌겠지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군요.”
“무슨 정신 말입니까. 전 아직 치매까지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합의를 해주고 고소를 취하하려고 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법원 판결에 의하면 1초만 만져도 성추행이 되는데 이번에는 4분 30초나 만졌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부인하고 있습니다. 형사님 법에 따라 엄벌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정신 차릴 것 같습니다.
남자들이란 어쩔 수 없어요. 젊었거나 늙었거나 똑같다니까요. 그렇다니까요.”
형사가 개입했다.
“요즘은 워낙 CCTV가 발달해서. 곳곳에 그것이 설치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동선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교보문고 것을 봤더니 고소인은 무슨 사립탐정처럼 뒤를 미행하면서 정확하게 촬영했더군요. 그리고 지하철 플랫폼 감시 카메라에도 선명하게 찍혀있습니다. 그걸 피의자가 눈치 못 챈 게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하기사 혼잡한 틈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하면서 찍었으니까 모를 수 있었을 겁니다.”
여자가 말했다. “하도 기가 막혀서 제가 정확히 촬영했거든요. 증거가 확실한데도 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는 거죠.”
형사가 말했다. “그런데 이 영상들을 보시지요. 이건 객차 안 영상입니다. 피의자가 키가 워낙 크기 때문인지 아주 정확하게 찍혀있습니다.
피의자는 키가 얼마인가요.”
“저는 옛날에는 183센티미터였습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조금 줄어들지 않았겠습니까.”
형사가 말했다. “이 사진을 보면 피의자는 객차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몸이 기우뚱하니까 바로 두 손을 들어서 손잡이를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내릴 때까지 단 한 번도 손을 떼지 않았습니다.”
젊은 여자가 말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제 몸을 만질 수 있을까요. 손이 세 개라면 모를까. 틀림없다니까요. 그 CCTV 엉터리예요. 형사님 그렇지 않습니까.”
형사가 말했다. “이건 지하철 경찰대에서 직접 보내온 겁니다. 화질도 선명하고 그래서 아주 정확합니다.”
여자가 말했다. “정말 재수 없어. 지하철에 무슨 TV가 있단 말이야. 그거 사생활 침해 아닙니까. 사생활 침해로 청와대에 청원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면 청와대에서 적절히 조치를 취해주겠지요.”
형사가 말했다. “억지소리 그만하시죠. 왜 여기서도 청와대가 나옵니까. 거기가 만능키라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슨 염치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선생님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무고죄로 고소해주신다면 더욱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소설가 선생님이 말했다. “고소는 무슨…… 혹시 착각할 수도 있었겠지요. 아니면 상상력이 지나쳤거나 환상일 수도 있었겠지요.”
형사가 말했다. “화면을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고소인 주변에는 남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자들 중에 레즈비언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소설가가 말했다. “어쨌거나 고소는 할 수 없습니다. 고소에 맞고소가 물리면서 난립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형사가 말했다. “정말 억울하지 않으세요?”
소설가가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믿고 싶어 하는 내용이 진실이라고 확정하고 굳게 믿어버리는 확증 편향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명백할 때조차 그대로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건 인간이 남을 속이려는 본능적 성향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이나 서초동 대검찰청의 집회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형사가 말했다. “이 사건은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결론이 뻔한데도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요. 검찰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지요. 그리고 무고죄가 성립하는지는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검토할 겁니다.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작성일:2020-01-20 16:11:05 121.135.238.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