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3. 3. 28. 2011다3329 판결

1. 대상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피고와 사이에 체결된 공급계약에 따라 장비 및 용역제공을 하였다는 이유로 미지급 대금의 지급을 구함에 대하여, 피고는,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다른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관련소송’)에서 원고가 이 사건 미지급 대금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항변을 하였고, 그 후 개시된  관련소송의 조정절차에서 피고의 손해액을 산정한 다음 이 사건 미지급 대금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만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조정이 성립되었으므로, 이 사건 미지급 대금채권은 위 상계로 소멸하였다고 주장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소송상 방어방법으로서의 상계항변은 수동채권의 존재가 확정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행하여지는 일종의 예비적 항변으로서 당사자가 소송상 상계항변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상호양해에 의한 자주적 분쟁해결수단의 조정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당해 소송절차 진행 중 당사자 사이에 조정이 성립됨으로써 수동채권의 존재에 관한 법원의 실질적 판단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소송절차에서 행하여진 소송상 상계항변의 사법상 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

2. 평석

(1) 소송상 상계권의 행사와 본안판결 외 소송종료시 그 사법상 효과
소송상 공격방어방법으로 형성권(해제권, 해지권, 취소권, 상계권 등)을 행사하는 경우, 즉 사법상 형성권을 행사하고 그 사법상 효과를 소송상 진술하는 경우와 달리 소송상 형성권의 행사와 동시에 항변을 하는 경우 사법상 효과가 그 후 소가 취하되거나, 소가 부적법하여 각하되거나(‘부적법 각하’), 또는 이러한 항변이 실기한 공격방어방법으로 각하(‘실기 각하’)되는 경우 어떻게 되는지에 관하여 논의가 있다.

소송상 형성권의 행사의 법적 성질에 관하여 이를, 외관상 하나의 행위이지만 법률적으로 보아 형성권의 행사라는 상대방에 대한 사법상 의사표시(사법행위)와 그러한 의사표시가 있었다는 것을 법원에 대하여 사실상 진술(소송행위)하는 두 가지가 병존한다고 보는 견해(병존설)의 입장에서는 소송상 형성권을 행사한 후 소취하, 부적법 각하, 실기 각하의 경우에도 애당초 발생한 사법상 효과가 그대로 유효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병존설의 입장이나, 상계권의 행사에 있어서 소취하, 부적법 각하, 실기 각하 등으로 법원에 의해 실체적인 판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법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견해(신병존설)가 있다. 신병존설에 의하면, 상계권의 경우는 그 행사가 공격방어방법으로서의 의미를 잃는 경우에는 사법상 효과를 후에 남기지 않는다는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보나, 취소권이나 해제권 등의 경우는 그 행사가 공격방어방법으로서의 의미를 잃은 경우에도 사법상 효과를 후에 남기는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본다. 신병존설 내에서도 실기 각하의 경우에만 상계의 사법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견해, 실기 각하, 부적법 각하 뿐만 아니라 소취하의 경우까지 사법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다만 사법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논리로서, 무효설, 철회설, 조건설 등 견해의 대립이 있다(김홍엽, ‘민사소송상 형성권의 행사’, 성균관법학 21권 3호(2009. 12.), 415쪽 이하).

대상판결 이전의 판례는, 원고가 소송상 해제권을 행사한 경우 원고가 그 후 소를 취하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해제권의 행사의 효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다(대판 1982. 5. 11. 80다916). 판례는 소송상 해제권 외 상계권의 행사에 대하여 소취하, 부적법 각하, 실기 각하 등의 경우에도 그 사법상 효과가 유지되는지에 관하여 대상판결까지 판시한 바 없었다.

(2) 대상판결의 문제점
첫째, 대상판결은 상계항변을 일종의 예비적 항변으로 보는 데서 소송상 상계권 행사와 그 사법상 효과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상계항변의 대부분이 가정항변 즉 예비적 항변으로 소송물인 원고의 청구권을 다투는 주된 항변이 배척될 것을 대비하여 방어방법으로 제출하는 것이지만, 상계항변 가운데에는 원고의 청구를 인정한다든지 별다른 항변을 하지 아니한 채 원고의 청구를 단순히 부인하고 있는 상태에서 상계항변을 주된 항변으로 제출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대상판결이 상계항변을 아예 예비적 항변으로 보는 전제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둘째, 대상판결은 앞서와 같이 상계항변의 성질을 일종의 예비적 항변의 성질로 보는 전제에서, 소송이 조정으로 종료되어 상계항변의 대상인 수동채권의 존부에 관하여 법원의 실질적 판단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이상 소송상 상계항변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법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소송상 상계의 항변과 본안판결 외 소송종료와의 기본적 문제를 정면으로 접근하여 판례의 태도를 밝히지 아니하였다.

셋째, 소송상 상계항변과 본안판결 외 소송종료시 사법상 효과의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소취하, 부적법 각하, 실기 각하의 경우와 같이 소송상 상계항변에 대하여 본안판결에 의하여 판단되지 아니하는 경우를 다른 형성권의 소송상 행사와 달리 취급할 것인지가 주된 논의의 대상이었다(상계권에 기한 항변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형성권에 기한 항변과 다른 성격을 가진다. 상계항변은 다른 형성권의 항변과 달리 중복소송, 실기한 공격방어방법으로 인한 각하, 기판력의 시적 내지 객관적 범위, 상소의 이익 등과 관련하여 특수한 성격을 가진다).

대상판결은 소송상 상계항변의 예비적 항변의 성격을 강조하면서도 당사자가 소송상 상계항변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상호양해에 의한 자주적 분쟁해결수단인 조정의 성격 등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소송상 상계항변으로 달성하려는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명확히 하고 있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상판결의 이러한 결론이 조정의 성격 등도 고려한 것이라면 본안판결 외 소송종료의 사유가 조정 내지 소송상 화해 등에 국한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여, 대상판결의 사정범위를 정확히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대상판결의 판시 문언만으로 보아서는 소송상 상계권의 행사의 경우 조정이나 소송상 화해에 의한 소송종료의 경우 외에 청구의 포기나 확정된 화해권고결정 또는 확정된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 등에 있어서도 결론을 같이 할 것인지, 더 나아가 논의의 기본적 전제인 소취하, 부적법 각하, 실기 각하 등의 경우에도 대상판결의 논리를 적용할 수 있는지 불투명하다.

넷째, 대상판결은 소송상 상계권의 행사에 있어서 본안판결 외 소송종료사유가 발생하여 소송상 상계에 대하여 법원의 실질적 판단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점에 대해서보다는 오히려 수동채권, 즉 원고의 소구채권의 존재에 관하여 법원의 실질적 판단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점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대상판결은 수동채권에 대하여 실질적 판단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는 의미에 있어서, 법원이 본안판결을 통하여 이에 관한 판단을 하지 아니한 측면만을 보고 있는 데, 법원이 수동채권과 자동채권에 대하여 충분한 심리를 하였으나 본안판결 외의 사유로 소송이 종료된 경우에도(특히 조정이나 화해시 이를 전제로 조정액이나 화해액이 산출된 경우에도) 법원의 실질적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것인지 의문이다.

다섯째, 대상판결은 이 사건 미지급 대금채권은 관련소송의 소송물이 되지 아니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조정조서의 조정조항에 특정되거나 청구의 표시 다음에 부가적으로 기재되지 아니하였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조정조서의 효력이 이 사건 미지급대금 채권에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방론으로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소송상 상계항변 후 본안판결 외 소송종료의 경우 상계의 사법상 효과가 그대로 남는다고 볼 것인지 여부에 관한 판단에 있어서 이러한 판단 부분은 논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자동채권에 관하여 조정조서상 조정조항에 특정되거나 청구의 표시 다음에 부가적으로 기재되는 경우는 이러한 자동채권이 소송물을 이루어(즉 소송물에 자동채권의 부존재확인청구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 판례가 인정하고 있는 조정의 창설적 효력 등이 생긴다는 것에 불과하며(물론 이러한 경우는 상계의 사법상 효과의 발생을 전제로 한다. 화해 내지 조정에 있어서 창설적 효력은 다툼이 있는 사항에 관하여 발생하는데, 조정조서에 이러한 기재를 함으로써 다툼 있는 소송물로 되었기 때문이다), 소송상 상계항변을 하였으나 조정조서에 이러한 기재가 없는 경우에도 상계의 사법상 효과가 발생하는지 여부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의 이러한 판시는 조정조서나 화해조서 등에 이러한 기재가 있는 경우에만 상계의 사법상 효과가 인정되는 것처럼 이해할 여지가 충분히 있어 그 부분에 대하여도 판시상 구체적 언급이 필요하였다.

(3) 결 론
대상판결의 결론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으나, 소송상 형성권 행사 가운데 소송상 상계권의 행사에 있어서는 본안판결 외 소송종료의 일반적 경우에도 상계의 사법상 효과가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이해할 여지가 있어, 판례가 소송상 상계항변 후 소취하, 부적법 각하, 실기 각하 등에 있어서도 상계의 사법상 효과가 발생하지 아니한다고 볼 것이 예상된다(김홍엽, ‘민사소송법(제4판’, 2013년, 466쪽).

소송상 상계권의 행사는 소송상 다른 형성권의 행사와 그 성질이 사뭇 다르다. 대상판결이 원고의 청구권 자체와 양립할 수 없는 다른 형성권의 소송상 행사와 달리 피고가 자신의 채권을 출혈적으로 제공하여 원고 청구의 기각을 구하는 특수성에 입각하여, 다른 형성권의 행사에 있어서는 그 행사 후 본안판결 외 사유로 소송이 종료되더라도 그 사법상 효과가 여전히 남으나, 상계권의 행사에 있어서는 그러하지 않음을 보다 명확하게 짚고 넘어갔었어야 하였다. 대상판결을 통하여 그동안 소송상 상계권의 행사와 본안판결 외 소송종료시 그 사법상 효과에 관하여 판례의 태도를 확인할 수 없었던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에 이르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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