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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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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에세이> 작가의 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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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6-05-26 15:25:31
조회수
1070
작가의 말 (3)


1. 「연쇄살인범」
IQ 150의 여성혐오증 남자에 관한 이야기.
(한국 현대음악의 선구자인 작곡가 강석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작곡은 발명이기도 하고 창작이기도 한데 작곡가의 자질로서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머리가 나쁘면 작곡을 못한다. 제자들 지능지수는 150 내외이다. 그런 우수한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자극이다.’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연쇄살인범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는 중증의 조현병 환자였을까? 각종 심리분석 검사와 정신감정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모든 의식과 감정, 이성의 원천인 무의식이라는 우주같은 심연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2. 「김명성 의원」
늙어서 노망이 들면 (그냥,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면) 어떤 작가는 자기가 쓴 문장은 물론이고 책 제목까지, 어떤 화가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못 알아볼지 모른다. (천경자 화백이 살아 생전에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면서 화가가 자신이 그린 자식같은 그림을 어떻게 몰라볼 수 있겠느냐고 항변했을 때, 위작이 아니라 진품이라고 빡빡 우겼던 자들은 화가가 나이가 들더니 노망이 들어서 자기 자식도 몰라본다고 비아냥 댔다.) 늙은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한 거대한 건물 앞을 지나가면서 ‘누군지 모르지만 쓸데없이 크게 지었구만’ 라고 중얼거리며 그저 무심히 바라볼 수도 있다.
그리고 작곡가는 자신이 만든 선율을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자신이 작곡한 현악 사중주를 녹음하러 간 라벨은 음향 조정실에 앉아서 몇 가지 수정을 제시하고 제안을 했다. 모든 악장을 녹음한 후, 마지막으로 라벨은 프로듀서를 돌아보았다. ‘정말 좋았어요. 작곡가 이름 좀 알려주세요.’)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일반인들과 전문가들에게 ‘가장 위대한 20세기 작품’이 뭐냐고 물었는데, 1등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었고, 2등이 라벨의 ‘볼레로’였다. 그런데 ‘봄의 제전’은 어려워서 잘 공연되지 않는다고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나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아이들과 짐승들이다’라고 하였다.) 그에 반해 라벨은 쉽기 때문에 많이 연주된다고 한다.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또는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벌써부터 ‘메멘토 모리’를 외칠 단계도 아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사람들은 죽음의 단계에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마지막으로 수용의 절차를 거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일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부정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절대로, 적어도 명시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부터라도 수용할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하리라. 그리고 그 먼저 어떤 형태이든 인지장애가 찾아오기 전에 정리할 것은 깨끗이 정리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고스란히 잊혀지리라. 누가 날 기억할 것인가. 그들도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말이다.
나는 우리의 인생이 온통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데 죽음이 이 모든 것에서 우리를 건져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플로베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운명을 감당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인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만약 신을 믿는다면 죽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한 때 철저한 무신론자였든가, 진지한 불가지론자였다.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천국과 지옥, 내세와 구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지극히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다시 20대 초반 ‘인간의 초상’에 나왔던 월남의 야전병원에 누워있을 때를 상기한다. 그러나 지금은 유신론자가 되었다. 그것도 그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 게 아니라 ‘나는 무신론자인가’에서 말했던 것처럼 생명에 대한 외경심 때문에 범신론자가 된 것이다.

3. 「자백과 고문」― 자백에 관한 짧은 고찰
형사소송에서 증거의 왕이라고 불리는 자백에 대해 우리 함께 고찰해 보면 어떨까? 군사독재정권 시절 수사기관이 공공연히 자행했던 폭력, 물고문과 전기고문, 성고문 등 각종 추악한 고문은 한결같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백과 관련하여 여기에 인용한 것은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허위 자백과 오판」(리처드 A. 레오 지음/조용한 옮김)에서 발췌해서 재인용한 것이다. 무슨 해설이 필요하겠는가. 화사첨족 畫蛇添足
극단적인 결백주의자를 제외하면 수사기관의 신문을 받지 않고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백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왜 어떤 피의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자백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자백하지 않는가? 왜 어떤 사람은 허위 자백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진실한 자백을 하는가? 사전에 법률이 규정한 피의자의 권리인 묵비권과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했는데도 말이다.
수사관들은 자신이 때로는 허위 자백을 받아 낸 다음에조차 결백한 사람은 자백하지 않는다고 자주 말한다.
“결백한 사람은 미치지 않는 한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을 결코 자백하지 않는다.”(미국 메릴랜드 주 수사관 로저 톰슨의 말)
“만일 누군가가 당신의 딸을 죽였다고 자백하라면서 감옥에 일주일 동안 집어넣는다면 당신은 자백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한 달 동안 감옥에 가둔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은 일을 자백하지 않을 것입니다.”(인디애나 주 검사 마이클 코센티노의 말)
“이성과 상식에 따르면 결백한 사람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백하지 않는다.” (샌타 바버라의 검사 크리스티 스탠리의 말)
그렇지만 이들은 인간의 불가해한 심리구조와 범죄수사의 현실을 모르는, 또는 애써 외면한 사람들이거나 자기 기만에 능한 자, 위선자일지 모르겠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의 긴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렇다.

자백만큼 뿌리 깊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증거는 없다. ……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자백에 너무 큰 비중을 부여하기 때문에, 자백이 증거로 제출되면 재판은 더 해볼 것도 없게 되어 버리고, 실질적인 의미에서 진짜 재판은 자백을 얻어 낼 때 이루어진다. ― 미국 연방대법관 윌리엄 브레넌

상습범에 대해서는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다. 자백을 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강도와 살인을 계속 저질렀을 인간들을 주먹과 곤봉과 호스로 자백하게 만들었다. 상습범은 오직 하나의 언어만 알아들을 뿐이며 다른 방법을 쓰는 수사관을 비웃는다. 이건 결국 전쟁임을 기억하라! 나는 내 방식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확신한다.
― 코르넬리우스 윌렘스

…… 자신을 통제하며 끝까지 머리로 싸우려면 주먹으로 싸우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싸워야 할 때 머리로 싸우는 것이 몸으로 싸우는 것보다 힘든 법이다. 고문에 의지하는 것은 피해자가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고문으로 “무너뜨리면”, 그는 당신을 증오할 것이다. 지성으로 무너뜨리면, 그는 언제나 당신을 경외할 것이다.
― W.R. 키드

불법 구금을 통해 경찰은 신문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다. 또한 불법 구금은 수감자를 길들여 더 쉽게 자백하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불법 구금은 의문의 여지없이 강압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수감자들은 자백할 때까지 구금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 Wickersham Commission Report 1931, 154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단순한 의심만 가지고 사람을 체포해서 며칠 동안 가혹한 신문을 하고 폭력을 가하면, 성인이든 어린아이든 결국에는 고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복하고 자백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하고 또 야만적인 관행이다. 그런 피의자의 유죄 또는 무죄는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경찰의 첫 번째 추측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는데, 만일 경찰이 실수를 저지르면, 그런 관행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 전게서, 137

나는 원래 거짓말탐지기 (다원기록계)가 전문적인 경찰 과학에서 합법적인 부분이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갈보다 나을 게 없다.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거짓말탐지기는 과거에 물리적 폭력이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백을 짜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가 그것을 개발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 유감스러울 때가 있다.
― Lykken 1998, 28-29

수사관이 말했다.
“당신은 묵비권이 있습니다. 당신은 내게 말하지 않아도 되고,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고 원한다면 변호인을 출석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을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무료로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이 권리들을 이해했나요?”
피의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면, 수사관은 미란다 권리를 포기하고 싶은지 또는 심지어 경찰에게 진술할 의사가 있는지조차 물어보지 않은 채 즉시 피의자신문을 시작한다. 그러니까 수사관들은 피의자가 미란다 경고를 피의자신문이 시작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나 피의자신문을 거부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대신, 읽어 보거나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서명만 하면 되는 형식적인 절차로 보고 있다.
― Leo and White 1997, 437

여러 번에 걸쳐서 나는 불 지른 것을 부인하려고 했으나, 수사관은 내가 말하거나 해명할 수 없게 만들었다. 수사관은 화난 어조로 계속해서 내게 욕을 퍼부었다. 그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방화범이라고 말했다. 내가 대답하거나 그의 추궁에 대해 부인하려 할 때마다 그는 나를 무시한 채 이야기했고, 내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노려보았다. 그걸 보니 나는 가담한 적이 없다고 부인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 Declaration of Derek Niegemann 1999, 4

경찰이 유도한 자백은 할리우드 드라마와 같다. 사건에 관해 수사관이 세운 가설에 따라 각본을 쓰고, 신문과 리허설을 통해 다듬으며, 수사관이 감독하고, 피의자가 연기한다. ― 솔 캐신 (2005)

상식적으로 볼 때 맞지도 않았는데 허위 자백을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 코리 에일링 (1984)

그 방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난 무슨 말이라도 했을 것이다. ― 코리 빌 (2001)

보강증거 없는 자백은 무가치하다. ― 마크 프랭크 외 (2006)

자백은 언제나 문서로 한 것이든 구두로 한 것이든 검사나 판사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증거로 활용되어 왔다. 피고인이 유죄인지에 대한 공적인 의심을 마법처럼 떨쳐 낼 수 있으며, 체포와 처벌을 맡은 당국자들이 품을 수 있는 사적인 불안감도 제거할 수 있는 부적과 같다.
― 셀윈 랍

(허위 자백에 의한) 엉뚱한 사람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마치 외과 의사가 엉뚱한 팔을 잘라 내는 것처럼 전문가가 저지르는 최악의 오류 가운데 하나이다.
― 리처드 오프셰

지난 15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오판의 숫자를 그럴듯하게 추산해 보면, 수천 건 어쩌면 수만 건에 이를 것이다.
― 새뮤얼 그로스 외

위대한 고문 기술자들
중정 남산 분실에서 인혁당 사람들을, 민청련 학생들을 고문했던,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이재문을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김근태를, 박종철을 고문했던, 부천경찰서 조사실에서 권인숙을 성고문했던, 위대한 고문 기술자들.
그들은 물고문, 성고문, 전기고문 등 고문을 잘했기 때문에 승승장구해서 승진했고 퇴직 후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무원 연금을 받고 여생을 편히 살았다. 우리는 그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 위대한 고문 기술자들 덕분에 노동운동, 학생운동을 한 불순분자들을 척결했고, 북한의 적화통일 기도를 분쇄했고, 오늘날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지 않는가.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악에 굴복하고 악에 물들어버린 비겁한 인간들이고 패배자들이었다. 악이 그들 인간의 본성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다. 아무렴 어떻게 평범한 인간이 아주 잔인한 종족으로 돌변할 수 있었겠는가. 자기 기만과 위선, 안일한 이기주의로 자신을 옹호했다. 그래서 인면수심의 악마가 되었다. 겉으로는 가면을 쓰고 악마의 본성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단순히 자백과 조작,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에 빠져서 인격 파괴, 인간성 말살을 시도한 것이다. 그것은 살인보다 더 무섭고 악랄한 범죄이다.
그들이 정말 평범한 보통사람이었다면 인간적으로 반성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겸손할 줄 알고, 후회할 줄 알아야 한다. 무슨 위원회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했던 고문자들은 반성하는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 시절의 고문의 추억에 잠겼다. 한결같이 변명하기에 급급하거나, 고문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거나, 나는 가해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자에 가깝다고 호소하거나, 자신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을 뿐이라고 항변하였다.
그 시절에 고문 담당자가 과로사로 순직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작성일:2016-05-26 15:25:31 14.32.9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