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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선> 법정모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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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7-12-26 12:39:52
조회수
770
법정모욕


범죄사실
피고인은 10여 년간 피복장사를 하다가 1970. 11월경부터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 고문으로 노동운동에 참여하여 오다가 1976. 4. 26.부터 동지부에 개설된 새마을 노동교실 실장으로 종사하는 부녀인바, 피고인의 노동운동을 지원해주던 공소외 장기표가 1977. 3. 21.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 및 반공법위반으로 구속, 동년 4. 18.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자 법원의 재판을 방해할 목적으로, 매회 서울지방법원 성북지원 법정에서 위 청계노조원 20여명과 함께 방청하면서,
1. 1977. 6. 3. 오전 11시경 서울지방법원 성북지원 제1호 법정에서 공소외 장기표에 대한 제1회 공판의 진행 중에 공판관여 검사가 위 장기표에 대한 공소사실을 신문하면서 동인이 노조원들에게 임금인상을 위한 투쟁을 종용한 일이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할 때 “왜 쓸데없는 질문을 자꾸 하느냐, 신문도 지랄같이 한다, 매년마다 올려준다는 임금인상을 해주지 않고 무슨 죄가 있다고 떠들어 대느냐”고 소리쳐 재판장으로부터 퇴정명령을 받고도 불응하는 등 재판진행을 중단케 하는 소동을 하고,
2. 동년 동월 17일 오전 11시경 전항과 같은 법정에서 위 장기표에 대한 제2회 공판의 진행 중에 공판관여 검사가 위 장기표에게 남북 대화중단 책임이 대한민국에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동인이 답변 끝에 대통령이 1977년 년두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 제의를 한 것도 정권연장을 위한 수단이라고 진술할 때 “대한민국 근로자는 배가 고파 굶어죽을 지경인데 원조가 무슨 원조냐”고 소리치고 다시 반공법 위반의 점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자 “배고파서 임금인상해달라고 하는데 이북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떠들어서 정리 서동윤으로부터 제지를 받고 재판진행을 임시 중단케 하는 소동을 하고,
3. 동년 7. 1. 오전 11시경 전항과 같은 법정에서 위 장기표에 대한 제3회 공판의 진행 중에 변호인으로부터 위 장기표에게 민중의 소리라는 책자를 만든 배경을 묻자 동인이 물가고 연 10% 선억제나 1975년 말까지 2만원 미만 임금근로자 일소를 하겠다는 정부가 이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10년 전에 초근목피로 어려웠던 농촌 경제가 발전되었다고 자랑만 할 수 있느냐고 진술할 때 “청계피복 노조원의 임금을 32% 인상해주겠다고 공언하고도 1원 하나 올려주지 않았는데 매일같이 재판하는 것이 더러운 짓만 하고 있어 말을 아니할 수 없다”고 소리치고 이때 정리 천개진이 퇴정을 요구하였으나 불응하고 팔을 잡아 끌고 나가려고 하자 “나를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아넣으면 될 것 아니냐” 소리치면서 방청석 의자를 붙잡고 버티는 등 재판진행을 임시 중단케하는 소동을 하고,
4. 동년 동월 15일 오전 11:30경 전항과 같은 법정에서 위 장기표에 대한 제4회 공판의 진행 중에 검사로부터 대통령 각하가 년두순서해서 근로자 임금인상을 지시한 것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반근로자적이라고 왜 반대해석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위 장기표가 답변을 장황하게 하는 것을 제지하며 간단히 대답하라고 요구를 받고 답변에 불응할 때 “질문을 지랄같이 하니까 대답을 안 하지”라고 이때 정리 천개진이 퇴정을 요구하자 밖으로 나가면서 “검사나 판사가 다 똑같은 놈이라 재판장 저새끼부터 뒈져야 우리가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쳐 법정을 모욕한 것이다.

공판정
장기표는 1960년대부터 조영래, 이신범과 함께 학생운동의 지도자로 유명했다.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이 1970년 분신했을 때,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 있었으면……’ 했다는 소리를 듣고 장기표는 제일 먼저 전태일의 영안실로 달려갔다. 그때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 여사를 처음 만났고 전태일의 장례식을 서울법대장으로 치러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 무렵부터 장기표와 평화시장 노동자들 사이 깊은 유대가 맺어졌다. 그래서 장기표의 치밀한 조사와 조영래의 집필을 거쳐 유명한 전태일 평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장기표와 조영래는 민청학련 사건의 주모자로 오랫동안 수배되었다. 그가 아마 민청학련 때 체포되었다면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을 것이다. 장기표는 결국 1977년에 체포된다. 민청학련건은 이미 1975년도에 모두 석방하고 끝나버렸으니까 그것으로 문제 삼을 순 없었다. 그래서 1977년에 민중의 소리라는 풍자시를 써서 운동권에 배포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이었다.
공소사실에 의하면,
민중의 소리라는 시를 통하여 우리나라 민중이 온갖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에 비참하게 신음하고 있는 것처럼, 소위 북한에 유리하게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판정에서는 법적 쟁점이 민중의 소리에 묘사된 게 북한을 위하여 사실을 왜곡한 것이냐, 현실 그대로 묘사한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법정에서는 이 땅의 민중이 과연 그러한 고통과 억압을 겪고 있느냐 어떠냐 하는 문제로 검사와 피고인이 열띤 논쟁을 한 것이다. 주로 장기표가 열변으로 논리정연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장면이 전개되었다.
그 당시 법정에는 장기표가 평소 청계피복노조를 열심히 도왔으니까 청계 노조원들이 많이 나왔다. 전태일 모친 이소선 여사를 필두로 법정에 꽉 차게 운집해서 장기표를 향해 박수치고 소리치며 응원했다. 그 중에서 이소선 여사가 격렬하게 검사나 재판부에 항의하고 야유를 했다.
이소선 여사의 입장에서는 검사의 주장이란 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재판 도중에 재판장이 법정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이소선 여사를 법정모욕죄로 잡아넣어버렸다.

방청객들의 항의에 대해 법정모욕죄로 잡아넣는 것은 이제까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예외가 있긴 했다. 강신옥 변호사 사건이다. 하지만 그건 변호인에 대한 것이고 방청객에 대해서는 거의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장기표는 자신의 상고이유서 중에서 공개재판과 법정모독죄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고 전태일 씨의 모친 이소선 씨가 본건의 1심공판시 법정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을 선고받은 일이 있는데, 법정모독은 과연 누가 했는가. 공판 중에 정당한 노동운동에 속하는 일에 대해 엉뚱한 논리를 전개하여 그것을 이적행위시하는데 대해 약간의 항의를 한 것을 법정모독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공개재판의 의미를 상실케 하는 일로 보아니다. 공개재판제도의 의의는 본래 민중적 감시기능을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사법부에 의한 법의 심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법의 공정한 심판이 되지 못할 때에는 국민이 항의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민중의 저항권 발동에 해당하는 것이다. …… 법정모독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이소선 씨에 의해 행해진 것이 아니고 공정한 재판을 못하는 법원 당국 자체에 의해 행해진 것이다.

이제는 40년도 넘었다. 유신정권이 한창 발악을 하던 1977년에 일어난 사건이니까 말이다. 내 소설을 읽는 (대부분 젊은) 독자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또는 기껏해야 아장아장 아기걸음을 걸을 때 일어난 사건이니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그런 해괴한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어떻게? 그런 일이?”
“그건 적폐 아닌가요?”
그래, 좋겠다. 여러분은 그런 험한 꼴을 당해보지 않았으니까. 멀리서 바라보거나 어깨너머로 들은 적도 없었으니. 그 시절에는 하수인의 번득이는 눈동자가 법정 안을 훑고 있었다.
아! 옛날이여!

이건 순전히 내가 추측한 것이지만.
(내 법정 경험에 의하면) 재판장은 거만한 눈빛으로 방청석을 내려다보면서 으름장을 놓았을 것이다.
“조용! 조용! 조용히 하란 말이야. 너무 소란스러워서…… 도대체 재판을 진행할 수가 없어.
판사도 인간이란 걸 알아주기 바랍니다.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어요.”

공소장에는,
검사가 “청계 조합원 임금인상 투쟁을 배후조종해 사회혼란을 일으켰지요?” 하고 신문하니까, 방청석에 있던 이소선 여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달 죽도록 일해 3천원 받는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찾아간 거야. 근로기준법을 가르쳐준 게 뭐가 죄냐? 배운 사람이 모르는 사람 가르쳐주는 게 지식인의 도리지. 그게 죄냐?”, “당신들은 부모들이 소 팔고 논 팔아 공부 갈차 노니까, 이따위로밖에 재판을 못하냐. 공부를 했으면 똑바로 재판을 해야지. 모르는 근로자를 가르쳐준 게 죄라고 심문을 하냐?” 한 발언 부분은 빠져있다.

무슨 염치로 그걸 집어넣을 수 있었겠는가.

이소선은 법정모욕죄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되었다. 장기표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 9호 위반, 반공법 위반, 병역법 위반, 주민등록법 위반 등의 죄로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다.

만약 법정 질서유지를 위해서 어떤 조치가 꼭 필요했다면 이 경우 법원조직법 제61조를 적용해서 감치 또는 과태료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 법정모욕죄로 처벌한 것이다.

법원조직법 제61조 (감치등)
……재판장은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는 자의 입정금지 또는 퇴정을 명하거나 기타 법정의 질서 유지에 필요한 명령을 발할 수 있는데 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거나 ……폭언 · 소란 등의 행위로 법원의 심리를 방해하거나 재판의 위신을 현저하게 훼손한 자에 대하여 결정으로 20일 이내의 감치 또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형법 제138조 (법정 또는 국회회의장 모욕)
법원의 재판 또는 국회의 심의를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법정이나 국회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모욕 또는 소동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상세한 것은, (자료 홍성우 변호사, 정리 한인섭)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의 인권변론자료집 6을 참조하기 바란다.
작성일:2017-12-26 12:39:52 121.138.19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