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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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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중편소설> 악마의 손길 (下)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3-11-11 13:23:55
조회수
43
늙고 꾀죄죄한 변호사는 담배 진으로 누렇게 변한 이빨을 드러내며 애매하게 웃었다.
“법적 관점에서 검토해 보겠네. 생각 나름이지만 별것이 아닌 것은 확실해. 도박이 합법적인 나라도 많지. 그것도 선진국에서 말이야. 외국환거래법 위반도 그렇지 뭐, 벌금으로 끝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도박 빚은 법률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거야.
그런데 승부조작이 문제야. 물론 실패로 끝나긴 했지. 피고인은 협박과 공갈 때문에…… 오히려 피해자로 둔갑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공모 부분을 빼는 게 너무 늦었다는 거지.”
“그걸 빼는 게 변호사님의 역할 아닌가요?”
변호사가 신경질을 냈다. 무뚝뚝하고 약간 빈정거리는 듯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 변론에 큰 기대를 하지 말게. 국선이 뭘 어떻게 하겠나?
‘그저 죽을 죄를 지었으니 잘 살펴봐 주십시오’, 라고 말할 걸세.”
“제가 뭘…… 죽을 죄를 지었다구요?”
“그러면? 검찰에서 다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브로커인지 뭔지가 자세하게 진술도 했더구먼.”
“여자 검사가 친절했지요. 그냥 경찰보다는 믿음이 갔어요. 꼬박 3일간 조사를 받았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습니다만…… 좌우간 다 이야기했지요.”
그녀는 마른 체구에 단순하면서도 촌티나는 우중충한 검은색인지 또는 회색 옷을 입고 검정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조사가 끝날 무렵 우울하게 말했다. “나로선 어쩔 수 없다고요…… 재판이나 잘 받으세요.”
“여자 검사가 예뻤던가…… 검찰이 미인계도 쓰는 모양이지. 그 검사가 범죄사실에 대해 세심하게 조서를 잘 꾸미긴 했더구먼. 그런데 여자 검사가 야구에 대해서 뭘 알고 있긴 했어? 그 부분이 좀 미심쩍었거든. 야구 용어도 부정확하게 사용하고 말이지……”
변호사는 수사기록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면서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진 관련 부분을 손으로 짚었다. 야구선수는 그 동작 하나하나를 눈으로 쫓으며 거기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적혀있는지 새삼스럽게 궁금했다. 문장은 끊기고 이어졌지만 투명했고 단단했다. 자신이 진술한 그대로라고 하지만……
그때 (그녀가 말할 때마다 볼우물이 들어갔고, 꿈속에서 두 사람의 팔다리가 한없이 부드럽게 뒤얽혔던) 그 예쁜 여자는 아주 날렵한 솜씨로 유영하듯 능숙하게 글자판을 두들겼다.
“…… 아니요.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지요.”
“그렇다면…… 자넨 승부조작 부분에서 볼 배합하는 것처럼 지그재그로 진술할 수도 있었는데…… 다시 말하면, 야구의 기술적인 부분이니까 실제 조작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단 말이지.
미수범도 원칙적으로 처벌되긴 하지만 정상 참작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있었는데…… 그만 실토하고 말았구만. 너무나도…… 진실인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게…… 상세하게 진술했단 말일세.”
“……”
“거짓말을 해 본적이 있었던가? 가끔 거짓말하면 기분이 후련해지거든.”
“글쎄요. 오직 야구만 했으니…… 사회생활을 많이 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거짓말을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겠군. 밑바닥 생활을 하려면 거짓말도 가끔 해야 될 거야.”
“그렇지만……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저 자신을 죽인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었다구요. 승부조작도 모두 실패로 끝났어요. 승패와 관계가 없었단 말입니다. 제가 죽어야 할 만큼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하나요?”
“그 애송이 판사는…… 내가 보기에는 틀림없이 애송이지. 제 잘난 맛에…… 천방지축 철없이 까분다네.”
“판사들한테 심한 알레르기가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다네. 그렇고말고. 자네는 인간이 재판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인간을 심판하는 일이란 말이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건 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야. 그런데 나는 무신론자이거나 회의주의자라네.
그래서 말인데…… 인간이 재판을 한다면 판관은 인성이 올바르고 겸손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고. 이건 내 관점에 불과하지만…… 판사는 법률 지식이 정확하고 법철학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있어야만 하지. 그리고 인간과 사회, 사회적 실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찰력이 있어야 하지. 인간을 깊이 알아야 한단 말일세.
걔들 말이야 고시 합격했다고 거들먹거리기만하고 법률 실력도 그렇고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아. 골프 치는데 정신이 팔려가지고. 그저 관습적으로 기계적으로 재판을 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특권으로 오해해서 과도하게 행사하니까 마침내 오만한 권력자가 되었지.
변호사는 비굴하게 굽신거리고…… 그러면 걔들은 법대에서 더욱 거들먹거리고…… 그러니 나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나?”
야구선수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몹시 당황했고 낙심한 표정으로 변호사를 쳐다보았다.
“제가 아주 많이 탄원서를 써서 제출했어요. ‘많이 반성했으니 용서해주십시오.’라고 썼습니다. 감방 안에서 그걸 많이 쓰면 쓸수록 좋다고 했습니다. 마음 약한 판사를 속일 수 있다는 거죠.”
“과연…… 그럴까?”
“나갈 수가 없단 말인가요?”
“글쎄…… 지금 단계에서는 장담할 수 없다네.”
“저는 어떻게 될까요? 제가 앞으로…… 할 일이 많거든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나? 너무 일찍 인생의 험한 꼴을 맛본 거겠지. 인생에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한다네.”
“아무리 국선이라고 하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곧 재판이 시작되니까…… 변론을 하는데 필요해서……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지. 피고인의 죄목은 상습도박죄,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있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승부조작이야. 그건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이고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는데…… 도덕적으로도 비난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하겠어. 약물 복용은 참작할만 하다니까. 슬럼프를 벗어나려고 그렇게 했으니까 말이야.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이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하지만 상습 도박은 그냥 오락 거리로 한 게 아니고 돈에 눈이 어두워서……? 판돈이 너무 컸단 말이야. 부인할 텐가? 또는 내 돈 걸고 도박하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 수도 있겠네. 아니면 나야말로 막대한 돈을 탕진한 피해자라고 항변할 수도 있고…….”
“할 말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일 문제는 승부조작이야. 뭐라고 변명할 텐가? 걔들 폭행 협박 때문이었다고? 아니면 일거에 한 목 잡아서 도박 빚을 갚고 거액의 목돈을 손에 쥐려고? 어느 쪽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왜? 모르겠다는 거야? 피고인은 서른이 넘은…… 세상을 살 만큼은 살았는데. 자기 자신까지 속이다니……. 왜? 무엇 때문에 밑바닥까지 추락했을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말이지.
네 놈은 나쁜 인간이야.”
“……”
“나한테 무슨 불만이 있으면 솔직히 말해봐. 나는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으니까.”
그의 두 눈에서 또다시 굵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줄줄 흘려내렸다. 복바쳐 오르는 슬픔이 가슴 속으로 내려 앉았다. 그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잠깐 동안 짙은 암흑 같은 침묵이 흘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내가 피고인을 용서해줄 권리가 없다네.”
“그러지…… 마십시오.”
“목엣가시가 있는 거 같은데…… 뱉어내라고.”
“이런 혼란 속에서 저의 마지막 정신적 지주였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에겐…… 지금 아무도 없어요. 절 버리지 마세요.”
“그래서……?”
“저는 하루빨리 나가야 해요. 집행유예가 필요합니다.”
“……”
그들은 더 이상 별로 말을 나누지 않았다. 딱히 더 해야 할 만한 말이 없었던 것이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변호사는 쇠창살이 박힌 창밖으로 골짜기 건너 아주 멀리 있는 산을 문득 바라보았다. 변호사가 일어섰다. 그가 연약한 눈빛으로 야구선수의 슬픈 눈을 내려다보았다.
변호사가 악수를 하기 위해서 연약한 손을 내밀었다. 말라비틀어진 손가락의 뼈마디가 딱딱했지만 약간 끈적거렸고 따뜻했다.
야구선수의 목에서 맥박이 뛰었다. 거구의 야구선수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허리를 굽혀 손을 잡았다.
“오늘이 마지막일세. 물론 법정에서 잠깐 함께 있겠지. 우리가 무슨 인연이 있다고…… 다시 만날 기회는 없을 걸세.
내가 특별히 해줄 말은 없다네. 힐링이니 그따위 말들은 믿지를 말게. 그저…… 스스로 자신을 지키게.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겠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

* * *

경찰에 긴급 체포된 그 투수는 결국 승부조작을 시도했다고 자백했다. 그가 자백한 경기는 지난해 여름에 홈에서 수요일 야간 경기로 벌어진 시합이었다.
그때 브로커가 그에게 주문한 내용은 첫 이닝 첫 타자를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키는 것이었다. 그것도 몸쪽으로 속구를 던져서 허벅지나 정강이를 맞추라는 것이었다.
타자들은 언제든지 빠른 공이 자신의 몸 쪽으로 날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타석에 서게 된다. 그러니까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는 자신의 머리로 언제든 날아올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투수의 제구력은 늘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수는 실제 타자를 이기기 위해 몸쪽 승부를 한다. 그리고 가끔 투수는 위협구는 물론이고 악의적으로 몸에 맞히기 위해서 공을 던지기도 한다.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몸에 맞는 공의 고통이란 게 어떤 건가요?”
“안 맞아 봤으면 말을 마세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아프다는 것이다. 그 고통은 직접 당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살집과 근육이 두툼한 엉덩이나 허벅지는 그나마 괜찮다. 그건 뼈를 깨부수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성문용은 1년 만에 복귀해서 그해 여름쯤에는 성공적으로 재기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3승째를 챙겼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경기를 앞두고 머리가 복잡하게 엉크러졌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 시합은 그가 징계에 풀리고 나서 여섯 번째로 선발 등판한, 그리고 마지막 선발 경기였다. 그 경기에서 죽을 쑨 후 좀처럼 선발 기회는 오지 않았고 결국 중간 계투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1회 선두 타자의 목표 지점을 향해 포수의 사인을 무시하고 인정사정없이 강속구를 던졌다. 그러나 타자는 엄청난 반사신경에 의해 엉겁결에 피해버렸다. 그리고 투수가 다시 정신 차릴 틈도 주지 않고 두번째 볼은 타자가 건드렸다가 볼이 붕 뜨면서 하늘로 치솟더니 내야 플라이로 아웃되었다. 그는 2번 타자에게 안쪽 낮은 볼 2개를 던진 다음 스트라이크 1개를 던졌고, 볼카운트 2-1에서 바깥쪽 높은 볼, 몸 쪽 낮은 쪽으로 계속 공을 던져 볼넷을 허용했다.
그는 볼넷 이후 내야 수비 실책으로 다음 타자를 내보내 자초한 1사 1,2루에서 4번 타자에게 2루타를 얻어맞고 먼저 2점을 내줬다. 볼넷이 빌미가 되었다. 그는 7회에서 첫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고 내려갔는데 성문용의 기록은 6와 3분의 1이닝 5피안타 5볼넷 4실점이었다. 하지만 팀타선이 나중에 6점을 뽑아내며 6대 5로 역전승했다.
그는 그 경기 이후에도 브로커의 지시를 받고 다시 승부조작을 시도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그 이닝에서 볼 컨트롤이 안 되는 척하면서 두 번씩이나 볼 넷을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경기 기록상 성문용이 그 이닝에서 허용한 볼넷은 없었다. 첫 타자가 초구를 건드려 내야 땅볼 아웃됐고, 다음 타자들도 풀카운트 대결 끝에 높은 공을 쳐내서 외야 플라이로 아웃됐기 때문이다.
야구 경기는 확률 게임이기 때문에 우연이 너무 많이 지배하는 오묘하면서 정교한 스포츠여서 승부조작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래서 야구 경기의 핵심인 주전급 투수를 포섭해야 한다. 거기다 투수와 타자가 치밀하게 합작을 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옛날부터 ‘야구는 경기 특성상 승부조작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속설까지 내려오고 있지만 말이다.
그는 이제부터 더욱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쫓기기 시작했다. 게임 중간에 나와서 홀드를 기록해야 하는데 성적은 뒤죽박죽이 되어 감독의 신뢰를 다시 잃어버렸고 덩달아 브로커의 신뢰도 상실했다.
그가 경찰에서 진술했다.
“제가 승부조작을 한 사실은 인정합니다. 엄청난 도박 빚 때문에 그들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 승부조작에 실패한 뒤부터 브로커들의 협박과 공갈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시키는대로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닦달했습니다.
저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봤다고 하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죽도록 때렸습니다. 온몸에 피멍이 들고 피를 토했습니다.
‘무릎 꿇어! 이 개새끼야!!’
‘제가 잘못했습니다.’
‘잘못을 알고 있긴 하구만. 너 하나 죽이는 건 파리 죽이는 것보다 더 쉬워. 감쪽같이 해치워버릴 거야. 방법이 있다니까.
좋게 말할 때 들으란 말이야.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어.’
‘살려주세요.’
‘얘들아…… 이 자식 죽여버리라고.’
저는 무서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자살할까도 생각했습니다.”
두목인 조폭은 구단에도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구단 소속 어떤 선수가 승부조작과 연루됐는데 내가 그 때문에 돈을 잃었다. 다른 구단은 이럴 경우 돈을 메꿔줬다며 돈을 요구했다. 브로커들은 약점을 쥐고 구단 소속 선수의 승부조작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구실로 거액의 돈을 요구한 것이다.
그동안 야구계에선 구단들이 소속 선수의 승부조작 사실을 자체 조사를 통해 알았으면서도 구단 이미지 등 악영향을 고려해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증거가 너무 명백했기 때문에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형사 법정
성문용은 상습 도박과 외국환거래법 위반,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법정에 팽팽한 긴장감은 없었다.
그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변호사는 최후 변론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굽신거리면서 입안에서 우물거렸다.
“피고인은 흔히 말하는 대로 초범이고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글쎄 말입니다. 그리고 공갈 협박을 받은 가련한 피해자라는 점을 고려해 주십시오. 동기와 그 과정을 면밀히 살펴봐 주십시오.
국가는 거대한 괴수이지요. 그 괴수는 언제나 비단뱀처럼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습니다. 이 가련한 희생자를 통째로 삼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국가가 이 불쌍한 청년을 처벌해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처벌만이 가능할까요? 처벌이라는 것은 그 안에 악이 들어있습니다. 이 말은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오래전에 영국 법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다른 피해자는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세의 율법에는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법 논리 또는 법 감정은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소멸되지 않은 채로 살아있지요.
그러나 이 사건엔 피고인 이외에 다른 피해자는 없습니다. 피고인은 이미 충분히 처벌받았습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그 실수가 빌미가 되어 삶의 전부이고 일생의 꿈인 야구와 영원히 결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충분히 준비했고 성공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제가 이 젊은 사람을 변호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듭니다.”
애송이 판사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무테 안경 속에서 나른하게 눈알을 굴리면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피고인을 내려다본다. 서로 시선이 엇갈린다.
3주 후 선고가 있었다.
판사는 엄하게 훈계하듯이 말했다.
“유명한 야구선수는 공인이나 다름없고 커가는 어린이들의 우상인데,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금지된 약물을 하고 해외 원정도박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승부조작까지 하였는데, 어떻게 피고인이 공갈 협박을 받은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요?
다시 말하면 처벌 받을 일을 했으면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지요. 그래야만 합니다. 그게 판사의 거룩한 임무입니다. 진정으로 뉘우치는 기색도 없으니 엄벌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판사는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내심 기대했던 집행유예 선고는 없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항소하고 말고는 피고인의 자유라고, 자신이 관여할 바는 아니라고, 만약 항소를 하게 된다면 깜빡하지 말고 1주간의 기간을 잘 지키라고, 메마르게 말했다.
그는 이미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고 소속팀 구단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잔여 계약을 해지했다.
작성일:2023-11-11 13:23:55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