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이 보여주는 현실이 과연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가
감독이 우리사회의 공공영역에 대해 품고 있는 사원의 정체 궁금해

▲ 홍승기 인하대 법전원 교수
한국영화가 잘 나가고 있다. 영화계의 오랜 화두였던 스크린 쿼터가 생각난다. 스크린 쿼터 운동가들은, 우리 정부가 한·미FTA를 하느라 스크린 쿼터를 줄이면 한국 영화는 고사(枯死)하고 우리 국민은 한국인이 만든 한국 영화를 볼 수 없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무렵 나는, 연로하신 임권택 감독을 추운 날 길거리에 내세우고 삭발하게 만든 그들 운동가들의 행태에 분노하였다. 그들이 성경처럼 받들던 사례는 멕시코였다. 멕시코가 미국의 압력으로 스크린 쿼터를 양보한 후 영화산업이 황폐화되었다는 예를 주술처럼 흥얼댔다. 남미 영화 시장에 정통하지는 않지만, 운동가들이 터무니없는 왜곡을 하고 있겠거니 짐작했다. 거두절미하고, 자국 영화에 대한 열혈관객이 있는 우리 시장과 멕시코 시장을 단순 비교하는 짓거리부터 못마땅했다. 그들의 친구 참여 정부는 스크린 쿼터를 줄였고, 한국영화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력 있게 국내에서, 해외에서 빛나게 활약 중이다.

‘부당거래’가 히트를 치던 무렵 후배가 “배석 판사들에게 점심이나 사라”고 전화를 하였다. 판사가 변호사 보기를 벌레처럼 하던 세태인지라 감읍하여 헐레벌떡 약속을 잡았다. 밥집에 나타난 후배의 첫마디는 “형, 부당거래 봤어요?”였고,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약간 망설였다. 답을 기다리지 않고 후배는 “그거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로 질문을 이어갔다. 긴장을 풀고 “아주 재미있었다”고 받았으나, 검찰을 농락한 영화 ‘부당거래’를 너무 재미있는 영화로 치켜 올리는 부장판사님 태도가 더욱 재미있었다. 이십 수년 전 검찰수습 시절 어느 검사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법원을 흉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옆 공장에서는 형사 단독들이 월말에 몇백만원씩 실비를 나누어 간답디다!” 법조인이라는 이름으로 울타리를 이루어 가족처럼 행복하게 지내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보석이 허가되면 몇몇 변호사들이 결혼식 부조금을 내듯 실비(室費)라는 이름으로 봉투를 놓고 왔다던 흘러간 전설 속의 에피소드이다.

‘부당거래’는 날생선처럼 퍼득이는 영화였다. 한국 스텝이, 한국 배우와 어울려, 한국의 이야기로, 멋진 사회고발 드라마를 만들었다. 극장 불이 켜진 후 ‘영화쟁이들이 검찰을 우습게 보는구나’ 하는 자괴감과 ‘표현의 자유’는 권부(權府)를 향해야 한다는 카타르시스가 가슴 한 쪽에 엉켰으나, 한국영화의 성장과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성숙한 환경에 뿌듯하였다. 경찰대학과 非경찰대학의 갈등 구조, 경찰과 검찰의 기(氣)싸움, 스폰서, 건축 비리 - 그리하여 이루어지는 수사 비리의 묘사는 현장감이 넘쳤다. 류승범이 연기하는 비리 검사, 황정민이 연기하는 비리 경찰뿐만 아니라, 경찰 간부, 부장 검사, 건설업계 시공사 사장 등의 캐릭터에, 사법연수원 동기이든 고등학교 동창이든 옛 의뢰인이든 누구인가가 한 사람씩 얼굴이 겹쳐졌다. 촌철살인의 대사로 짐작하건데 작가는 수사기관의 속살까지 오밀조밀 살펴본 모양이었다. 옆자리의 아내에게 소곤댔다. “약간씩 오버는 하는데 리얼리티 죽이네!” 한편으로는 법조의 말석에 발을 걸치고 밥 벌어 먹고 살던 처지에 어째 법조인이 무더기로 하대(下待)받는 듯 하여 좀 캥기고 불편한 감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공무원 사회에 ‘청렴’ 바람이 불면서 서울시공무원교육원에서 청렴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졸지 않게 영화로 이야기를 풀었으면 좋겠다’기에 ‘부당거래’를 떠올렸는데, 요청을 한 쪽에서도 아예 ‘부당거래’를 딱 찍어서 교재로 해 달랬다. 그래서 강의 때마다 다시 보느라 아마도 10번은 더 본 듯하다. 볼 때마다 새로운 대사가 들리며 감독의 역량에 깜짝깜짝 놀랬다. 대한민국 수사기관의 어두운 면을 현미경으로 잡아내고, 검찰이고 경찰이고 겁도 없이 마구 까부순 고졸 학력의 류승완 감독은 천재이자 전사(戰士)였다.

‘부러진 화살’은 성균관대 김 아무개 교수의 분투기이다. 김 교수는 영화의 성공 이후 단행본 ‘판사, 니들이 뭔데?’를 통하여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고 못 다한 욕을 적나라하게 퍼붓고 있다. 책을 집고 몇 줄만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가 단박에 파악된다. ‘부러진 화살’은 ‘영화적으로’ 참 잘 만든 영화이다. 아이돌 스타도 스펙터클한 장면도 없이, 중늙은이 배우들만으로 몰입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미국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생각났다. 카메라가 비좁은 배심원실에서 배심원들의 논의과정만을 따라가고 있을 뿐인데도, 섬세한 카메라 워크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고전이다. ‘부러진 화살’은, 서울고등법원 어떤 부장판사가 석궁 피해자인 양 혈흔을 조작하였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형사 항소심 재판부가 악의적으로 변호인의 ‘혈액감정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부득부득 우긴다. 당연히 관객은 썩어빠진 사법부를 향한 분노로 가슴이 벌름벌름하고 영화 속의 피고인 김 교수는 안중근 의사보다 의연하시다.

세상이 ‘부러진 화살’로 어수선하던 때, 아무도 안 읽는 허접한 잡지에 감독을 공격하는 잡문을 보냈다. 그날 저녁 충무로의 어느 영화제 행사에 갔다가 우연히 감독을 만났다. 몇 년 만이긴 하나 평소 그리 반가워할 일도 없었는데 그날따라 감독이 굳이 내 테이블로 찾아와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난감하였다. 막 칼럼을 보내고 달려왔다고 자백을 할 수도 없고, 태연을 가장하자니 포커페이스가 말을 듣지 않았다. 20년 전 감독협회 소송을 맡긴 감독이 수임료 일부를 떼먹고 넘어간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빚쟁이로서의 여유에 의지할 수 있었다. 아래 단락은 감독을 만나기 두 시간 전 ‘send’ 버튼을 눌렀던 잡글의 마지막 대목이다.

“감독의 의도에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속기록과 판결문을 분석하였을 감독은 항소심 재판부가 ‘혈액 감정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심과 항소심에서 여러명이 증언대에 섰고 그 부장판사의 옷에서 혈흔이 입증된 바에야, 김 교수가 석궁 격발 연습을 하였고 그 부장판사의 집을 몇 번이나 사전 답사한 바에야, 항소심 결심 단계의 혈액 감정 신청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신청 목적이 무엇인지를 노련한 감독이 놓쳤을 리 없다. 그렇다면, 그가 우리사회의 공공영역에 대하여 품고 있는 사원(私怨)의 정체는 무엇인가? 동영상의 파괴력을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을 그가, 허구를 진실이라 주장하며 수백만 관객을 속이고 과연 즐거웠을까, 두려웠을까? 스크린 쿼터 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2012년에도 망하지 않은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떼돈을 번 그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다.”

‘부러진 화살’은 ‘대한변협신문’의 세례(洗禮)를 받기도 하였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대한변협신문의 ‘칼럼’은 피해자 고등부장의 평소 법정태도를 비난했고 ‘인터뷰’는 ‘부러진 화살’이 주장하는 팩트(fact)를 지지하였을 게다. ‘신문편집위원회’의 해체가 가져 온 여파라 믿는다. 혼자서 만드는 ‘찌라시’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편집위원회가 있어서 회의를 통하여 상식을 모았다면 그러한 치기(稚氣)는 면할 수 있었으리라. 과도하게 발랄하셨던 어느 협회장은 편집위원들이 만만한 인물들이 아니라고 ‘규정’까지 개정하여 신문편집위원회를 해산하고, 자신이 ‘발행인’과 ‘편집인’을 겸하였다. 협회장이 바뀌었어도 편집위원회는 부재(不在)했으니 그런 해프닝이 생겼지 싶다. 세월이 흘러 협회장이 또 바뀌고 ‘편집인’은 공보이사에게 돌아왔다는데, ‘규정’을 원래대로 환원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딱 10개월인가 만에 그만 두었던 공보이사 시절, 대한변협신문에 ‘변협은 회원의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자학적 글을 썼다. 예전에 회원 수가 적었을 때, 어느 회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만하던 때는, 다수 회원이 협회에 무관심해도 탈이 없었다. 관심 있는 분들끼리 알아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회원도 늘고, 예산도 늘고, 사회 속의 역할도 달라졌다. 이제 회원의 애정 없이는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변호사단체를 결코 이룰 수 없다. 대한변협신문이 ‘부러진 화살’을 대하는 논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간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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