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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소설> 그녀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3-12-23 13:21:54
조회수
38
그녀



사람들은 죄를 통해서 빛에 도달한다.


변호사 유호동 (柳壕胴) 법률사무소
내 사무실은 지하철 교대역 13번 출구 서울교대 담벼락을 끼고 들어가는 뒷골목 으슥한 곳에 숨어있는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의 3층에 있다. 개업을 한 지 30여년이 되었지만 지금은 로스쿨 이후 변호사들이 엄청나게 쏟아져서, 경제 용어로 말하면 공급이 수요를 훨씬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수임 사건이 뚝 떨어져 사무실 월세 내고 혼자 있는 여직원의 월급 주는 것조차 버겁다.
나는 원래 판검사 경력이 없어서 전관예우를 받아 큰 돈을 번 일도 없었고 브로커를 써서 사건을 유치할 배짱도 없었으니 언제나 그럭저럭 사무실을 유지했다. 사무장은 눈치가 있어서 오래 전에 나갔고 지금은 전문대를 갓 졸업한 어린 아가씨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그 친구는 고향 친구이긴 하지만 태어난 면이 달랐고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대기업에 다니다 조기 퇴직을 당하고 지금은 사당동 쪽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몇 달에 한 번씩 가끔 만나서 식사를 했다. 그러나 그의 형님은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2015년 초겨울이었다. 그날 날씨가 몹시 추웠다. 그녀는 키가 훤칠했고 희고 깨끗한 피부에 이목구비가 섬세했다. 그녀의 화장기 없는 얼굴에 검은 눈동자는 추운 겨울 날씨와 잘 어울렸다.

“변호사님…… 저는 김진주 (金珍珠)라고 합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그 말이 진실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자네 이름이 여자 이름으로는 참 아름답군.”
“작은 아버지가 소개해서…… 고향 친구라고 하던데요. 전남 고흥 출신 아니신가요?”
“그렇고말고…… 작은 아버지와는 이웃 면이긴 하지만 출신 면이 다르지. 나는 소록도 근처라고…… 소록도에 가본 적이……”
“대학 동아리에서 그곳 나환자를 위해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어요. 제가 거길 가자고 우겼지요. 몇몇은 병균이 옮길까봐 가길 꺼려했어요. 그러면 너희는 빠지라고 했지요.”
“고흥에서 언제까지 살았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중고등학교는 순천에서 다녔습니다. 고흥읍에 있는 고흥동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순천역에 근무하셨거든요. 아버지는 순천역장으로 정년 퇴직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나서…… 지금은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본사는 역삼역 근처에 있습니다.
입사한지 꽤 오래돼서 팀장으로 있습니다. 맨날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회의가 이어지죠.
별 것도 아닌 제품을 과대 포장해야 하니까요. 한 건 터뜨려야 하지요. 광고쟁이는 망상증 환자처럼 굉장한 상상력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유명한 광고회사가 아니겠는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에 근무한단 말이지.”
“시간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변호사는 시간이 돈이라고 하던데요. 제가 빼앗은 시간만큼 비용을 지불해야겠지요.”
“쓸데없는 소릴…… 보다시피 난 별 볼 일이 없으니까…… 너무 한가하다네. 하고 싶은 이야길 실컷 하게나……”
그때 나도 모르는 새 겸연쩍어서 씩 웃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잔뜩 굳어있는 그녀 얼굴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이 엿보인다.
“작은 아버지와 친구시라면……”
“나는 아주 옛날 사람이지. 내가 생각해봐도 도무지 젊은 시절이라고는 있었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아날로그. 그렇게 보이지 않나? 자넬 보니까 너무 부끄럽구먼.
혹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저기 다방 커피가 있다네. 자네 마음대로 타 드시게.”
“아니…… 괜찮습니다. 변호사님…… 이건 비밀이 필요해요. 누구에게도 말씀하시지 않겠지요? 작은 아버지가 알면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말게나. 비밀을 유지하는 건 변호사의 직업윤리라네.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전, 지금 협박을 받고 있어요. 심각합니다. 그 때문에 죽고 싶을 만큼 불안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더라구요.”
그녀의 눈에 잠깐 눈물이 고였다.
내가 말했다.
“진정하시게…… 안심하라니까…… 무슨 협박 말인가?”
“낙태죄와 관련된 것입니다.”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에는 말일세…… 남자가 여자를 간통죄로 고소하는 일은 가끔 있었네만…… 낙태죄 고소는 흔한 일이 아니었지. 낙태는 죄라는 의식이 희박했거든.”
“그래도 지금 고소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말해보게. 내가 도울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만……”
“제가 몇 달 전에 낙태를 했는데 남자 쪽에서 고소를 하겠다는 겁니다. 이제 와서 말입니다. 저는 물론이고 의사도 함께 고소하겠다는 거죠. 그것 때문에 회사에 가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그 자식을 칼로 찔러서 죽이고 싶기도 하구요. 정말 비겁하죠.”
“남자 쪽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나서 반응은……?”
“처음에는 어이없어 했어요. 우리 사이가 무척 나빴거든요.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더라구요. 이건 뭐 운명이라고 하면서…… 결혼을 서두르자고 했어요. 그게 최선책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말일세. 그 흔해 빠진 돈 때문은 아니었구먼?”
“그건 아니에요. 그렇게 치사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담배는 오랫동안 피웠다가 완전히 끊었고 한때는 술고래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술주정을 하지는 않았었죠. 제가 헤어지자고 완강하게 버티니까……”
“여자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단 말이지? 그러려면 합리적이건 아니건 간에 마땅한 핑계가 있어야 했을텐데?”
“제가 얼렁뚱땅 둘러댔어요. 우린 두 사람이 안 어울린다고 했지요. 관심사가 서로 너무 다르고…… 그걸 절충할 중간 지점이 아예 안 보인다고 했어요.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고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가면 된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그 남자는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어쩔수 없으니까 식을 올리자고 했어요.”
“자넬,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남자 쪽에서 먼저 결혼하자고 하는데 말이야……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들로 이루어진 가족이야말로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게 삼강오륜에서 말하는…….”
“전 삼강오륜 같은 케케묵은 도덕은 몰라요. 언제 적인가요……?
어쨌거나 전 결혼을 할 수가…… 그런데 제가 제 몸을 스스로 유지하고 하기 싫은 임신을 해서 그걸 없애겠다는 게…… 그게 죄가 된다는 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걸 알고 싶은 겁니다.”
“차라리 스트레스 때문에 유산했다고 둘러댈 수는 없었나? 그 정도 거짓말은 별거 아니지 않나?”
“어떻게……?”
“스트레스는 유산의 중대한 원인이라고 하더구만. 그냥 해 본 소리이지. 요즈음은…… 대안적 진실이니, 탈진실, 가짜 뉴스의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까 거짓말이 넘쳐나는 시대이거든.”
“기만과 거짓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러게 말일세. 인간은 대부분 거짓말에 능숙하다네. 동물이 보호색이라는 위장술을 쓰는 것처럼…… 그 정도로 하고 낙태의 문제로 넘어가자고.”
“다시 말씀드리면…… 저로서는 낙태가 죄가 된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되죠.”
“형법에 엄연히 규정되어 있다네. 그 법이 지금 살아있지.
낙태죄는 낙태를 한 여성 본인에게는 자기 낙태죄가 성립하지. 그리고 수술 등의 방법으로 낙태를 도운 의사는 업무상 촉탁 낙태죄가 성립하는 거야. 낙태에 대한 명시적 동의 의사를 밝힌 해당 남성은 낙태 방조죄가 성립하고.
다만 예외가 있다면, 낙태는 강간에 의한 임신인 것으로 확인되거나 부모가 유전적 장애가 있는 예외적 경우에만 허용된다네.
대부분의 경우 남자 친구 또는 남편의 신고로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된 낙태한 여성이 등장하지. 이혼 소송이나 양육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거나, 경제적 문제가 있거나, 이별을 요구하는 여자 친구를 붙잡으려는 남성들에게 낙태죄가 악용되고 있는 거야.
자네는 어떤 경우인가?”
“따지고 보면…… 우린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습니다. 남자가 복학해서 만났으니까 저보다 2년 선배이지요. 그러나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였습니다.
처음에는 행정고시 준비를 했습니다. 계속 떨어지자 방향을 바꿨지요. 그 어려운 국가정보원에 합격해서 3년쯤 근무했으나 일이 힘들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서 포기하더라고요.
지금은 금융기관에 취업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그걸 두 번이나 반복했지요.
그 기간 중에 저한테 불만이 많았으니까 이를 보상받기 위해서 다른 여자를 만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애이건 동거이건 그 기간이 하염없이 길어지면 해피 엔딩이 되긴 어렵지. 대개 그렇게 되더라고. 우리 아들도 그랬지.”
“우리가 서른이 넘어서부터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다 취업을 해서 생활이 안정되면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어요. 사실상 동거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미적거렸어요.”
“아까…… 돈 문제는 아니라고 했는데?”
“돈 문제는 아니에요. 모든 게 원만하게 잘 돌아갔다면 돈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그가 집안 일 때문이라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제가 모아둔 돈을 가져갔거든요. 그게 모두해서 5,000만원이 넘어요. 헤어질 무렵이 되니까 그 돈을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갚으라고 하니까 바로 은행 융자를 받아서 모두 돌려주었어요.
그가 막상 돈을 반환하니까 이제는 완전히 끝났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구먼. 인간의 심리라는 게…….”
“제가 오죽 잘 알아서 그렇게 했는데…… 왜 남자가 개입할 수 있는 건가요?”
“글쎄 말일세…… 옛날에는…… 아주 옛날은 그렇지 않았네.
그때는 임신 중절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어.
2010년인가…… ‘프로라이프 의사회’라는 산부인과 의사들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낙태반대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낙태수술을 한 동료 산부인과 의사들을 고발했거든. 그래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거라네. 그렇게 된 거야.
낙태 사실은 당사자인 여성과 수술한 의사하고, 상대 남성 등 극소수만 알고 있을 거 아닌가. 셋 중 한 명이 문제 삼지 않는 한 드러날 수가 없는 거야. 의사가 고소할 일은 전혀 없지. 자기도 걸리는데 말일세. 다시 말하지만 고소인은 대부분 상대 남성 또는 남성 측 가족인 거야. 낙태 사실이 발각되면 여성과 의사는 처벌을 받게 되지만 남성은 수술에 동의했다는 명시적 증거가 없으면 처벌을 면하게 되거든.
그러니까 경제적 여유가 조금만 있다면 남자에게 낙태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게…… 그게 요령이라고 하더군. 그런데 상대 남성의 동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수술을 거부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많아서 문제인 거지.
판사들도, 낙태에 대해서는 각기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통일된 게 있다네. 그래서 낙태한 여성이라도 남성 측 동의를 받으면 선고유예 처분을 하지만 동의 없이 한 경우에는 벌금형으로 조금 더 무겁게 처벌한다고 그러더라고.”
“전, 낙태할 때 남자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완강하게 반대할 게 분명했거든요.”
“남자의 동의도 받지 않고 병원 기록에도 남지 않게 감쪽같이 수술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고위험 고비용의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저의 경우에도 그랬습니다. 요즘 낙태 브로커들이 음성적으로 병원을 소개해주고 있어요. 그러면 수술비뿐만 아니라 100만 원 안팎의 추가 비용이 들게 되지요. 인터넷에 ‘낙태 가능 병원 상담 문의’ 글을 올리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쏟아집니다. 그들은 산부인과를 예약해주는 대가로 매 건당 10만원도 받고 30만원도 받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다시 말하면 여전히 그 남자와 만나거나 또는 계속 동거하고 있는가?”
“아닙니다. 문제가 터지면서부터 원룸을 얻어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혼자 살고 있단 말이지. 이 일로 구속되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는 걸로 설득하면 검사가 기소유예할 수도 있을 거고 판사는 선고유예 정도는 하지 않을까…… 최악의 경우에도 벌금형 정도겠지. 의사와 입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해. 문제는 이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면……?”
“회사는 제가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많은 생각에 잠겨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금 단계에서 내가 도와줄 게 별로 없을 것 같군. 자네는 아무래도 병원에 가 봐야 될 것 같네. 단순하지는 않은 거 같은데…… 과대 망상증일 수도 있고 피해 망상증일 수도 있으니까. 정신과 병원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네. 인간에게는 정신이 아주 중요하지. 내가 좋은 데를 소개해주지.”
“그래야만 될까요?”
내 사무실에 저렇게 젊고 예쁜 여자가 찾아온 적이 있었던가? 그녀는 초라한 이 사무실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늙었다.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늙어갈수록 사람들은 매우 비관적이 되어 가는데 그런 영향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밤이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늦게 겨우 잠들고 선잠을 자다가 일찍 깬다.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하나마나한 말이었다.
“결론 아닌 결론을 내려야겠구먼. 남자가 분노해서 고소하겠다고 위협한 것은 이해가 된다네…….
나는 지금 낙태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라네. 오히려 독실한 무신론자이지만…… 하여간에 낙태에는 찬성할 수 없다네. 생명은 소중하니까. 자네 스스로 선택한 일 아닌가.
자네 일은 자네가 책임져야지. 그러나 경거망동은 하지 말게. 자기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말일세.”

판사의 관점
지금 형법은 대다수 낙태 관련자들을 범법자로 만들면서도 처벌은 하지 않는 실효성이 없는 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규정한 법의 존재는 많은 부작용과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묻고 있는 점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조화시키는 방법이 필요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결정했듯이 임신 후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국회는 맨날 당리당략에 빠져서 싸움질이나 하고 있으니 어느 세월에 가능할 것인가?
낙태가 사실상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의사들에게만 무거운 책임을 묻기 어렵고 낙태를 한 임산부들에게는 각자 나름대로 납득 할만한 사정이 있다.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낙태죄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임신한 여성과 산부인과 의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내모는 셈이 된다.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 어른들이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피임을 거부하는 남성, 혼전 임신에 대한 사회적 낙인, 감당하기 어려운 양육비용 걱정 등 낙태에는 여성 개인이 혼자 결정하기에는 훨씬 복잡한 사회적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나우열 정신과 의원
나는 군의관 시절 육군사관학교 병원에서 근무했다. 제대 후 대학병원에서 3년간 근무했지만 질식할 것만 같은 위계 질서에 의한 조직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나와서 일찌감치 잠실에서 개업을 하였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어느새 내 머리가 반쯤은 빠져서 보기 흉하게 대머리가 되어버렸다. 아내는 요즘 유행하는 감쪽같은 가발을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적극적으로 권했지만, 하지만 거추장스러운 가발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이니까.
유 변호사님은 큰 형님과는 고향은 각기 다르지만 (우리는 충남 서천이고 변호사님은 전남 고흥이다.) 대학 동창이어서 가족적으로도 아주 친하다. 그래서 나도 몇 번 만난 적이 있고, 몇 년 전에는 심한 불면증 때문에 신경 안정제와 함께 새로 나온 부작용이 적은 수면제를 처방해준 적도 있었다.
그날, 젊은 여자 환자가 찾아갈 지도 모르니 잘 좀 살펴보라는 전화를 했다. 불길한 불안, 강박 증세가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틈을 타서 짧은 순간 그녀의 얼굴을 흘깃 훔쳐보았다.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수치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그녀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정신과 치료의 경우 우선 환자 자신이 의사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서 오십시오. 변호사님이 전화를 주셨지요. 제가 흡족하게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제가 정신과 의사이지만 제 정신도 정상적인지 늘 의심하거든요. 1983년생이군요.”
“변호사님이 반강제로 권고하셨지요. 과대 망상일 수도 있고 피해 망상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우리 사이……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에 숨기는 게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건 전혀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치명적인 오진을 할 수 있어요. 이 경우는 약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대화를 하고 해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정신과 의사는 미로와도 같이 뒤얽힌 환자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환자의 터무니없는 거짓말들, 앞뒤가 안 맞는 동기, 욕망, 계속적으로 왜곡된 단어들을 듣고 그걸 해석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환자를 돕기 위해서는 환자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 그 원인과 아픔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 공감, 인간으로서의 존중, 그에 대한 희망 등이 있어야 한다.
“저는 변호사 사무실이나 정신과 병원은 평생 처음이죠.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병원 문을 열기 직전 약간 현기증을 느꼈지요. 너무 긴장했나봐요…… 두려웠거든요. 그러나 마음이 놓이네요. 모두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비밀을 지켜주실 수 있는지……?”
“환자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의사의 직업윤리입니다.
누구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요. 자신의 비밀스러운 생각과 감정이 타인에게 드러나게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불가피합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니까요.
좋은 치료를 받으려면 우선 당사자가 간절한 마음으로 그것을 원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목이 타는군요.”
“커피를 드릴까요? 제가 이래보여도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요. 나중에 폐업하고 나서 커피점이나…… 하려구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조용하고 아늑한 내 진료실에 함께 앉아있다. 그녀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부드러운 불빛만 바라보고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면서 내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오만가지 생각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커피 맛이 정말 좋네요. 정신분석에 대해서 조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뭔가…… 궁금하군요.”
“정신 분석적 치료는 꽤 어렵답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요. 정신 분석가는 오랫동안 환자의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정신분석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 묻어두고 있던 갈등과 분노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압박하던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니까요. 그러나 정신분석 과정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분석가는 일주일에 네 번, 한 번에 한 시간, 그러니까 오랫동안 만나서 대화하는 게 필요하지요. 그러면서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두고 고심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이 동행하는 긴 여행이 시작됩니다.
환자 역시 분석가가 여행의 동반자로서 마음에 드는 사람인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하고…… 여행 경비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거든요.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까 비용이 꽤 많이 나옵니다.”
“그것뿐일까요?”
“정신분석을 시작한 이후에도 환자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을 겪게 됩니다. 원래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감정과 싫은 감정이 번갈아가며 변덕을 부리죠.
그러니까 지금은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정신분석은 보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약물치료가 가능한지 먼저 검토하겠습니다. 정신분석에 있어서는 분석가와 피분석자 간에 감정 전이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냉정한 분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낙태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게 원인이 되었거든요. 낙태를 찬성하십니까?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낙태죄 폐지 논쟁은…… 제가 잘은 모릅니다만…… 언제나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윤리적으로 무엇이 더 우선하느냐는 문제입니다.
낙태한 여성에게 불법이니 걸레니 창녀라는 낙인을 찍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경험을 털어놓기가 힘들겠지요.
그런데 남자는 낙태죄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 수술에는 남자의 동의가 필요하니까…… 앞뒤가 전혀 안 맞지요. 남자는 혹시 그런 사실이 알려져서 자기 인생에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 걱정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여성은 거기다 죄의식까지 강요받고 낙태에 대한 사회적 낙인까지 받게 됩니다.
낙태의 아픔은 오로지 여자만의 것이 되지요.”
“그렇게 이해해주시니 대단히 고맙습니다. 혹시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 아니신가요?”
“기독교 신자이긴 한데 교회에 안 간지가…… 꽤 오래되었군요.”
“저는 달콤하게 단잠을 자본 게 언제인지 기억에 없네요. 불안 강박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현실 감각도 점점 잃어가고…… 그래도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척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든지 모든 게 불명확하고 수수께끼입니다. 우리는 원인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올바른 치유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김진주에게 문제의 핵심이 될 수 있는 모든 기억들을 쏟아내게 강요했다. 그것만이 그녀의 증상과 원인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 쳐다보기만 했는데 나는 그녀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흔히 말하는 신경쇠약인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불안 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도록 말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진단을 했단 말이죠?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닐까요? 다른 신체적 증상이 있는가요?”
“밤늦은 시간이면…… 자주 변기에 대고 거꾸로 내장을 다 비우는 일이 있었지요.”
“아마 너무 긴장해서 그럴 겁니다. 낙태를 하게 된 경위랄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그 당시 상대방 남자와의 관계가 궁금하군요? 남자의 태도, 행동, 관심, 감정, 이유 같은 거 말입니다. 특히 성관계가 원만했나요? 젊은 시절 그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거든요. 낡은 학설이긴 하지만 그게 모든 정신적 질환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아이를 좋아해서 낳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전 임신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두려웠고…… 그렇다고 결혼식을 올리기도 싫었습니다. 그 시선을 견뎌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 병원에서 더 늦기 전에 당장 낙태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길래 초조한 마음에 일단 낙태 쪽으로 결론을 내렸던 것이죠.
그때는 남자와 관계가 약간 서먹서먹해서 삐걱거리고 있었는데 애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회사에서도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애를 낳았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지요. 당장 사표를 써야 했을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지금 새삼스럽게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 그 남자와의 성관계 말입니다. 그게 모든 사태의 근원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걸 자세히 말씀해보시죠.”
“성이란 지저분한 거 아닌가요? 꼭 그걸 말해야 하나요? 선생님께서 짐작하시면 될 거 아닌가요?”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면 심각한 문제가 되겠지요. 제가 뭘 놓치고 있는지 모르니까요.”
“전 섹스에 대해서는 아주 생소해요. 경험이 거의 없거든요. 몇 년 간……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지나갔지요. 처음엔 지금 남자 친구와 사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섹스는 즐거움이나 환희가 아니고 지독한 고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고 역겨운 것이었습니다.
아마 누군가에게나 닥치는 권태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내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그 혼란스러웠던 순간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성폭행을 당했던 그 순간 말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이 단계에서도저히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섹스를 할 때마다 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지요.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었고 한시라도 빨리 끝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때마다 남자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싫어진 거야?’
‘그게 아니라니까…… 아니야…… 아니’
‘그러면 왜 그래? 이럴 거면……’
‘너무 피곤해서……’
뭐 그런 식으로 맥 빠진 대화가 이루어졌지요.”
“이제는 근원적 원인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군요.”
“제가 그걸 숨기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심하게 저를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남자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죽어도 불가능했지요.
하지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무척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가끔 그게 가능했습니다. 저도 스스로 간절히 원할 때가 있었으니까요. 어떤 일인지 기분이 훨훨 날아갈 것만 같은 그런 좋은 밤에는 말입니다. 그때는 남자도 아주 맹렬하게 덤벼들었죠. 우리는 함께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가끔 여자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죠. 다시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마음과는 달리 몸이 본능적으로 말을 듣지 않은 겁니다. 절대로 기분이 들뜨지 않습니다.
그때는 정말 괴롭고 슬펐습니다. 비탄에 빠져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자기 자신을 증오했습니다.”
“여성들이 몸으로는 성적 욕망을 느끼더라도 마음으로는 성행위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는 거꾸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음은 절실히 원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거죠.”
“그게 불가피한 인간 정신의 이중성 또는 다중성 아닐까요? 자기방어적이고 위선이고 가면일 수도 있겠죠. 아니면 다른 무엇이겠죠. 일종의 피해 망상이거나 과대 망상 같은 거 말이죠. 피해건 과대이건 그 망상 사이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러면 지금부터는 옛날 첫번째 남자와의 관계를…… 그에 관해서 자세히 말해보세요. 그게 어쨌다는 거죠?”
“저는 그게 성폭력이 아닌지 점점 의혹을 품게 되고 그래서 서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 쪽에서 나에게 자꾸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싸늘한 반응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저도 포기했어요. 그에게 싫증이 났거든요.”
“그게 언제적이었던가요?”
“오래전의 일이지만요. 지금 남자를 만나기 훨씬 전이었어요.”
“가장 깊고 가장 어두운 무의식의 심연에 갇혀있었던 게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거네요.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기억나는 게 있는가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지금쯤 그때 일을 어떤 식으로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겠지요.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지금 모두 이야기해보세요.”
“그런데 이상하죠. 왜 강간범은 끝나고 나서 혐오감과 함께 불쾌감을 드러냈을까요? 전 그렇게 느꼈거든요. 저를 강제로 정복했으면 의기양양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녀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잘 모르니까……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다르겠는데 강간범들은 발기는 잘하지만 사정 순간에 전혀 쾌감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 때문에 불감증이 되는 거죠. 다시 말씀드리면 아무리 강간범이라도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성교 기계처럼 움직이다…… 막상 끝나고 나면 덧없음과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되겠죠.
그래서 소와 돼지를 그저 고깃덩어리로 바라보는 푸줏간 주인의 눈길처럼 여자의 몸을 내려다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선생님의 견해시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저의 견해인데…… 얼마든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강간범이 그때 절 위로했어요.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때문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글쎄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상력으로 지어낸 이야기에도 그럴듯하게 나름 논리가 갖추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혹시 말입니다. 그게 성적 환상은 아니었나요? 왜냐하면 강간을 당하고도 그렇게 여유 있는 생각을 하다니…… 여성들이 갖고있는 환상이 있어요.
어떤 남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명망 있고 더군다나 잘생겼고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요.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백마 탄 왕자님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가 강간해주기를 바랐던 것이죠. 저항불능 상태에서 성관계를 억지로 강요당하니까 오히려 그게 짜릿한 자극이 되고 수치심과 공포감이 사라지면서 훨씬 큰 흥분과 절정으로 치닫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성적 욕망에 대한 죄의식을 면제받는 거지요. 섹스의 빌미를 제공한 책임감을 짊어지지 않기 위해서 가식으로나마 저항하다가 무력하게 제압당하는 환상을 여자들이 즐긴다고 하죠.
물론 확실하게 근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남자들이 지어낸 허황된 소리라고 할 수도 있고요.”
“선생님이 아무리 정신과 의사라지만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군요. 남자들이란 생각하는 게 별수 없어요. 그 모양이죠. 그건 완전히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고소를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어떻게 고소를…… 그땐 언감생심이었어요. 여자는 당연히 그렇게 당하는 거라고 체념했지요.”
“그러니까…… 섹스에 대한 불안과 피해 망상, 과대 망상, 강박장애, 공포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잉 반응은 하지마세요. 그게 간단한 일이라고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가끔 일어난단 말입니다.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게 온갖 증상이 나타나는데…… 저더러 과잉 반응하지 말라고요? 불가능한 일이에요.”
“요즘 자신의 정신적 건강 상태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스스로 판단하기에 말입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비참하고…… 절망적이고…… 죄책감 때문에……”
“혹시…… 죄송합니다만…… 가끔 자기 살해의 충동을 느낄 때가 있는가요? 그럴 수 있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죽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 죽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자포자기하고 있지만 두려움이 너무 커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는 어려웠지요. 때로는 내가 왜 혼자서 죽어야만 하는 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트위터에 ‘죽고 싶습니다. 같이 자살할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누구나 해시태그로 ‘자살모집’을 검색하면 ‘같이 죽을 수 있다’는 글이 수십 개씩 검색이 되지요.
그러나 실제 그들과 연락한 적은 없습니다.”
그녀는 그때 살짝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서 부끄러운 듯 희미하게 웃었다.
“진정하십시오. 거기 올라오는 글을 믿으면 정말 바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난이 엄청 많거든요.”
“다시 생각해보면…… 혼자 죽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굴 죽이고 나서 죽을까도 생각했습니다. 분노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걸 누구에겐가 전가하고 싶었던 거죠.”
“자살은 말 그대로 자기 스스로를 살해하는 짓입니다. 범죄라고 할 수 있지요. 칼끝이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저도 고개를 거세게 흔들면서 그걸 부인하고 부인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지독한 강박관념이 된 거죠.”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리자면…… 인간 정신은 심연처럼 깊다고 봐야겠죠. 그래서인지 환상인지 환영인지 환청인지가 일어난단 말입니다. 지금……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자신의 의지로 충분히 해결 가능합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제 스스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길 오게 된 것이 아닐까요?”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예전에는 너무 좋아했지만……”
“음악에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지요. 그래도 가장 깊게 인간의 감정을 고취합니다. 잠이 오지 않는 조용한 밤이면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아무 음악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러니까 클래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노력해 볼게요.”
“요즘은 부작용이 적은 좋은 약이 많이 나왔지요. 진정제, 신경안정제, 항우울증 약을 드리겠습니다.
정신과의 경우에는 약국에 갈 필요가 없지요. 예외적으로 병원에서 직접 약을 조제해서 줄 수 있습니다.
이 약을 드시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 가능하다면 당분간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병원에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후를 살펴야 하니까요. 대략 6개월이나 1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완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매주 3번 이상 땀을 뻘뻘 흘릴 만큼 1시간 정도씩 근육 강화 운동을 하세요. 그렇게 운동을 하면 혈류량이 늘어나고 근육이 단단해지면서 그런 강박관념들을 떨쳐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약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진주가 3일째 되는 날 오후 늦게 진료실의 문을 닫고 나갔다. 그녀와의 긴 대화는 긴장되었고 힘이 들었다. 그녀가 마치 나에게 고해성사를 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실을 말했던가? 아무리 자신의 내면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조차 그것을 정확하게 의식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눈물을 찔끔거리며 과장되게 고통을 표시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녀의 말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 어떤지 정말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날조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옛날 일을 이야기할 때는 가끔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를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한 것이다.
나는 환자 앞에서 가급적 하얀 가운을 입지 않는다. 지레 겁을 먹고 더욱더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건 보험 청구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사실을 말하고 본인에게 별도로 청구하겠다고 말하기도 꺼려진다. 기본 진료비만 받고 그냥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은 아우성이다.
정신과 의사가 정신병자라면? 나는 가끔 허황한 망상에 시달린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정신 이상으로 미쳐서는 안 된다고…… 신경쇠약에 걸려서도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워야 한다. 미치면 안 되지. 신경쇠약도 안 돼.
나의 판단 혹은 진단은 정확한 것인가? 어떤 위험성이 내포된 것은 아닐까? 정신과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처방했다면 나는 의사로서 져야 할 의무로부터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면책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신과 의사가 제공할 수 있는 치료법은 제한되어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통 죽고 싶다고 하면서도 누군가 도와주었으면 하는 이중적 감정에 빠져있다. 그녀에게 자살에 대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았으면 어땠을까. 오히려 그녀를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세히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두려웠다.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에게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던가. 의지가 무너진 사람에게…… 그게 정신과 의사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녀는 망상을 앓고 있다. 반드시 약을 복용해야 한다. 약물은 약간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중추신경계에 침투하여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약은 양면적이다. 부작용이 심할 수 있으니까. 또는 전혀 효과가 없거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가 의사의 지시를 따를지는 미지수이다. 아마 아닐 것이다. 어쩐 일인지 그렇게 느껴진다. 괜히 내가 우울해졌다.

김진주
그가 스타킹을 벗기고 옷을 벗겼다. 초여름의 가벼운 산들바람이 몸을 간지렸다. 그도 옷을 벗자 근육질의 몸이 나타났다. 땀으로 끈적이는 피부, 털이 무성한 다리와 가슴과 배. 얼굴은 술주정뱅이처럼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그에게서 몸을 빼내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가 내 목을 부드럽게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눈을 감았다. 온몸이 욱신거리다가 불끈 달아올랐다. 그가 빠져나가자 고통이 사라지고 완전히 경직되었던 온몸의 마비가 풀렸다. 몸이 하늘 높이 붕 뜨는 것 같이 기분이 상쾌하고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초여름이었고 신록이 절정이었다. 꽃향기가 진했다. 남자의 땀 냄새와 섞였다. 그의 혀가 내 입속으로 헤집고 들어올 때 박하 냄새가 났다. 성에 눈을 뜨게 된 첫 경험. 나는 두려움과 함께 환희를 느꼈다. 죄책감은 없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내 육체를 짓누르고 있었던 어떤 압박감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온몸이 가뿐했다. 나는 그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바람소리만 가느다랗게 들렸다.
내가 믿고 따랐던 사람. 그를 따라서 간 게 잘못이었다.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인간이었는데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그가 테스터스 초이스 커피 알갱이에 끓는 물을 붓자 커피 특유의 향이 퍼졌다. 그 향기가 지금도 코끝에서 맴도는 것 같다.
내가 비명을 질렀던가, 살려 달라고 애원했던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하지가 않다. 아마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는 성적 욕구 때문이 아니라 단지 여자를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서 강간을 한다는 주장은 어떠한가?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힐 만큼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성교를 원활하게 할 수 있을 만큼만 부드럽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는 나의 거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내저었을 때 그건 여자들이 ‘의례껏 하는 제스처’라고 생각하거나 ‘가벼워 보이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거나 그저 ‘뭔가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거나 사실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원하면서도 은근슬쩍 그래보는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난 그 사건을 오랫동안 돌이켜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기억의 심연 속에 묻어버려야 했다. 그러므로 그 후 그의 소식은 전혀 모른다. 다만 그자가 교통사고로 죽었거나 반신불수가 되었거나…… 아니면 지금쯤 지독한 암에 걸려서 오늘 내일 하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아마 어디에선가 멀쩡하게 잘살고 있을 것이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들은 동정 혹은 호기심을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벌레 먹은 과일을 보듯 떨떠름한 표정일까.
나는 내 마음의 상처를 털어 놓고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싶었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면 그러면 한결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녀들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을지 몰랐다. 그래서 ‘Me Too’라고 말해준다면……
내가 나중에 소위 말하는 사회에서 알게 된 친한 언니 (물론 나에게는 위로 언니가 둘씩이나 있지만 부모님은 물론이고 그 언니들에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얘기했을 때, 그녀는 어디를 어떻게 얼마나 만졌느냐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였다. 그 말이 내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당장 관음증에 다름 아닌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그녀에게 그 말을 꺼낸 것을 금방 후회했지만 이제 와서 주워 담을 방법은 없었다.
사람들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은 사실 그게 그거다. 그러고 나서 왜 당시에 싫다고 말하지 못했느냐, 왜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못했느냐고, 내심 비웃는다. 그때부터 타락한 여자로 간주해버린다. 그렇다. 왜 나는 그때 끝까지 저항하지 못 했던가.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그때 진즉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는 나를 동정하면서 불쌍히 여기는 척 했다.
나도 유치원 다니는 어린 딸이 있는데 내 딸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어땠을지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단다. 내 손을 꼭 잡고 가볍게 등을 두드려주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를 위로하겠다는 것인지 그런 일을 겪지 않은 자기 자신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기쁨을 느낀다. 그걸 언젠가 읽어본 심리학 책에서는 샤덴 프로이데 Schadenfreude 라고 하였다.
친구는 말했다. 너처럼 똑똑한 애가 어떻게 그런 일을 당하면서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너무도 밝고 긍정적으로 보이는데 그런 일을 직접 겪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재미삼아 괜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합의금만 받아도 무조건 꽃뱀이라고 몰아가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신이 겪지도 않은 사건을 만들어서까지 자기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라고 말하는 여성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무척 화가 났지만 그게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건지 친구에게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 어렵다. 하필 내 인생에서 이런 추악한 일이 일어나다니. 그렇다면 이 멀쩡한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삶은 버겁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버겁다.
나는 왜 피해자이면서도 여성의 육체와 운명을 저주하고 수치스러워하며 자기혐오와 우울증으로 고통 받아야 했던가. 나는 왜 해리성 인격 장애자처럼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며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았던가. 가해자가 누구란 말인가. 페미니즘은 뭘 하고 있는가.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마음껏 성을 향유하면서 채찍질을 받고 쾌감을 느끼는 SM을 한 번쯤 시도해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내가 성폭력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예쁘다고? 성폭력이란 남자가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자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성폭력 피해자란 무조건 예뻐야 하고 섹시해야 된다. 그러니까 예쁘지 않은 여성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폭력이란 성적 매력이 넘치는 예쁜 피해자가 짧은 옷을 입고 밤늦게까지 밖으로 싸돌아다녔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성폭행은 폭력으로 욕구를 채우려는 남자가 아니라 오히려 남자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킨 또는 내심 그러길 간절히 원하는 (호박씨 까는) 여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성폭력을 당한 나는 충격을 받고 남성 혐오주의자로 거듭나게 되었는가. 그래서 여성을 만나 섹스를 하는 레즈비언이 되었는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었다. 가부장제의 남존여비 관념이 투철한. 어머니는 항상 결혼을 강조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처녀로 결혼해서 남자는 아버지 한 사람밖에 모른단다.’

처음에는 내가 콘돔을 요구했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난 남자 친구는 잘 안 하려고 했다. 남자 친구는 이런저런 말을 둘러대며 안 하려고 했다. 관계를 가질 때마다 불안했다. 그러나 남자 친구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콘돔 안 끼는 걸 대단한 사랑의 증거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더 이상 요구를 못했다. 임신 때문에 고통을 겪는 건 나인데 말이다. 내가 낙태를 하게 된 것도 결국 피임을 안 해서였다. 내가 왜 강하게 피임을 요구하지 못했을까.
섹스에 응하고 남자에게 만족을 주는, 사랑받는 여자가 돼야 한다는 환상 때문이었다. 보다 근원적인 나만의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귀찮은 것은 상관 안 할 테니까 계속 더 세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날 마구 짓누르면서 때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그때 날 마구 때리고 짓밟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얼마나 속이 시원했겠는가.
그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성에 눈을 뜨게 된 첫 경험. 나는 그 시절 성에 눈을 뜨면서 느꼈던 그 놀라운 환희를 다시 맛보고 싶었다.
(첫사랑의 꿈이 달콤한 것은 나무에 피는 꽃보다도 빨리 시들고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는 순수했고 단순했고 그만큼 강렬했다. 근육질의 단단한 몸이 내 몸을 조이면서 들어올 때의 그 느낌이 그립다.
그때 그가 해외연수를 떠났기 때문에 잠시 헤어져 있을 때는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가 그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무렵 그의 호감을 사고 싶었기 때문에, 그가 싫증을 내고 다른 여자에게 가면 안된다고 심각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 외모 지상주의에 빠졌다. 나는 TV 속 걸그룹처럼 쌍꺼풀 짙은 큰 눈에 서양 여자처럼 오똑한 코, S자 몸매를 하고 싶어서 남몰래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쌍커풀 수술과 코 수술을 했고, 둥근 턱선을 뾰족하게 만들려고 턱에 필러와 보톡스를 맞았으며, 일주일에 두 번씩 헬스 개인 교습도 받았다. 그를 꼭 붙잡아야 했다.
지금 나는 혼자이고 외롭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몇 번이고 경험한 일이지만 사랑이란 허무한 것이다. 감정의 골은 깊을 대로 깊어졌다. 나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가 날 고소한다고? 그게 가능할까? 그는 분노가 폭발했지만 지금쯤 많이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는 우유부단한 인간이 아니었던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로 마음 먹을 수 있을까.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약을 먹지 않겠다. 내 의지로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게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휴가는 끝났다. 내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열심히 일을 하면 잊혀질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이건 의사이건 그들이 내게 무얼 해줄 수 있단 말인가. 늙은 변호사와 대머리 의사. 그들 역시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이 내 마음 속에서 들끓고 있는 섬세한 감정적 문제를 이해할 수 있었단 말인가.
마치 형사가 범죄 사실을 조사하는 것처럼 온갖 질문을 다 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범했단 말인가. 정신과 의사는 나에게 어리석고 모욕적이며 거만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고작 당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에게 달려있다, 당신의 문제이니까 당신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였다. 당신들이야 남의 일이니까 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지. 그런 말을 누군들 못 하겠는가. 그들은 전문가랍시고 자신을 과대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가 딱 하나 정확하게 짚은 게 있지. 인간 정신이 이중적이거나 다중적이라는 거…… 여자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으니까.
그들은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나쁜 개자식들.

우리는 연말에 즈음해서 우리끼리만 작은 망년회를 갖기로 했다. 고향 친구들 4명이 교대역 부근 남원 추어탕에서 쏘가리 매운탕을 시켜놓고 처음에는 소주를 마시다가 소맥으로 넘어갔고 1차가 끝나자 입가심을 하기 위해 생맥주 집으로 옮겨 모두 얼큰하게 취하고 나서야 헤어졌다. 나는 그녀의 작은 아버지인 김준식과는 13번 출구 개찰구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그는 2호선을 타고 사당동 쪽으로 가고 나는 3호선을 타고 수서 쪽으로 가야 되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그 녀석이…… 끝내 죽고 말았네. 자살했다는 말일세. 좋은 소식이 아니어서 진즉 말하지 못했네.”
“……”

김재희 경사, 심리적 부검 psychological autopsy
나는 지금 성동경찰서 강력계에서 여전히 근무하고 있다. 무슨 팔자인지 경찰에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강력계만 뺑뺑 돌았다. 하지만 지겹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그게 내 신체조건과 생리에 딱 맞는 일일 것이다. 내가 경찰이 되지 않았더라면 거의 틀림없이 조폭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몽둥이나 칼을 들고 설치는 행동대원을 거쳐서 단계적으로 올라갔다면 중간 두목쯤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최정상급 두목이 되었을 리는 없다. 그건 내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승진할 가망은 없다. 정년은 5년 남았다. 정년 이후 남은 긴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그런데 살인 사건은 물론이고 자살 사건 역시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것이므로 대개 강력계에서 처리한다.
경찰이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다보면 반드시 죽음의 원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경찰은 수사와 부검 등을 통해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데 때때로 사망자의 사망 직전 정신 상태를 조사하여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판단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이를 심리적 부검이라고 한다.
자살자들은 자살하기 전에 자살을 암시하는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심리 부검은 자살 직전 나타나는 이러한 흔적들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자살자가 남긴 일기, 메모, 가족 내부의 문제, 친구들이나 지인과의 통화 내용, 카카오톡 메시지, 자살 직전의 행동 등이 중요한 분석 자료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징후들은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에 비로소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드러난다. 가족들조차도 자살의 징후를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족들이 알까 싶어 자신의 마음을 더 감추기 때문이다.
김진주가 혼자 살고 있던 원룸에서 사망했다는 신고를 받고 성동경찰서 강력계 형사 2명이 출동하였다. 그녀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틀째 결근을 하자 회사의 직장 동료들이 집으로 찾아갔지만 문을 열 수 없었다. 우리는 열쇠공을 불러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의 집은 저장강박증 환자의 집처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싱크대에는 언제 먹었는지도 모를 음식 찌꺼기가 굳어있고 그릇은 씻지 않은 채 가득 쌓여 있고 화장실에는 물도 내리지 않아 악취가 풍기면서 지저분했다. 침대와 방바닥에는 정리되지 않은 채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수북이 쌓여 있고 온갖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회사의 직장 동료들은 항상 깔끔한 그녀를 기억하면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단 표정이었다.
나는 죽음의 원인을 캐기 위해 직장 동료 3명을 불러 조사했다. 그들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 의아해했고 더욱이 자살에 대해서는 전혀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가족들은 처음에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면서 믿지 않았다. 타살로 간주하고 수사를 요청하였고 경찰에서도 다방면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특히 그 상대 남자를 주목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알리바이가 확실하게 성립되었다. 아무도 집에 침입한 흔적이 없었다. 화장대 서랍에는 여러 군데 정신과 병원에서 조제해주었으나 먹지 않고 내버려둔 약들과 약국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진통제, 신경안정제, 수면제, 각성제, 아스피린 계통 약들이 수북했다.
가족들과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김진주는 과거이건 현재이건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외부적으로 드러난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수사 결과 약물 과다 복용에 의한 자살로 판명되었다.
그녀는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 잘하는 착한 학생이었고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나무랄 데 없는 유능한 사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자살한 것이다.

나는 그 유별난 유서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경찰에게 남긴 유서였기 때문이다. 유서란 보통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에게 남기는 법인데 경찰에 남긴 유서라니. 나는 그때 처음 그런 유서를 보았고 그 후로도 보지 못했다.
그녀의 이름, 김진주 때문에 그 유서가 갑자기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관악경찰서 강력계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그 유서의 요지는 그랬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그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
자신은 분명히 자살한 것이며 타살이 아니므로 수고스럽게 더 이상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이런 일로 경찰을 번거롭게 해서 매우 죄송하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죽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자살의 이유를 자세히 적었던 것이다.
자신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립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와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3년차 신입사원이라고 했다.
그 무렵 김진주와 알게 되고 곧바로 결혼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깊은 관계가 되었다. 그들은 초여름 충주 월악산으로 산행을 하면서 처음 성관계를 가졌지만 둘 다 그날이 생애 최초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깊이 사랑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호흡이 너무 잘 맞았으므로 정말 육체적으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1년 동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수히 온갖 체위를 흉내 내면서 섹스를 했다.
그러나 즐거웠던 시절은 짧았다.
그가 3달간 해외연수를 갔다 온 사이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가 회사의 인사부장에게 그가 강간범이라고 상세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회사는 그의 변명이나 해명을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퇴직을 강요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에 번진 뒤숭숭한 소문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회사의 인사부장이 조용히 불러서는 말했다고 한다.
“내가 학교 선배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다니까. 위에서 저렇게 다짜고짜 난리를 치니까 말이야. 회사 망신이라는 거지. 그러니 조용히 사표를 내라고. 그리고 잠시 잠잠해질 때까지 숨어 지내야지.”
그래서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배신감과 충격 때문에 잠시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부모님과 친구들, 회사 직원들 뵐 면목이 없어서 이런 식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는 수사를 종결하면서 냉철하게 결론을 내려야 했다. 김진주는 自害恐喝犯이었다. 여자의 죽음은 현재와 과거, 기억과 현실의 뒤엉킴, 자기연민과 인간의 미망이 초래한 自業自得이었다.
작성일:2023-12-23 13:21:54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