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청률 20%를 훌쩍 넘어 동시간대 1위에 링크된 한 편의 드라마가 있었다. 꽃미남, 꽃미녀 주연배우는 물론 매회 등장하는 까메오(cameo) 출연자들까지 깨알 같은 웃음과 감동을 준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였다.

평소 드라마를 즐기시는 어머니께 막장극을 왜 보시냐고 툴툴거렸던 내가 TV 리모컨을 사수한 채 입을 헤벌쭉 벌리고 코를 박고 있으니 어머니께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상대방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 미남 주인공도 흥미로웠지만 내 시선을 고정시킨 것은 예의도, 겸손도 없고 사람들과 얽히는 걸 싫어해 친구도 없는 여자 주인공 변호사가 “진실이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 진실이야!”라고 너무나 태연히 말하는 장면에서 언뜻 그 모습이 내 한 단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위 드라마가 끝날 때쯤 여자 주인공 변호사는 소외된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을 위해 진심어린 변론을 하는 훌륭한 국선전담변호사로 성장해 있었다. 과연 나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제발 당신만이라도 들어달라고 찾아온 많은 상담의뢰인들에게 어떤 변호사였나.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어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곱씹어 보았다.

최근 환갑이 지난 선배 변호사께서 재판을 다녀온 후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당신께서는 변호사석에 서서 재판부를 바라보며 열심히 준비한 변론을 하는데 재판장은 사건기록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류만 뒤적이면서 제대로 알아먹지도 못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하기에 변론을 멈추고 정중히 말씀하셨단다. “재판장님. 본변호인은 재판장님을 바라보며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께서도 말씀을 하실 때는 저의 눈을 바라보며 해주십시오”라고.
반면교사로 삼아 마땅할 말씀이었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그가 하는 말은 물론 전하고자 하는 행간의 의미까지 듣기 위해 마음을 열지 않으면 결국 각자는 자신의 목소리만 듣는 셈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자신의 목소리만 듣고서도 그것을 대화라고, 토론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8월 10일 토요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다녀왔다. 수많은 목소리를 보았다. 발랄한 대학생에서 연세 지긋한 어르신은 물론 고사리 같은 어린아이들 손에도 작은 촛불은 어김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푹푹 찌는 살인적인 폭염이었지만 주최측 추산 5만여명, 경찰 추산 1만6000여 명이 모였다. 참고로 경찰이 추산하면 우리나라 인구는 5000만이 아니라 1000만이라는 자조적인 우스개를 감안해야 할 테지만.
무엇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밤에 뜨거운 촛불을 들게 하였는지 길게 말하면 입 아플 일이다. 그럼에도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라는 단군이래 초유의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이어 민주주의의 훼손을 방치한 채 한편으로는 침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NLL포기 운운하며 엉뚱한 소음으로 깨어있는 국민의 목소리를 잡음으로 치부하려 하는 집권 여당의 행태가 참으로 답답하고도 슬프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댓글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정원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정원으로부터 나온다’이었다는 말인가.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 여성대통령께서는 국정원으로부터 덕 본 게 없으니 자신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으셨다. 대통령께서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덕을 보셨는지 안 보셨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으로 천박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댓글로 도배질한 범죄행위에 대해 성난 민심을 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 정말 모르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이제 첫 여성대통령님께 고언을 드린다. “대통령님. 우리 국민은 대통령님을 향해 촛불을 들었습니다. 촛불의 함성이 들리십니까? 들리신다면 대통령님께서도 우리 국민의 눈을 바라보며 그 촛불에 답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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