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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소설> 살인의 추억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3-12-09 12:38:16
조회수
53
살인의 추억 追憶



분노나 공포의 감정에 몰리지 않고
단지 절명하는 형상을 보려고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다니……
― L.A. 세네카



수원지방검찰청 405호
검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편지를 들고 흔들었다.
검사가 말했다.
“이게…… 이름이…… 이게 당신이 보낸 편지인 거지?”
“맞습니다. 제가 보냈지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한여름에 엉뚱한 편지를 받았단 말이지…… 이딴 걸 왜?”
“잘 읽어보시면……”
“잘 읽지는 않았고 대충 훑어는……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니까 사랑의 배신에 대해 복수를 하겠다는 거 아닌가? 복수 그거 쓸데없는 짓 아니야? 사랑도 그렇고? 그저 잊어버리면 되는데.”
“그럴수도 있습니다만. 복수는 꿀처럼 달콤하단 말입니다.”
“뭐가? 복수가 꿀처럼 달콤하다고? 그래, 그렇다면 당신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어보자고.
무슨 대단한 이야기인지 말이야? 도대체……?”
“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말이야, 당신이 김중오를 만나게 된 경위랄까, 자초지종이랄까……”
“뭐…… 뻔하죠. 교도소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감방 동기라고?”
“그런 셈이지요.”
“그래서?”
“김중오는 무슨 전과가 몇 번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술을 마시다가 옆 사람과 사소한 일로 싸우게 되었는데…… 그만 칼로 마구 찔러 중상을 입힌 거죠. 그래서 중상해죄로 5년을 살다가 나간겁니다.
저는…… 잘 아시겠지만…… 살인죄로 무기 복역수니까 언제 나갈지 모르지요. 죽은 다음에 시체가 되어야만 나갈지도 모르죠.”
“그건 알겠다고…… 살인죄의 무기수라는 말이지……”
“예…… 그러나 그 살인이라는 게 너무 억울합니다.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거든요. 그냥 미칠 듯이 화가 나서 마구 찌르다 보니까 실수로 오목가슴을……”
“다들 그렇게 말하지.”
“그 친구는 친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비열한 인간이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잘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건, 그냥 넘어가자고요. 그러니까 감방 동기 이야기를……
자세히 말해보라고.”
“김중오와 저는 감옥 안에서 연인관계였어요. 그래서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은밀하게…… 제가 어리지만 능동적이고 그는 수동적이었죠. 다시 말씀드리면 제가 남자 역할을 하고 그가 연상의 여자를……. 그는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여자가 남자를 챙겨주듯이 저를 보살펴주었어요.”
“호모라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궁금하구만?”
“그냥…… 부둥켜안는 거죠.”
“짐승처럼 말이지……”
“말씀이…… 담벼락 안에서는 지독히 외로우니까 남자끼리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그 더러운 감방 생활은 정말 고통스럽지요. 그걸 견뎌내려면 누군가 친근한 사람과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남자끼리도 사랑이 싹트는 거예요.
그런데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랍니다. 미국 정신과 의사들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을 배신하느냐 그거지? 사랑이 벌써 식어버린 건가? 아니면 질투 때문에…… 질투는 가장 절대적인 감정이라고 하니까…… 그가 석방되어 떠나니까…… 여자란 그런 것 아냐? 안 보면 식는 거지.”
“그쪽은 확실히 배신자죠. 약속을 어겼단 말입니다.
1년 전에 만기출소하고 나서 면회 한 번 안 오고…… 그는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독한 여성혐오주의자죠.
밖에서 아는 남자가 생긴 것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질투라면 할 수 없죠. 제가 한심하긴 합니다만……”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그렇다고 치자고…… 무슨 희망 사항이 있던데?”
“저에겐 조그마한 희망 사항이 하나 있어요. 검사님께는 하찮은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자유가 그립죠. 너무 그립습니다. 제 남은 인생을 밖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군요. 그걸 검사님이 도와주십시오.”
“일종의 딜을 제안한 것인데…… 뭘? 내가 어떻게?”
“전 지금까지 안에서 15년을 살았지요. 그리고 정말 모범수였습니다. 목공 일을 열심히 배웠고 수당도 전부 모아두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가석방 심사가 있거든요. 제가 그걸 신청했는데 도와주신다면…… 안에서 사람들이 그랬어요. 법무부나 검찰 쪽에서 도와주면 쉽게 통과된다고……”
“정신 차리라고…… 그것과 이 사건은 전혀 별개야.
그건 내 소관 사항이 아니거든. 그렇게 알고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자고…… 하지만 일이 잘 풀리면 나중에 고려할 수 있겠지.”
“그가 감방에 있을 때 자신의 석방 일보다는 어떤 특정한 날에 대해서 몹시 신경을 썼어요.”
“왜? 그 특정한 날이란 게……? 그게 언제라고 하던가?”
“저는 잘 모르지만, 그 날만 지나가면 완전히 자유라고 했거든요. 손꼽아 기다렸어요. 그게 얼마 안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짚이는 게 있는 겁니다. 그가 살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제가 그때 너무 분해서 물불 안 가리고 날뛰다 보니 실수했다고 했어요. 그 순간이 내 인생을 망쳤다면서 하염없이 울었어요. 저의 경우에는 그게 2000년 5월에 일어난 살인 사건이었지요. 그러니까 나를 위로 한답시고 하면서 자신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고 실토하더군요. 무슨 운명인지 우연의 일치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여름이었답니다. 2000년 8월인가, 경기도 화성에서 말이죠. 어떤 여고생을……”
“2000년 8월이라……? 그리고 화성이라고……?”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그자가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을 애타게 기다렸군. 정말 안타깝군. 태완이법이 생기면서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졌는데…… 이를 어쩌나? 단 며칠 차이로.”
“뭐라고요?”
“잘 알았다고. 조사해보면 뭐가 나오겠지. 내가 경찰에 특별히 지시를 내릴 테니까.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달콤한 커피 한 잔 대접 해야겠죠?”

2000년 8월 중순경 무더운 여름날 오후 늦게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멱우리에 사는 한 농부(본인이 경찰 조사에서 한사코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름을 알 수 없다.)가 낚시를 하기 위하여 멱우 저수지로 올라가던 중 그 저수지 배수구에서 그 아래 농경지로 이어지는 높이 1.5미터, 폭 3미터의 농수로에서 신세리의 시신을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배수로는 50센티미터 정도 깊이의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시체는 상의 속옷만 입은 채로 양손은 얼굴 쪽으로 모아지고 다리는 배 쪽으로 웅크린 채 엎드려 숨져 있었다. 주검의 다리와 가슴 부분과 손목에는 멍든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신세리의 손톱과 발톱에는 진한 빨강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는데, 양쪽 손톱에는 아주 정성스럽게 칠한 반면에 발톱에는 아주 조잡하게 칠해져 있었다. 오른쪽 발은 윗부분 절반만을 대충 칠했고 왼쪽 발은 발톱 전체를 칠했는데 새끼발톱은 칠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무슨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었다. 다만 변태성욕자가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는 하였다.
그 무렵 신세리는 고3학생으로 대학입시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은 채 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이 매니큐어는 범인 아니면, 혹은 제 3자가 칠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신세리는 그 당시 만 17세의 여고생이었다. 그때는 여름 방학 중이었지만 그녀는 3학년 학생으로 그 날 오후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고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화성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은 시체 발견 후 20일이 지나서 신세리의 집에서 8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화성시 장안면 은석리 대성 저수지 위쪽 언덕 일대에서 신세리의 책가방과 신발, 양말, 리넨으로 된 하얀색 상의, 책가방에 들어있는 몇 권의 대입 수험서들과 노트, 필통, 소형 녹음기 등 소지품을 발견했다. 이어 며칠 후에는 화성시 팔탄면 율암리 도로확장공사 현장 인근 계곡의 쓰레기 더미에서 신세리의 휴대전화가 발견됐다.
신세리의 소지품은 보란 듯이 언덕 풀밭에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이 가운데 신세리의 이름이 있는 부분은 모두 찢겨나간 상태였다. 그 당시 부검을 실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범인이 수심 50센티미터인 배수로에서 희생자의 목을 졸라서 익사시켰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세리의 시체에서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현장에 어떤 증거가 남아있지도 않았다. 경찰은 신세리가 하의가 벗겨진 반나체로 발견됐다는 점에 주목해 범인이 성폭행 후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정액은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립과학연구소는 시체의 부패정도와 강직도 그리고 엄밀한 과학적 부검결과를 토대로 8월 초순쯤 (5~6일 사이에) 살해된 것으로 확정했다.
경찰은 몇 가지 단서를 근거로 살인범의 정체를 추적했다.
신세리의 소지품은 모두 실종 당시 그대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름이 있는 부분은 모두 찢어진 채였다. 경찰은 이것을 근거로 범인이 신세리를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니까 신세리의 이름이 알려지면 자신이 지목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찢어버렸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 경찰은 당시 신세리와 한 때 친하게 지냈던 초등학교 선배인 신ㅇㅇ을 용의자로 지목해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해서 조사하였다. 그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
당시 경찰은 신세리의 휴대폰 배터리가 분리되어 있어 위치 추적이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신세리의 휴대폰은 배터리를 분리해 버리면 휴대폰 위치 추적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범인이 휴대폰과 배터리를 분리해서 버렸다는 것은 범인이 범행 전부터 이 사건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추측을 낳게 하였다.
신세리의 하의 속옷은, 특히 팬티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경찰은 속옷을 범인이 가지고 갔을 것으로 보고 범인이 변태성욕자인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범인이 속옷을 살인사건의 기념품으로 생각하고 가져갔다는 것이다. 또는 변태성욕자라고 의심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이를 위장한 지능범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었다. 현장에 자신의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 약 800미터 아래로 내려간 배수로 근처에서 정액, 체모가 붙은 휴지조각이 발견되었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그게 이 사건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고 추적했지만 탐문조사 결과 전혀 다른 사람―인근에 사는 청춘 남녀가 그곳에서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사건은 그 연쇄살인 사건 10건 중에서 1989년 8월 화성시 봉당읍에 사는 여대생 피살 사건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선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인적이 드물고 사람이 쉽게 찾아올 수 없는 곳이었고 그 사건들의 피해자들처럼 신세리의 옷이 벗겨진 채 발견된 점도 비슷하였다. 그 연쇄살인 사건의 경우 피해자 모두 옷이 벗겨진 채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다만 차이점은 신세리의 경우 그들 사건의 피해자들처럼 성폭행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신세리의 시신이 발견된 후 며칠이 지나서 화성 시장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환전상을 하는 김ㅇㅇ(당시 37세의 여자)가 실종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그 환전상은 한 달 여 만에 배수로의 옹벽 쪽 도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래서 경찰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 사건과 관련성에 대해서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환전상을 살해한 용의자 두 명이 쉽게 검거되면서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은 경찰 조사에서 말했다. “그 환전상은 평소에 잘 알고 지냈지요. 그래서 복면을 하고 돈을 빼앗기 위하여 환전소 사무실에서 퇴근하는 여자를 미행해서 붙잡았지만 그 여자가 우리들의 목소리를 듣고 누구인지 금방 알아채버렸습니다. 그래서 목을 졸라 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사의 지시에 따라 수사를 개시한 경찰은 이 사건 조사를 화성경찰서 강력팀으로부터 경기지방경찰청 장기미제 전담 수사팀으로 인계했다.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된 것을 계기로 유능한 형사들이 보강된 장기미제 전담 수사팀이 새로 구성되었고 그동안 화성서에서 수사한 자료를 토대로 하여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게 된 것이다.
전담 수사팀의 형사들은 수사 경력, 근무성적 등 심사위원회의 엄격한 평가와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됐다. 그들 중 일부는 미제 사건을 담당한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 미제 사건 수사의 노하우가 쌓여 있는 우수한 형사들이었다. 그들은 수사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대단했다. 경찰이라는 직업 정신과 투철한 정의감과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담 수사팀은 사건 발생 5년 넘게 풀지 못한 숙제를 가져와서 맡는다. 그 당시 사건을 역추적해서 재구성 하는게 주된 업무다.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단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변 참고인의 기억도 희미해진 상황이므로 일반 범죄 사건의 수사와는 크게 다르다. 미제 사건이 장기로 흘러갈수록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미제로 남는 가장 큰 이유는 증거 부족이다. 그 당시에도 찾지 못한 증거를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난 뒤 다시 찾기란 쉽지 않다. 과거에 놓쳤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산더미 같은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범인을 붙잡기 위해 모래밭에서 바늘이라도 찾는 각오로 일한다. 포기하면 사건은 흙 속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다. 불굴의 집념과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보다 발달한 과학수사 기법은 새로운 증거, 놓친 단서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신세리의 가족들이 전담 수사팀으로 찾아와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가져준 것 자체가 너무도 고맙다고 하였다.
화성 시청의 지방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는 시간이 지났으니 잊어버리라고 하지만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남의 일이라고…… 시간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사건은 그때부터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억누르고 있지요.
늘 공황 상태였어요. 우리 가정을 산산이 조각내 버렸지요.”
전담 수사팀의 팀장이 말했다.
“딸을 잃은 부모님께 경찰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유족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질문할 때면 그럴 때마다 겨우 아문 상처를 다시 후벼 파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요. 그러나 분명히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그 약속을 지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신의 섭리에 따라 가족을 잃어도 슬픈 일인데…… 불행하게도 아무런 영문도 알 수 없이 가족을 잃으면 그 상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피해자 가족의 상처를 하루 빨리 풀어 주는 것이야 말로 우리 전담 수사팀의 존재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태완이법 때문에 공소시효가 폐지되니까 범죄자는 끝까지 쫓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지요.
그게 누구를 위한 법이란 말입니까? 악법 중의 악법이 마침내 폐지된 겁니다. 끝까지 수사하는 것만으로도 억울한 피해자 가족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겁니다.”
신세리 사건은 여전히 화성경찰서에서 수사 중이었다. 사건 자체가 종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화성경찰서에서 지속적으로 수사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탐문 수사를 해 보아도 목격자나 제보 전화는 없었다. 수사 진행 중 두 명의 관할 경찰서장이 정기 인사로 교체되었고 피해자의 집에서 잠까지 자며 수사에 열정을 보였던 수사반장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식욕부진과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과다복용하다 그 후유증으로 일찍 죽었다. 그 수사 반장은, 밤마다 그 놈이 꿈속에 나타난다고 호소하였다. 살인범이 흡혈귀의 빨간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면서 밤마다 찾아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들은 현재 뿔뿔이 다른 지역으로 전출되어 흩어지거나 정년 퇴임했다.

일명 ‘태완이 법’
세칭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은 1999년 5월 20일 여섯 살 난 김태완 군이 집 근처 보습학원에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중 동구 효목동 골목에서 한 중년 남성이 뿌린 황산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사망한 사건이다.
전신에 3도 중화상을 입은 태완이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이 겹치면서 49일 만에 그만 숨을 거두었다.
태완이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황산을 덮어쓰기 전 이웃집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찰 수사 당시 골목에서 그 남자를 보았다는 목격자도 나왔다. 이에 따라 경찰은 그 중년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했으나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결국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2005년 7월 경찰 수사본부가 해체되고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그 후 태완이 부모와 시민단체의 청원으로 2013년 말 수사가 재개되었다. 여전히 범인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공소시효의 만료가 가까워졌다. (그때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5년이었지만 태완이 사건에는 소급 적용이 불가능했으므로 구 15년이 적용되었다.) 태완이 부모는 공소시효 만료 3일 전인 2014년 7월 4일 그 남자를 고소했고, 같은 날 검찰이 불기소처분하자 곧바로 대구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7월 7일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그 아저씨에 대해선 재정신청 심판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중지되었다.
그러나 대구고등법원은 2015년 2월 3일 재정신청을 기각한 데 이어 2015년 7월 10일 대법원도 재항고를 기각했다. 태완이의 부모는 며칠 후 ‘재항고를 모두 기각한다’라는 짧은 문장이 달랑 기재된 결정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똑같았다. 한결같은 기각 이유는 수사 결과를 번복할 만한 추가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태완이 어머니는 말했다.
“…… 태완이의 해맑은 꿈을 훔쳐간 범인은 이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엔 진실로 죄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 없는 건가요. 죄에 대한 벌은 어떤 형식으로든 받는다고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닌가 봅니다. 살아남은 유족의 고통은 말로 설명이 되지 않지요. 유족의 가슴 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부모에게는 공소시효가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왜 법이 범인을 용서하느냐는 거죠. 공소시효란 게 무엇이란 말인가요? 그게 정의의 실현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요? 그건 살인범을 보호하는 법이 아닌가요? 왜? 살인범이 보호되어야 하죠? 우리는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무참히 희생된 어린아이를, 국민을 지키는 것이 법이 할 일입니다.”
(대법원은 기각 결정이 그렇게도 화급한 일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렀던 것일까? 바쁜 사건은 제멋대로 한없이 늘어지면서 말이다. 그들의 재판 행태를 보면 재판 기간은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제멋대로인 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일까? 우리 모두의 망각을 위해서? 많은 망각 없이는 인생은 살아갈 수 없으니까? 흉악한 범인의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 그의 또 다른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그가 평생 겪어야할 죄의식과 불안, 공포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가 이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흘리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무고한 피해자의 인권은? 피해자 가족의 억울한 심정은? 내가 알 바 아니야. 이 경우 정의는 무엇인가? 당사자 간 이해관계는? 형평성은? 국민의 법 감정은?
판사들의 사고방식은 늘 그 모양이다. 법조문의 형식 논리에 꼼짝없이 갇혀있으니까. 그들에게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법률 조항이라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법조문이 언표할 수 없는 법의 정신, 법의 기초, 이념, 배경, 사회 공동체의 감정 같은 언외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항상 역부족이다.)
어쨌거나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범인이 밝혀져도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15년이었던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25년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부칙 단서에서 소급효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완이 사건은 15년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니까 태완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 유명한 영구 미제 사건이 되었다. 첫 번째는 경기도 화성에서 여성 10명이 성폭행 후 살해당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 (1986~1991년)’이었고 (이 사건은 영화 ‘살인의 추억’과 드라마 ‘시그널’ 등에서 재조명되면서 80년대 말 끔찍했던 집단적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두 번째는 역시 대구에서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나간 소년 5명이 영구 실종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 (1991년)’이었으며, 세 번째는 이형호 (당시 9세)군이 납치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 (1991년)이다. 경찰 수사의 한계를 드러낸 ‘3대 미스터리 미제’로 불리는 이 사건들은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나버렸다.

공소시효는 검사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공소를 제기하지 않은 경우에 국가의 형사소추권이 소멸된다는 것이다. 형의 시효가 판결 확정 후에 이미 발생한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임에 비하여 공소시효는 국가의 판결 이전에 형벌 소추권을 소멸시키는 제도이다. 시효제도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생긴 사회적 실체를 존중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에 기여한다고 한다. 특히 공소시효를 인정하는 특별한 근거는 시간의 경과로 인한 처벌욕구의 감소, 증거의 멸실, 국가수사기관의 과도한 부담의 경감, 범인의 고통의 완화 등이 근거라고 설명하지만, 반드시 그럴까.
공소시효 만료 사건의 소급 적용에 대한 반대논리도 강력하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이라는게, 형벌불소급 원칙이라는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누굴 위해서? 특히 흉악한 범인의 법적 안정성이 정의의 관념보다 더 중요하고 강력한 것일까.
인간은 복수를 원한다.
백 살이라도 복수심은 유치 ((乳齒) 인 채로 남아있다. (이탈리아 속담)
복수는 꿀보다 감미롭다. (호메로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화상에는 화상으로, 상처에는 상처로, 멍에는 멍으로 갚아야 한다. (함무라비 법전 또는 구약성서)
그러므로 잔혹하고 심각한 범죄에 대한 처벌 욕구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증거의 수집과 보존, 복구와 재현이 간편해졌기 때문에 공소시효의 필요성에 더욱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는데 시대착오 아닌가.
현재 공소시효가 폐지된 대표적인 범죄는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는 집단학살죄,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등이다. 또한 최근 여성,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성폭력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를 배제하거나 공소시효의 특례를 정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군형법’ 등 참조)
그리고 일명 ‘태완이법’이라고 하는 개정 형사소송법은 사람을 살해한 범죄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형소법 제253조의2 참조) 이 법 시행 전 행하여진 범죄로써 이 법 시행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범죄에 대하여도 이를 적용하도록 하였다. 이 개정 법률은 2015년 7월 24일 국회를 통과하여 7월 31일 공포되고 그날부터 시행되었다. 따라서 7월 31일까지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범죄는 이후 공소시효가 영원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태완이법’을 계기로 지방 경찰청마다 살인사건 관련 장기미제 전담 수사팀이 꾸려져 활동을 개시했다.

전담 수사팀 형사들은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에 있는 김중오의 집을 기습적으로 압수 수색했다.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방은 굳게 잠긴 채로 잠들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안방 장롱의 맨 아래 서랍 속에서 뭔가 들어있는 손때가 묻은 반질반질한 예쁜 상자를 발견한 것이다. 오래된 나무상자로 경첩을 조이는 한쪽 나사가 풀어져 있어서 뚜껑이 헐거웠으나 맹꽁이 자물쇠가 붙어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뜻밖에도 자신이 어렸을 적에 찍었던 빛바랜 흑백사진과 (그만이 알 수 있는 비밀 문자나 기호로 무슨 은밀한 내용이 빽빽하게 써 있는) 수많은 메모들, 편지 등과 여자 팬티와 생리대, 손수건, 말라비틀어진 립스틱, 십자가 목걸이, 브로치 그리고 사건 현장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 장의 사진이 발견되었다.
그때 경찰은 마음만 급해서 시간이 촉박했으므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압수 수색과 긴급체포는 8월 12일 같은 날 동시에 이루어졌다. 경찰은 그를 체포해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를 벌였다. 그는 처음에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하면서 또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하면서 경찰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태완이법을 들이대자 말문이 막혔고 그러고 나서 자신은 신세리와는 생명부지의 사람으로 이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극구부인하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보관 중인 신세리의 DNA와 그 상자에서 찾아낸 팬티의 체액에서 나온 신세리의 DNA와 역시 팬티에서 나온 김중오의 정액에서 검출된 DNA를 어렵게 감별해냈다. 그리고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채취된 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보관 중이던 김중오의 DNA와 비교 확인하였다.

경기지방경찰청 조사실
경기지방경찰청의 (흔히 프로파일러로 불리는) 범죄행동분석관 유형석 경장은 김중오를 조사하게 되었다.
유형석 경감이 말했다.
“절도 전과가 자주 있었네요.”
“……”
“옛날 주거침입 절도에 대한 수사기록을 자세히 검토했지요. 보니까 피의자는 16살 때 동네 처녀가 속옷을 입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짜릿한 흥분을 느꼈는데…… 그때 여자는 빨간 팬티를 입고 있었네요.”
“……”
“그런데 명문 대학도 나왔고 군대도 갔다 왔지만 좋은 직장에 취직도 안 되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 경제적으로 힘들고 그래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자 어릴 적 흥분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이죠. 그러니까 여자의 속옷, 그중에서도 빨간 팬티를 보면 짜릿한 전류가 온몸으로 타고 흐르는 것이죠. 그 팬티를 손에 넣어야 하는 충동 때문에 이성을 잃고 담을 넘어 주거침입을 하게 된 것이죠. 그렇습니까?”
“저는 여자에게서는 충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빨랫줄에 걸린 팬티만 보면 흥분하고 말아요. 제 절도 전과라는 게 별 것 아닙니다. 모두 빨랫줄에 걸린 팬티를 들고 나온 것이죠. 그게 몇 푼이나 나간다고? 절도범으로 구속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바로 페티시즘, 다시 말하면 물품음란증이라고 하는 겁니다.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에 성욕을 느끼는 성도착증이란 말입니다. 특히 여성의 신체를 상징하거나 여성의 몸에 닿는 물건이 그 대상인데, 따라서 여자의 속옷이 대표적인 것이죠.그러니까 피의자도 그 여학생의 속옷 때문에 흥분해서 미쳐버린 것이죠.”
“제가 잘못한 것입니다.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팬티만 벗어 달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어린 것이 너무 반항하자 그만…… 제가 그때 너무 화가 났거든요. 어린 것이 어른을 화나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피의자는 여학생을 죽이고 나서 옷을 벗기고 나서 그 팬티에다 행위를 한 것이죠. 인정하시겠습니까?”
“……”
“그런데 피의자의 집은 원래 그 당시 화성시 태안읍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거기가 고향인 거죠.”
“네…… 나중에 우정읍으로 이사했습니다.”
“그게 언제적인가요?”
“아마…… 1998년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그거 연쇄살인 사건도 기억하시겠네요.”
“그렇지요, 워낙 유명한……”
“그게 1986년부터 1991년까지 6년 동안 10명의 부녀자가 살해된 사건이지요. 범행 장소는 태안읍에서는 안녕리, 진안리, 병점 5리, 황계리 등이고, 정남면 관항리 일대, 동탄면 반송리, 팔탄면 가재리 등이지요. 이 중에서 피의자가 특히 생각나는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아련한 추억처럼 살인의 기억이 되살아날 텐데요?
아마…… 1991년 가을경이었지요?”
“무슨 말씀인…… 다 끝난 사건……”
“그렇긴 합니다. 그냥 참고하려고……”
“……”
“말씀해 보시죠. 다 끝났으니까요. 그러니까 처벌될 리는 없다는 것이지요. 공소시효가 끝났으니까요. 2006년에 이미 끝났단 말이지요. 그런데 그 작은 상자에서 여러 장의 사진이 나왔어요.
조사해 보니까…… 그 연쇄살인 사건의 열번째 사건 현장과 일치했거든요. 이미 말했지만…… 공소시효도 끝났고…… 가령 살아있어도 사진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하지요. 그러니까…… 그냥…… 참고적으로…… 아시겠죠?”
“참 기가 막히지요! 전 짐작만 하고…… 그러나 틀림없……”
“짐작만……?”
“그 사람은 지독한 술꾼이었어요. 태안읍 뒷골목에 있는 술집에서 가끔 봤기 때문에…… 지금은, 잘 아시겠지만, 태안읍이 없어졌고 수원시 영통구로 편입되었어요. 그런데 주로 혼자서만 마셨…… 술친구가 없었…… 그래서 저와 가끔…… 처음에는 아주 우연히 합석하게 되었어요. 그때 군대 제대하고 나서 어정쩡하게 지내고 있었거든요.”
“지독한 술꾼이라…… 가끔 함께…… 그리고……?”
“본래 태안 사람이 아니었어요. 군산 쪽인가, 목포 쪽에서 올라왔지요. 뱃일이 지겨워서 그만 두었다고 했거든요. 확실한 건 아닙니다. 태안에서는 공사 현장에서…… 기술이 좋았습니다. 술에 취하면 가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요. 짐작하건대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을…… 사회에 불만이 많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 사람 이름이……?”
“말할 수 없어요. 어쩔…… 이해하…… 밝히면 안 될 것 같군요. 그 사람 명예도 있고…… 제가 현장을 본 것도 아니고…… 그러면 기억이 안 난다고 해두죠.”
“나중에라도 기억이 나면…… 그런데 그 사람을 왜? 찍은 거죠?”
“짐작이지만…… 틀림…… 사건이 매스컴을 탈 무렵이면 특히 술을 많이 마셨죠. 혼자서 소주 다섯 병 이상은 아무렇지 않게 마셨어요. 그냥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었지요.
그때마다 뭔가 중얼중얼거리고…… 아주 당당한 표정으로 으스대기도…… 얼굴을 보니까…… 몇 번 그러고 나니까 의심이 들더라고요.”
“이름은 모른다 하더라도…… 또는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생김새는 어땠어요? 살인마처럼 생겼겠죠?”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가 없는 일이죠. 그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지 않습니까. 아주 평범했어요. 등치가 작았고…… 전혀 잔인하게 보이지 않았죠. 다정한 이웃처럼……
그러나 굉장히 조심스러운 사람이었지요. 그랬으니까 경찰 수사본부에 수십 명이 있었지만 결국 못 잡았지 않습니까. 단서 하나 찾지 못하고……”
“살인의 동기는 뭐라고 보는가? 사회에 대한 증오……? 여자에 대한 증오……? 아니면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 마음의 상처 때문에……? 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악마의 유혹일 수도 있겠지? 그럴까요?”
“그의 술 마시는 버릇, 표정이나 행동, 연쇄살인의 과정을 살펴보면…… 여자이건 사회이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증오 때문이겠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몹시 가난했고 불우했을 겁니다. 엄청난 학대를 받고 자라면서 가슴 속에 말 못할 울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겠죠.”
“그랬단 말이지? 왜? 여자를 상대로……?”
“그 사람 왜소하고 비겁한 면이 있어요. 비굴하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남자는 상대할 수 없었을 거예요. 남자가 반항하면서 달려들면 자신이 당하니까요. 그래서 연약한 여자만 골라서…… 여자는 약하잖아요. 반항을 못 하는 겁니다.”
“혹시 말이야? 사냥을 하는 것처럼 인간 사냥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살인을 취미로 했다면…… 그건 최고급 취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사람 미천해서 그런 고급 취향이나 취미는 언감생심 있을 수 없어요. 그는 이중 인격도 다중 인격체도 아니에요. 감정적 흔들림이 없으니까 아주 단순하죠.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살인을 하는 순간은? 살인을 두 번이나 실행했으니까……”
“저는 경우가 달라요. 첫 번째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어요. 연쇄살인이 중단되니까 허전했거든요. 그래서 똑같이 해본 것뿐이에요. 그리고나서 환멸을 느낀 거예요. 두 번째는 완전히 우발적이었어요. 어린 것이 완강히 버티니까 촉발된 것입니다.”
“내 말은……? 살인을 실행하는 순간의 기분, 감정 같은 거 말이야. 혹시 왈칵 겁이 나는 거 아닐까?”
“순간적으로 분노가 폭발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사이코패스이거나 직업적인 킬러라면 모를까. 살인은 순간입니다.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면서 몰입하게 되고 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승리감과 함께 희열을 느끼는 거죠.
일말의 고통과 엄청난 쾌락의 묘한 혼합체라고 할 수 있겠죠.
심박동이 빨라지면서 감정의 흥분과 고조를 경험합니다. 연쇄살인범은 그 흥분을 도저히 잊을 수 없겠지요.
그 살인마는 살인이 주된 목적이고 성욕을 채우는 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혹시 사이코…… 그러니까 정신병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는 분노조절 장애 환자라고 할 수 있겠죠.”
“사람을 죽이는 일은 죽임을 당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닌가요? 살인자들을 조사해보면 가장 어려웠던 것이 피해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러면 정신적 외상을 입지 않을까요?”
“그도 인간인데 일말의 정신적 상처…… 하지만 그걸 극복하는 정신력이 있는 거죠. 분열적인 성격도 아니에요. 그건 자기 파괴 본능…… 다시 말하자면 죽음의 충동 때문인 거죠.”
“살인이라는 행동도 너무나 힘든 노동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실행하고 나면 몹시 피곤하겠지. 그러면 술 생각이 간절하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 자체에 대해서 만성적으로 피곤해 있었을 테니까……”
“바로 그겁니다. 정신적으로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확실하지도 않은데…… 만약 확실해도 제가 신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건 배신자들이나 하는 짓이죠. 그는 여자들을 살해하고 나서 자신의 나약함에서 벗어났겠지요.
그래서 술을 마시며 내면적으로 자신을 맘껏 과시했겠지요. 승리자처럼 얼굴이 환하게 빛났지요.”
“그러니까 연약한 여자를 잔인하게 사냥해서 삶의 에너지를 얻은 거네요. 그런데 여자에게 깊은 원한이 있거나 사이코패스적인 강박 관념이 있거나……”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배신자라고……?”
“배신자이지요. 제가 배신자가 될 수는 없었지요.
처음에는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지요. 나중에 보니까…… 그의 용기를 생각하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는 영웅이었어요. 영웅이었다고요.”
“그래서…… 영웅을 본받으려고…… 자신을 과시하려고?”
“저와 그 사람은 경우가 다르지요.”
“혹시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유명한 영화인데. 배우 송강호가 박두만 형사로 나온단 말이지.”
“소문은 들었지만…… 보지 않았지요……”
“그 영화의 블루레이가 있지. 아주 선명한 초고화질 버전이지. 그걸 보여드릴까?”
“아니요. 절대……”
“그 영화를 보면 연쇄 살인범은 비가 내리는 저녁에, 라디오에서 어떤 음악이 흘러나올 때,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대상으로 범행을 했단 말이지. 그리고 휘파람을 불었고…… 정말 그랬을까?”
“영화이니까 그렇게 만들었겠지요. 그 사람이 음악에 조예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왜……?”
“그거야 당연히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럼…… 그 사람…… 지금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죽었을까? 살았을까? 그동안 소식이 끊어진 게…… 혹시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하지 않았을까?”
“형사님도…… 어림없는 소리…… 순진하시기는…… 그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죠. 그리고 살아있다면 절대로 범행을 멈추지 않았을 거예요. 살인 본능이 그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죠. 아마 연쇄살인범으로 계속 기록을 세웠겠지요.”
“그러면?”
“예…… 그는 죽었어요. 틀림없다니까요. 아마 위암으로 죽었을 겁니다. 그렇게 매일 독한 술을 마셔댔으니 위가 안 뚫리는 게 이상하죠. 술에는 장사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야겠죠. 그러면 1991년 10번째 그 연쇄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으로 돌아가 보죠.”
“제가 무슨 애착 때문인지 그 작은 상자를 버리지 못하는 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상자였어요. 신성불가침한…… 끝까지 간직하고 있어야 했지요.
제가 몹시 불안할 때마다 그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생각해야 했으니까요. 가끔 열어서 냄새를 맡고…… 그럼 큰 위안이 되었지요. 나의 자신감이 의지할 수 있는……”
“그랬군요. 거기에서 많은 것이 나왔지요. 그런데 메모에 적힌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그게…… 그냥 그 당시의 일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기억장치이지요. 지금 제가 궁금한 것은? DNA 말입니다? 그렇게 정확한가요? 빼도 박도 못하게. 믿어도 되는 건가요?”
“그렇지. 정말 빼도…… 내가 뭘 알겠어. 잘난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래서 신세리 사건은 다 밝혀진 거야.
그런데 1991년 사건은 아쉽게도 끝나버렸어요.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다는 말이지요. 태완이 법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고 그러드라구요.”
“그 빌어먹을 법이 왜 생겨가지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다 끝난 일을 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날이 지나가기만 눈 빠지게 기다렸는데요. 지나간 일은…… 누구든지 잊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이 우습게 돌아가요. 이 세상이 모순 투성이처럼 보이죠?
누구는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어서 빨리 끝나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고…… 태완이법은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결실을 맺어 그 공소시효를 없애버렸으니…….”
“정말…… 저는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1991년 사건은 어쨌거나 끝났으니까…… 속 시원히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참고적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홉 번째 사건이 끝나고 나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 년이 넘게 지나갔지요. 그때 저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인의 주기가 완전히 어긋났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다시는 그 술집에도…… 공사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일 년 전쯤 마지막 보았을 때 얼굴이 말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한창 젊었을 때니까……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성적 환상이라고 할까…… 상상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가 한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습니다.
용기를 얻었지요. 그렇지만 여자를 죽여야 할지는 확실하지 않았어요.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하여간에 그가 좋은 아이디어를 암암리에 제공한 거예요.
그때쯤에는 화성에서 흉흉한 소문이 날 대로 나서 그의 범행 수법이 속속들이 다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그 무렵 화성에서는 여자들이 빨간색 옷을 입지 않았고 비 오는 날에는 집 밖으로 절대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추가적으로…… 다시 말하면 한 번 해보니까 살인이라는 게 별 것 아니었겠지. 더욱이 여자를 상대로 하니까…… 목을 서서히 부드럽게 조를 때 쾌감을 느끼지 않았나? 달콤한 살인의 추억 같은 게 남아있을 거 아닌가?”
“그렇게 유도 심문하는 게 아니죠. 이제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밖에 없네요. 제가 옷을 벗길 때 여자가 웃었습니다. 그리고 팔과 다리로 나를 꽉 안았던 거예요. 글쎄요. 그게 저의 환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끝나고 나서야…… 사실 어떻게 끝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무안했던 것 같아요.
그 웃음이 새삼스럽게 생각나자 몹시 불쾌했어요. 우스꽝스럽기도 했고요. 여자가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사정사정 하거나 아니면 맹렬히 할퀴며 반항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예상이 완전 빗나갔지요. 항문 주위에 약간의 남은 똥찌꺼기들이 붙어 있었고 몸에서 냄새가 났습니다.
그때 저는 울컥했습니다. 역겹더라고요. 악몽이었지요. 목을 누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여자의 목을 졸랐거든요.
그런데 여자가 가끔 꿈에 나타나서 거대한 능구렁이로 변하여 절 칭칭 감아서 목을 조였지요. 그러면 저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극도로 불안했고 공황 상태에…… 그때부터 전 여성혐오증에 시달렸어요. 여자란 뱀처럼 싫었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짧은 가을날이 저물었다. 곧 어둠이 찾아왔다. 쓸쓸한 들판은 모든 것들이 형태를 잃어갔다. 시간은 정지하였다. 침묵의 시간. 멀리 일직선으로 검게 뻗어있는 배수로만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떠나지 않고 몇 시간째 그날 처음 본 여자의 시체 곁을 서성거리고 있다. 그녀는 몹시 낯설었다. 이미 사진은 여러 장을 찍었다. 무슨 용도로 찍은 것인지는 스스로 잘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녀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심장이 멈추긴 멈춘 것인가. 움직임이 없었고 손은 차가웠다. 팽팽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은밀한 욕망을 성취하였다는 기쁨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손쉽게 끝났고 허망했다. 내가 힘껏 목을 조를 때 여자는 무아지경 속에서 고통 없이 스르르 죽은 게 아닐까.
한바탕 거센 바람이 들판을 지나갔고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폐허처럼 보이는 텅 빈 들판 위로 새들이 조롱하는 듯한 또는 재잘거리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멀리 날아갔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유형석 경감은 보고서를 올렸다.
김중오는 페티시즘, 다시 말하면 물품음란증 증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품음란증이란 개인의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무생물체에 성욕을 느끼는 성도착증을 말합니다. 여성의 신체를 상징하거나 여성의 몸에 닿는 물건이 많은데 스타킹, 팬츠, 브라자, 치마 등 속옷 절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중오는 1991년 사건 이후 극도의 여성혐오증에 빠졌고 어느 시기에 페티시즘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자의 팬티, 특히 빨간 색 옷을 보면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흥분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는 수십 번 이상 여자 옷, 그 중에서도 빨랫줄에 걸려 나풀거리는 여성 팬티를 주로 훔쳤습니다. 그러나 처음 여러 번은 기소유예나 벌금 등 가벼운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자 더욱 대담해져서 상습적인 주거침입과 절도범이 되어 실형도 선고 받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인 강제 추행의 경우에도 실제는 여자의 팬티를 벗기려고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색마다 심리적 효과가 다르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가령 핑크색은 불안감을 해소하며 안정감을 주고 노란색은 행복과 건강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빨간색은 공격적이고 난폭한 느낌이 드는 색입니다. 색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남녀 간에 상대의 호감을 얻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빨강은 눈에 확 띄는 색입니다. 여자들이 왜 빨간 립스틱을 바르겠습니까. 고대 이집트나 로마시대부터 붉은색 입술을 선호했기 때문에 적색 안료인 연단을 사용해서 입술을 붉게 칠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청동거울에 비춰봤고 교태에 가까운 느긋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이성의 시선을 끄는 힘이 있어 빨간색 옷을 입는 것은 ‘나를 바라봐 주세요. 그리고 주목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고자 할 때 빨간색 속옷을 고르는 이유는 무의식 중 자신이 매력적으로 돋보이는 것이 빨간색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남성은 빨간색 옷을 입은 여성에게 강력하게 끌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성폭행 살인 등 성적 살인자의 40%가 물품음란증이나 관음증에서 시작된 주거침입 절도 전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선 속옷 절도범을 치료가 필요한 대상으로 보고 연구하는 데 비해 국내에선 단순한 도벽으로 치부하고 있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중오의 경우 범행 초기에 적절한 정신과적 치료가 있어야 했는데 이를 간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신공숙이 윤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
“검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 덕분에 가석방이 되었지요. 자유를 마시니까 살 것 같네요.”
“축하합니다. 자유를 만끽하시기를……”
“글쎄요, 덕분이 아닐까요?”
“알아보니까 가석방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더라고요. 다시 말씀드리면 제 덕분이 아닌 것이죠.”
“그럴까요……?”
“김중오는 안 됐지요. 1991년 사건은 공소시효가 완료되었지만 신세리 사건은 아직 안 끝났지요. 태완이법 때문이죠.
하여간에 편지 보내주시고 여러 가지 참고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가지 꼭 말씀드릴 게 있지요. 전 이제 호모가 아닙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그렇습니다. 지독히 외로웠어요. 안에는 인간들이라는 게 전부 남자들뿐이지요. 그러니까 인간을 사랑하려면 결국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까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벌써, 좋은 여자가 생긴 건가요?”
“아니죠. 천천히……”
“이제 질투할 필요가 없겠네요. 운명이 뒤바뀌었어요. 그는 구속돼서 담벼락 안에서 오래 살아야겠죠. 하지만 신공숙씨는 석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으니까…….”
“전…… 잊어버려야 할…… 잊을 것은 잊어야 하지요. 그가 석방되기 바로 전날 밤 우린 밤새 잠들지 못하고 이별을 못내 아쉬워했지요. 그리고 마지막 격렬한 섹스를 했어요. 우린 서로 너무 흥분했었지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다시 만날 필요가 있겠어요?”
“그렇군요.”
“다시는 안 들어갈 거예요.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목공일을 열심히 배웠거든요. 그쪽 일을 할 겁니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죠. 나이 40이 넘어서 말입니다.”
“어쨌거나 축하합니다. 하루 빨리 좋은 여자 만나세요.”
“감사…… 감사……”

윤병철 검사는 2015년 9월 11일 신세리 살인사건의 용의자 김중오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청구했다고 발표했다.
작성일:2023-12-09 12:38:16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