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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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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단편선> 존경하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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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8-12-21 16:47:21
조회수
397
존경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항상 아이를 위해서 죽을 각오를 갖추고 있다.
만일 위기가 닥쳐서 아이와 어머니 가운데 한 사람만 구제를 받게 되는 경우라면 아이가 살아야 한다는 각오가 어머니에게는 항상 되어 있다.
그녀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 B.S. 라즈니시



골든 브리지 맨션 304호
서초동 예술의 전당 바로 건너편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주택가에 고급 빌라들이 늘어서 있다. 그 골목에 있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5층 골든 브리지 맨션의 304호.
늦은 가을 초저녁, 달빛이 어둠에 싸인 거리와 골목길을 미소를 짓듯이 어루만지고 있다.
어머니는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 이마는 마음고생으로 주름이 패어있고, 정수리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원형 탈모증이 있고, 주변 머리는 온통 하얬다. 잠시 어머니 특유의 슬픔과 절망이 배어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머니가 흥분해서 말했다.
“네 나이가 벌써 서른이 넘었구나.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 멀쩡한 회사 그만두고 지금까지 무위도식하고 있다는 거 알고는 있는 거니. 결혼도 하지 않고…… 그렇지…… 매일 게임을 하고 있지.
학교 다닐 때는 모범생이었고 명문대까지 졸업했는데 이 꼴이 뭐니. 외아들이라고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이 꼴이 뭐냐고. 그렇구나!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네 인생을 망쳐 버렸으니……
하긴 ‘자식이란 어릴 때는 부모의 발을 밟고, 다 커서는 부모의 심장을 밟는다’ 고 하더니만.
내가 창피해서 친척이건 친구건 간에 도대체 만날 수가 없다는 것 아니냐. 폐인처럼 숨어서 살고 있다고. 내 인생이 있는데 말이다.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속 시원히 말 좀 해보렴. 네 속을 알 수가 없으니……”
“저도 몰라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겠어. 오랫동안 그 질문을 해왔어.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구. 더 이상 묻지 마세요.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세요! 게임을 하면 할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게임이야말로 구세주예요. 너무 간단하니까 엄마도 배워 보세요! 제가 가르쳐 드릴께요.”
“네가 모르면……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렸다는 거냐?”
“기억상실이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제발 헛소리 좀 안할 수 없니.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단다. 오죽했으면! 네 죽은 아버지가 검은 옷을 입고 꿈에 나타나겠느냐! 당신이 살아있었드라면!
너만 보면 속이 끓어오르고…… 밥도 먹기 싫고…… 밤에 잠도 잘 수가 없단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신경성 통증이라고 하더구나.”
그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 되나요? 잔소리 그만하세요…… 셀 수도 없이 들었으니 귀에 딱지가 앉았단 말입니다. 그 스테레오타입 말이에요. 알고 있는가요? 그건 엄마의 히스테리에요. 저도 너무 지겹다고요.”
“내가 지금 히스테리를 부린단 말이지?”
“제가 어렸을 적에는 엄마를 무척 존경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재혼하지 않고 혼자서 가정을 지켰으니까요. 제가 뭘 잘못하고 있다면 그건 모두 엄마 탓이라고 해야겠지.
그렇지 않아요? 저에게 바라는 게 뭐죠?”
“너에게 뭘 바랄 수 있겠니…… 자식이 웬수라고 하더니만. 집을 떠나거라.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래도 괜찮을 거 아니야. 제발 부탁한다. 당장 떠나라고. 집을 떠나면 정신이 번쩍 들겠지. 스스로 독립하는 거니까.”
“너무나 편하고 좋은데…… 왜 집을 떠나야 하지.”
“즉시……. 이건 내 집이야, 내가 남대문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면서 고생고생해서 장만한 거라고. 너하고는 상관 없단 말이다. 그런데 집안 곳곳이 담배 연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니……”
“왜 이러세요. 그럴 순 없어. 이대로가 좋다니까.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요. 다시 말하면 부모의 의무를 다하란 말이지.”
어머니는 그만 이성을 잃고 분노했다. 증오와 울분으로 북받치는 듯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급기야 뺨을 후려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놈아! 당장! 떠나라고! 이 천벌을 받을 놈 자식아!”
아들의 성난 얼굴에 독기가 서리면서 경멸에 찬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어머니를 노려보면서 한껏 비웃었다.
“좋아, 좋다구. 그렇다면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드리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엄마가 죽으면 되는 거야. 죽으면…… 된단 말이지. 그러면 더 이상 절 볼 필요가 없는 거지.”
아들의 손에는 어느새 예리한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가 숨을 헐떡거리고 몰아쉬며 증오에 차서 어머니의 여기저기를 마구 찌르자 피가 튀면서 어머니가 신음 소리를 냈다.
아들이 피를 보자 새파랗게 질려서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때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가냘프게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과 함께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까지 눈앞에 애틋하게 아른거렸고 그 기억들은 다른 기억들과 맞물리며 떠올라서 서로 마구 뒤엉켰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있었으나 지금쯤은 잊고 지내던 기억들이었다. 아들을 낳고 산욕열 때문에 죽을 뻔했던 일, 큰딸을 낳았으나 이틀 만에 죽어버렸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일찍 죽은 남편이 그리웠다. 그러고 보니 남편을 기억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저 진즉 죽은 사람으로 잊어버리고 있었으니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10년을 훨씬 넘게 살았던 빌라의 거실이, 벽에 묻은 얼룩, 레이스가 달린 커튼, 손때 묻은 소파와 식탁, 유리 장식장, 가구들마저 어느 것 하나 몹시 낯설어 보인다. 그녀의 체취가 가득 배어있는 거실에 친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녀는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겨우 말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빨리 도망가야지. 손에 묻은 피를 닦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내 핸드백에 있는 현금과 카드를 가지고 가려무나. 여긴 내가 처리할 것이니까.”
그 어머니는 며칠 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서울구치소 변호사 접견실
그는 약간 말랐고 추레했다. 입고 있는 수의가 헐거워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쌀쌀한 날이 서 있고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샅샅이 탐구하는 듯했다. 그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숨을 쉴 때마다 시금털털한 고약한 냄새가 작은 접견실에 퍼졌다.
변호사가 말했다.
“올해는 추위가 빨리 올 모양이예요. 벌써부터 너무 춥지요. 구치소 안은 어떻습니까?”
“그럭저럭 견딜만 하지요.”
“천만다행입니다. 예전보다는 시설과 처우가 많이 좋아 졌으니까요. 옛날에는…… 정말 형편없었지.”
피고인이 또 다시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변호사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여기가 오래 있을 곳은 못되는 군요. 집 생각이 간절하지요.
변호사 비용은 얼마든지 더 드리겠습니다. 요청만 하십시오. 어머니 통장에 1억 원이 들어있다니까요. 그걸 전부……”
피고인이 사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철딱서니 없이 집 생각 운운하는 말에 기가 찼으나 그걸 밖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변호사가 말했다.
“지난 번 왔을 때도 간곡히 말씀드렸습니다만…… 너무 성급하시군요. 천천히…… 침착하십시오. 평정을 유지하시란 말입니다. 그리고 아주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간단히 생각할 수는 없죠. 우선 사건의 진상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건을 맡으면서 불가피한…… 그래서 반드시 참작할 만한 동기나 사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가지고 중점적으로 변론을 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좀처럼 보기 힘든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판사들을 혼란스럽게 할 필요는 없겠죠. 그들도 인간인데 혼란스러우면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피고인이 말했다.
“전 경찰이나 검찰에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진술한 것뿐입니다. 그때는 너무 겁이 나서 경황이 없었거든요. 허위 진술을 했단 말입니다. 너무 후회가 됩니다.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끝까지 버텨야 했는데 말입니다.
며칠 동안 하루 열 시간이 넘게 계속된 심문에 제가 나가떨어졌단 말입니다. 어찌나 똑같은 질문을 번갈아가면서 반복하던지 넌덜머리가 났단 말입니다. 너무 혼란스럽고 피곤하기 때문에 뭐가 핵심인지 지나쳐버린 겁니다.
그래서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조서에 서명을 한 것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변호사의 숭고한 의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부인하겠단 말씀이시군요.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면 그럴 수 있겠지요.”
“실체적 진실이라고 했습니까? 그렇구 말구요. 어머니는 사실상 자살한 거라구요. 자해 행위를 하다가 그만…… 어머니가 그날 밤 너무 흥분했어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왜 아니겠어요?”
변호사는 그 죽도록 불편한 상황이 싫었지만 별다른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변호사는 뭔가 변론의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서 수사기록을 꼼꼼하게 몇 번이고 읽었지만 점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국과수 부검 결과에 의하면 타살로 이미 결론이 났는데요. 다시 말하면 상처의 위치와 칼을 찌르는 각도를 분석해서 가해자의 자세를 측정하였는데 굉장한 힘으로 깊숙이 찔렀다는 거죠. 이건 자살하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연약한 어머니가 무슨 힘이 있어서 자신을 그렇게 깊이 찌를 수 있었겠습니까.”
피고인이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어떻게 국과수를 믿을 수 있어요. 걔들이 조작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말입니다…… 걔들이 장난치게 놔둬선 안 되겠지요.
먼저 칼을 든 것은 어머니이고 저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당방위로…… 왜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세요. 아주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죠. 그땐 어머닌 분노에 차서 미친 듯이 흥분했다니까요. 칼을 먼저 든 건 어머니란 말입니다. 이건 저만 알고 있는 사실이죠. 현장에는 어머니와 저만 있었지 않았습니까.”
변호사는 세 번째 접견할 때부터 이토록 싫었던 피고인은 일찍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을 설득하는데 자신의 한계를 느꼈던 것이다. 저절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냉정히 거절하지 못하고…… 외아들이 어머니를 죽였다면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지 않았을까…… 자신이 뭔가 착각했음을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그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고 거기서 변론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니까.
“그것도 말이 안 됩니다. 위험한 부위를 깊숙이 찔렀을 뿐만 아니라 원한에 찬 사람이 복수하는 것처럼 수십 군데를 난자했단 말입니다. 그게 정당방위가 될까요. 그리고 정말 정당방위였다면 그렇게 허겁지겁 도망갈 필요가 없었겠죠. 즉시 경찰에 자진 신고했어야죠.
그걸 보면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거죠. 무언가 깊은 원한이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었던 게 아닐까요. 게임에 너무 열중했기 때문이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수사기록을 자세히 검토해보니…… 상해치사를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살인죄와 상해치사는 죄질이 엄연히 다르죠. 형량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변호사가 감히 살인죄를 운운할 수 있습니까? 도대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가 검사처럼 추궁할 필요는 없습니다. 변호사의 본분을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그렇게 주장하면 안 될까요? 제가 그날 밤 상황을 복기해보면 성립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만……”
“이 사건의 분수령은 피고인이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칼은 어디서 나온거죠?”
“저도 모르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합리적으로 추론을 해보면 어머니에게서 빼앗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 칼은 어디에 있습니까? 강력계 형사들도 그 칼을 끝내 찾지 못했어요.”
“모른다니까요.”
“그런데 그 칼을 피고인이 화장실에서 세척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피고인이 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마지막에 어디에다 버린 셈이 되지요.”
“그걸 왜 변호사가 묻는 거죠. 변호사가 말입니다.”
“저도 진실을 알 필요가 있어요. 제대로 알아야만 변론을 할 거 아니겠어요. 다시 말하면 변호사는 이 사건과 관련한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변론의 단서를 찾아야 하니까요.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비밀을 지키는 것은 변호사의 엄연한 의무입니다.”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유리한 것만 찾아서 변론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수사기관에서는 범죄를 직접적으로 증명할 접촉흔과 체액흔까지 발견했더라고요. 요즘 과학수사는 선진국 수준이라니까요.
화장실에서 차가운 물로 피 묻은 칼을 씻었더라고요. 피를 닦는 데는 찬물이 더 효과적이지요. 그런데 피를 씻은 미세한 흔적이 바닥 타일 틈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게 아무리 닦아도 …….
어쨌거나 어머니는 사경을 헤매면서 쓰러져 있었으니까 그때 칼은 씻은 것은 피고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국과수 보고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어요. 그리고 칼을 버리거나 숨긴 것은 그 정황상 살인의 의심을 사기에 유력한 근거가 되는 거죠.
첫 단추를 잘 꿰야 합니다. 처음부터 틀어지면 재판은 점점 꼬이게 됩니다.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면 판사가 바보가 아닌 이상 금방 눈치채게 되고. 그러면 완전히 찍히게 됩니다.
용서받을 일도 용서받지 못한단 말입니다.”
피고인이 하소연을 했다.
“변호사님! 그럼…… 어떻게 하면…… 되죠. 빨리 나갈 수가 없을까요?”
변호사가 냉정하게 말했다.
“쉬운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날 밤 허둥지둥 가방을 들고 맨션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전부 폐쇄회로 TV에 촬영되어있더군요. 한마디로 빼도 박도 못 하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더군다나 도망칠 때 운전면허증도 없으면서 어머니 차를 운전했더군요. 그래서 무면허 운전혐의가 추가된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 그때 어머니를 병원으로 즉시 모시고 갔으면 분명히 살 수가 있었어요. 최종 사인은 과다출혈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치하고 도망갔단 말입니다.
그리고 시체 부검 결과를 보니까, 어머니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하루 동안이나 굶었더라고요. 배속이 허전했어요.
어머니가 죽어가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통이 컸겠어요. 더욱이 외아들한테…….”
“그렇겠지요. 제가 집을 나서면서 잠시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고 달래 주었어요.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거든요.”
그의 충혈된 눈은 점점 지쳐갔지만 그래도 쥐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날카로워 보였다.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전 꼭 나가야 합니다. 벌여놓은 사업이 많거든요. 상속을 받아 자금이 마련되었으니까 그것들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무슨 사업을 한단 말인가요?”
“변호사님이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변호사가 약간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그건 아니지요. 사업은 무슨…… 그걸 아셔야 합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면 상속권이 박탈된단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래서 수사기관에서는 살인의 동기를 의심했습니다.”
그가 울분에 차서 변호사에게 증오의 시선을 던졌다. 변호사가 자신을 실망시켰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경우가…… 말이 됩니까. 그때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마약 같은 것에 취해 있었단 말입니다. 정신이 몽롱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지요. 무죄가 될 수 있다고 하던데요.”
“글쎄요.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단 말이지요. 상속 문제는 나중의 일이고…… 우선 이 사건부터…… 스스로 판단해보세요. 좋은 대학까지 나왔으니까 말입니다. 정말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은 건 아니겠죠?”
“반드시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건 변호사님이 잘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만…… 저에게는 상속 문제가 정말 중요하지요. 생존이 걸린 문제이지요.”
변호사는 짜증이 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울분이 치밀어 올라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왕지사 아무리 못마땅하다고 해도 끝까지 참고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수사는 정말 빈틈없이 철저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곳곳에 패륜아를 단죄하기 위한 수사검사의 의지가 베어 있었다. 그는 틀림없이 사형을 구형할 것처럼 보였다.
“그만 하세요. 그만…… 외아들이 어머니를 참혹하게 살해한 게 믿기지 않아서 혹시나 마약을 했나 의심을 한 것이죠. 그래서 경찰에서는 피고인 모르게 머리카락을 뽑아서 마약검사를 이미 했어요. 음성이 나왔단 말입니다.”
피고인은 얼굴은 냉정한 것처럼 보였지만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눈가에 깊은 주름이 패도록 찡그리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실체적 진실은 무슨…… 그게 아니에요.”
변호사가 불쑥 말했다.
“담배가 피우고 싶어서…… 그걸 어떻게 견딜 수 있나요? 외톨이 은둔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게임 중독이고. 방안에서 줄담배를 피우면서 게임에 몰두했던 거 아닌가요.
그 담배맛을 어떻게 참을 수가 있나요. 담배는 마약이에요. 도저히 끊을 수가 없으니까요. 몇 번이나 끊으려고 했지만 안되더라고요. 그럴수록 미치도록 피우고 싶거든요. 그래서 결국 포기했다는 거 아닙니까.”
“저도 매일 몇 갑씩 피웠어요. 그 때문에 어머니가 속상해…… 잔소리께나…….”
“감방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죽을 맛이겠네요.”
피고인이 모처럼 히죽거리면서 대꾸했다.
“여기에도 방법이 있지요.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방법이 있는 법입니다. 왜? 못 피우겠소? 돈이 문제이지요.”
“왜? 그렇게 분노했는가요. 그것도 어머니한테 말입니다. 그 순간 분노가 갑자기 폭발했거든요. 수사기록에 의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은 없었어요.”
“그건 데스게임 또는 생존게임이었어요. 저는 정신이 아주 건전합니다. 정신과는 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게임에서는 도덕적 기준이 인간의 기준과는 다른 건가요. 저는 게임에는 문외한이어서……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죠.”
“그 게임은 좋다 재밌다라는 이유를 넘어선 무엇인거죠.”
변호사가 달래듯이 말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죠. 죄책감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나요? 정상이 다소나마 참작되려면…… 차라리 진실을 고백하는게…… 눈치를 보니까 검사는 극형을 구형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목숨만은 구해야 할 거 아닙니까. 목숨은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어머니가 저승에서 자식을 용서하고 편안히 주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고백하지 않은 사람의 죄는 용서가 없다고 말입니다.”
피고인은 이제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당신은 누구 편이에요. 변호사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당장…… 변호사는 흔해 빠져서 발에 채이지. 당신이 부장판사하고 대학도 동기이고 연수원도 동기라고 해서…….
계속 저를 실망시키는 말만 늘어놓고 있어요. 그래서는 안돼죠. 제가 변호사를 돈주고 산 거 아닙니까. 당신은 공짜가 아니란 말입니다. 돈을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야 할 거 아닙니까.”
“잘 알겠습니다. 당연히 공짜가 아니죠. 재판장은 저와는 잘 아는 사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뭘 봐줄 사람은 아닙니다. 아주 강직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아셔야 합니다. 존속 살해죄는 일반 살인죄보다 형이 더 무겁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패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판사도 인간인데 어머니를 죽인 패륜아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판사가 인간이라면 왜 용서를 못 하겠어요. 걔들이 법대 위에서 아무리 거들먹거려도 인간이지요. 다시 말하면 신은 아니란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이라면 이해할 거에요. 오죽했으면 아들이 어머니를 찔렀겠는지 말입니다.”
“신을 믿거나 교회에 다닌 적이 있나요?”
“신을 믿을 수가 없지요. 그건 시간 낭비에요. 저에게도 신이 있긴 있어요. 그게 바로 게임이죠.”
“그렇군요. 어머니께선?”
“오래전에 교회에 나가다가 그만두었어요.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요. 그 무렵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는지 오랫동안 술을 많이 마시긴 했죠. 우리는 대화가 끊긴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최근까지도 술을…….”
“아니에요. 언젠가 끊으셨죠. 죽을 고비가 있었으니까요.”
변호사가 부지불식간에 엄청난 말을 내뱉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 부장판사가 엄청 엄격하거든요.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검사의 구형에 상관없이 사형을 선고할지도 모르겠네요.”
피고인이 분노해서 마침내 폭발했다.
“누구 마음대로 사형을……??!!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차라리 배심재판을 하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배심재판을 하면 백번 불리하겠죠. 외아들이 어머니를 죽였다고 하면 배심원들이 치를 떨 거 아닙니까. 도움이 되지 않겠죠. 그래서 저는 반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실 작정인가요?”
“다른 변호사를 원하면 그렇게 하세요. 변호사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요. 몇 번 접견을 오긴 했지만 돈을 아무리 많이 준대도 더 이상 맡을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받은 돈은 전부 돌려드리겠습니다.”
변호사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나른한 피로가 밀려왔다.

변호사는 구치소를 걸어 나오면서 새삼스럽게 초겨울 짧은 햇빛이 비스듬히 걸려있는 회색 담벼락을 뒤돌아보았다. 겨울의 긴 밤이 계속되면서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짓눌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가위에 눌려 악몽을 꾸고. 심지어 자신이 어머니를 칼로 찌르는 악몽을. 다시 돌이켜보니 수사기록에서 본 범죄 현장을 찍은 끔찍한 사진들 때문이었다.
그건 너무 섬뜩해서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에는 수수께끼 같은 표정이 어려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왜 변호사가 되었지? 내가 유능한 변호사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진실을 밝히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실체적 진실 좋아하시네. 법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 그건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문서에 기록된 형식적 진실에 불과했다. 그들이 직접 눈으로 목격했거나 실제 경험한 것이 아니다. 오직 타인의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범죄를 재구성했을 뿐이니까. 그리고 세상에는 진실이 하나가 아니라 관점에 따라서 수십 개라고 할 수 있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진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각자 직업적 세계관에 갇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검사는 오직 단죄해야만 한다는, 변호사는 받은 돈만큼은 변론해서 형을 감형 받아야 한다는, 판사는 과연 얼마만큼의 형을 때려야만 적당한 것인지, 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어차피 법정은 진실을 발견하는 현장이 아니라 양형이라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공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의뢰인이 무죄 혹은 감형을 받도록 하는 것에 변론을 집중했다. 나는 가끔 무죄라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무죄가 되는 사건은 거의 없다.) 무죄가 안되는 사건에서는 오직 검사의 구형을 얼마만큼 깎을 것인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외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특수한 사건이니까 진짜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는 외동아들이었으니 다소간에 과잉 보호된 측면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므로 피고인은 자신을 넘어서는 어떤 미지의 힘에 조종된 것이라고 믿을 여지가 있었다.
이들 모자간에는 인간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초현실적인 수수께끼가 있지 않았을까? 그가 사이코패스이거나 혹은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가 아닐까? 혹은 또다른 정신병자가 아닐까? (하지만 피고인은 수사과정에서 자신은 정신이 멀쩡하고 자신을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면서 정신과 의사의 감정을 한사코 거부했다. 뿐만아니라 현장검증도 죽어도 할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 했으므로 형사들이 대역을 맡아서 실시했다.)
나는 그 아들에게 철학적이건 우주적 관점이건 간에 인간의 본성에 관한 심오한 수수께끼가 숨어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는 지독한 게임중독자이다. 데스게임 또는 생존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것은 강렬한 자극이다. 참가자는 죽고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행동한다. 게임의 결과 극단적인 상벌이 따르므로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생존게임을 하였고, 다시 재판에서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게임을 죄악시하던 시대에 모범생으로 살았다. 그래서 부모님의 소원대로 법대로 진학했다. 수많은 부모들이 “도대체 왜 그렇게 게임에 푹 빠져드는 거야?” “게임은 공부의 적이야. 게임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고 있어.” “어떻게 해야 게임을 덜 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애들이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하던 시대에 말이다.
지금 시대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심각한 변곡점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사용하는 포노 사피엔스가 게임처럼 살아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도박꾼처럼 게임에 중독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구닥다리 꼰대이다. 그것도 나쁜 꼰대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가상 현실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다. 나는 우리 시대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인 법률가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판단한다. 변진장은 어머니를 살해한 비열한 패륜아에 불과할 뿐이다. 패륜아 주제에…… 입만 살아가지고서 정말 피곤한 인간이었어. 변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의 말에는 진실이란 단 한마디도 들어있지 않거든. 살인자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생각들을 캐내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런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변호사는 누구든지 변호할 수 있다. 변호를 받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연쇄살인범도 변호해야 하는 거지. 나는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에 기댈 수도 있을 거야. 형사재판에서 의뢰인인 피고인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경우, 변호사는 설령 피고인이 유죄라고 확신하더라도 무죄 변론을 하여야 한다는 원칙 말이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대로 무죄 변론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피고인은 만족할 것이고 나는 수임료를 반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더 이상 맡을 순 없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사무실 월세가 몇 달이나 밀려 있어도 돈이 문제가 아니야. 나는 변호사이기 이전에 진실한 인간이다. 내가 어떻게 그런 인간을 변호한단 말인가.
지금의 나에게는 자기 연민은 가장 어리석고 쓸데없는 감정인 거야. 그래, 이런 날은 한잔하는 거야. 술잔이 허공에서 춤을 추도록 실컷 취해야만 하지. 그래야만 이 울적한 기분을 다소나마 떨쳐낼 수 있을 거야.
작성일:2018-12-21 16:47:21 14.32.9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