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서 신일본제철·미쓰비시 원고 승소 판결 이끌어 내
항소심·추가사건 산재…한·일 공동재단 설립 방안 고심

직업에 귀천은 없다. 하지만 좀 더 많은 돈을 벌고, 좀 더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직업은 분명히 존재한다. 변호사라는 직업도 이 중 하나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법의 수호자로 국민의 권익 대변자로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헌데 경제 논리에 휘둘리는 현 사회에서 대접은 둘째 치고 돈이 안 되는 약자를 위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에 뛰어 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명예와 부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약자들을 돕고자 변호사 인생을 건 이들이 있다. 바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장완익 변호사와 김미경 변호사다. 이들에게 변호사로서의 삶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사건과 동행해 온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장완익 변호사
“변호사를 시작하고 그 다음해인 1994년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강제동원피해자사건까지 진행해 온 세월이 20여년입니다.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접하면서 공감하게 되고 그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어느 순간 강제동원피해자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긴 했지만, 일련의 사건을 주도했다기보다 일련의 사건들과 동행해 온 세월이었습니다.”

강제동원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신일본제철 주식회사는 2012년 8월경 스미토모 금속공업 주식회사를 합병한 후 그해 10월 상호를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이하 ‘신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된 지 8년여 만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을 이끌어 낸 장완익 변호사는 이 사건을 진행하는 동안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본인도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겸손의 말로 운을 띄웠다.

▲ 김미경 변호사
장 변호사와 함께 신일본제철 사건에 동참한 김미경 변호사 역시 “대단한 사명감보다는 2004년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장 변호사로부터 일제 피해자 구제 사건에 동참할 뜻이 없냐는 제의를 받았고, 대학 다닐 때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에 참여해 본 경험을 생각하며 함께 하게 됐다”며 겸손의 말을 전했다.

그래도 그들에게 지난 수년간은 인고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장 변호사와 김 변호사는 입을 모아 이렇게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1995년 제소된 가마이시 소송에서 신일본제철이 유가족과 합의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1997년 제소된 오사카 소송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고 1심은 패소한 상태였지만 2002년 월드컵이 진행되면서 합의쪽으로 가닥을 잡는 듯 해 기대를 했는데, 결국 3심까지 패소하는 참패를 맛봐야 했다”고 전했다.

이후 국내에서 2004년 무렵부터 강제동원피해자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장 변호사는 말했다. 특히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되는 등 강제동원피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내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판단, 장 변호사는 김 변호사와 함께 2005년 2월 서울지방법원에 신일본제철 사건을 제소하게 됐다. 하지만 이후 8년이 걸렸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5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는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능력 부족으로 역사적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많이 두려웠고, 상고이유서를 쓰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던 밤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연이은 패소에 원고를 법원에 모셔갈 수 없었다는 장 변호사는 일본에서 판결문을 손에 받아들기 전까진 믿지 못했었다고 한다. 장 변호사는 “판결 전날 이길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듣긴 했지만 판결문을 보기 전까지 믿을 수 없었다”며, “판결문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원고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대법원의 판결은 한 줄기 빛이였으며, 희망이었을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식민지배의 불법성,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확정판결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에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요건에 위배돼 승인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판시에 따라 지난 7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각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어 7월 30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피해보상 소송에서도 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고등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1인당 8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소송에서 전부 패소하고, 국내 법원에서도 원고패소에 이어 항소기각까지 된 사건들을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원고 승소판결을 이끌어 낸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사건이 끝난 것이 아니다. 신일본제철은 대리인을 통해 7월 30일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로 또다시 대법원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물론 최근 신일본제철이 일본신문을 통해 강제징용자 피해 배상금 지급 의향을 밝힌 바 있긴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다.

김 변호사는 “신일본제철이 강제징용자 피해 배상금 지급 의향을 밝히긴 했지만 아직 대법원 상고를 취하한 것이 아니므로 대법원 재판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상고가 진행되고 있는 이상 상고 기각판결이 빨리 선고될 수 있도록 응소할 것이며, 한차례 파기환송된 사건인 만큼 빠른 진행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법원의 판결이 원고승고로 확정될 경우 피고는 판결상의 의무를 이행할 법적 책임이 있다”며 “세계 굴지의 기업인 피고 기업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배상금 지급 의향을 밝힌 바도 있으니, 판결상 채무에 대해서는 임의이행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장 변호사나 김 변호사에게 이번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의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후지코시, 신일철 등 3건의 추가 소송이 제기돼 있는 상태로 장 변호사와 김 변호사는 이미 제2라운드전에 돌입했다. 이에 장 변호사와 김 변호사는 앞으로도 일본 기업들과 지루한 싸움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 변호사는 “현재 제소된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만도 100여명에 달한다”며, “우선은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 원고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추가 피해자와 유가족 재판을 위해 발 벗고 뛸 것”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하지만 현재 재판을 제소한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와 더불어 피해자가 강제징용 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힘들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일한 기업이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경우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배상을 청구할 수밖에 없어 신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 사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가족이 강제징용됐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어디로 끌려갔는지, 어느 기업에서 일했는지 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 변호사는 “지난 7월 대한변협과 일본기자간담회에서 언급됐던 이야기처럼 한국과 일본의 정부와 기업이 나서 재단을 만들고 강제징용된 인원과 가해 기업을 조사하는 등 진상조사를 실시해 경제적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본 정부, 기업과 협의하는 한편 위령사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장 변호사는 “이를 위해서는 강제동원피해자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정부, 기업, 법조계는 물론 국민의 관심과 응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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