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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에세이> 작가의 말(14) - 장편소설 「인간의 초상」의……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2-06-21 15:35:51
조회수
379
작가의 말(14) - 장편소설 「인간의 초상」의……

우리가 1969년 2월 부산항 제3부두에서 미 해군 수송선에 승선하여 동중국 해와 남중국 해를 지나는 일주일 간 긴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은 베트남 남쪽의 나트랑 (나짱)항이었다. 거기서 바로 거대한 미군 보급창 기지가 있는 캄란 베이 입구 수진 마을 근처 백마부대 30연대 본부로 군용 트럭을 타고 이동했다. 나는 20개월 복무를 마치고 1970년 10월 캄란 베이 부두에서 미 해군 수송선을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서 귀국했다.
내가 마지못해 베트남을 다시 찾은 것은 2010년 이후의 일이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에서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가 베트남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의 현지 공장이 진출해 있어 그 곳 젊은이들의 선망의 직장이 되고 있다. 베트남 대학들의 한국학과 학생들은 한국으로 여행이나 유학이 꿈이다. 많은 베트남 처녀들이 한국 농촌으로 시집을 온다.
우리나라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것은 (6.25 전쟁이 끝난지 불과 11년만인) 1964년 9월이었고 마지막 철수한 것은 1973년 3월이었다. 그리고 외교관계가 정식 수립 된 것은 1992년이었다. 미국은 1994년 2월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1995년 7월 양국 관계의 정상화가 실현되었다.
불과 20여년만에 국교가 정상화되고 평화스러운 관계가 수립되었는데 격세지감을 느껴야할까? 감개무량하다고 해야할까?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전쟁을 수행했단 말인가? 무슨 전쟁의 의미가 있었단 말인가? (전쟁 기간 동안 베트남에서는 1,5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소한 각 가정마다 1명씩은 전사 아니면 부상당한 사람이 있었다.)
호치민 (본명은 구엔 타트 탄)은 그 당시 구부정한 등, 가냘픈 몸매, 듬성듬성한 턱수염, 짚으로 만든 샌들, 고무줄을 넣은 헐렁한 검은 바지 차림의 노인이었다. 60년 이상을 베트남 독립에 몸바쳤던 ‘호 아저씨’는 1969년 9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팔십 평생을 홀홀 단신으로 살다가 그렇게 죽은 것이다.
1973년 1월 미국은 베트남을 떠나기 위해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티우 대통령은 금괴 2톤을 가지고 몰래 조국을 떠났다. 4월 30일은 사이공 마지막 날이었다.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는 여전히 사이공이라고 불렀지만 지도에서는 그 지명이 사라지고 ‘호치민 시’가 되었다. 베트남이 통일된 지 2년 후인 1977년 9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유엔에 가입했다.

우리는 “왜 여기서 싸워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우리들에게 정부의 공식적인 전쟁 명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국가가 명령했기 때문에 와서 싸울 뿐이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라는 정부의 선전은 그저 애매모호한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우리들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보충병에 불과했다.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개성을 지닌 인물이건 간에 군복을 입는 순간 똑같은 전쟁 부품으로 취급되었다.
열대의 폭우, 맹렬한 더위, 위협적인 정글, 전투를 위한 끝 모를 행군. 화약 냄새, 땀 냄새, 오줌 냄새, 피 냄새, 시체 썩는 냄새.
전쟁터에 던져진 우리들은 자주 자신이 개성과 존엄을 가진 인간임을 망각했다.

기억과 망각은 서로 반대이면서 상호적이어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기억은 항상 망각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망각되었다고 영원히 잊혀진 것이 아니며 반대로 기억 속에 있다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잊은 것을 어떻게 기억한다는 것이며 기억하는 것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다는 것인가.

전쟁소설은 기억과 상상의 혼합물이다. 기억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회고록이나 수기일 뿐이다.
나는 인간의 성숙에 관한 성장소설이나 교육소설, 사회비평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냉전시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 대결에서 서로 이념적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벌이는 말의 잔치가 주제가 될 수 없다.
참혹한 전투 경험, 전쟁의 허무, 전쟁이 가져오는 인간의 비극, 전쟁에서 귀환 후 겪는 트라우마, 인간의 발가벗겨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도 아니다.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일어서서 일상을 회복하여 안정을 찾고 삶의 균형을 달성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 (나는) 일상생활의 범속성을 그리워했다. 권태와 지루함을 원했다. (나는) 즐거운 순간, 행복한 나날을 꿈꿨다.
인생역정의 특정한 시기마다 내가 (서술자 혹은 화자) 누구인지를 결정해주는 정체성의 의미에 대한 탐구.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의 기억과 망각에 관한 이야기.

모든 전쟁의 공통점은 인간이다.
전쟁은 젊은이들을 희생시키기를 좋아한다. 전쟁은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평화는 지루한 소설을 만들어낸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전쟁이 즐거운 것이다.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노인들이지만 싸우고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또한 전쟁에 뒤따르는 고통과 슬픔과 승리도 젊은이들의 몫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난, 사랑, 전쟁을 알기 전에는 인생의 맛을 전부 맛보지는 못한 것이다.
작성일:2022-06-21 15:35:51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