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변, 잘 지내고 있지? 황변이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난 지 벌써 5년이 다 됐네. 떠날 때는 3년 금방일 거라는 희망으로 버텼는데, 재작년 영국에서 2년간 강의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2년이 너무도 멀게만 보였었어. 그래도 이제 두달만 있으면 볼 수 있다니 너무 두근거린다.

우린 모두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 지난 편지 이후로 또 많은 일들이 있었지. 나 지난달에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에서 하는 상반기 롤체인지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이틀간 잠시 검사의 일을 해봤어. 서로 역할 바꿔서 가상 소송기록과 증거로 이틀간 몇 번의 기일을 열고 경험을 해 본다는 게 힘들긴 했지만, 검사로 사건을 보니 재밌기도 하고 느끼는 것도 새롭더라. 판사님은 변호인을 하셨었는데, 이틀간이었지만 어떠셨을지 모르겠어.

아, 그리고, 올해부터 이제 우리도 홈쇼핑 광고가 허용됐어. 옛날에 우리 밥 먹다 홈쇼핑 광고 보면서 우리도 저런 거 하면 웃기겠다며 농담하고 그랬었잖아. 근데 진짜 올해부터 홈쇼핑 광고도 허용돼서 김앤신에서는 벌써 변호사회에 신고하고 첫 광고를 했더라고.
‘299,000원에 소장 대리작성, 증거정리까지!’‘10번 이용시 내용증명 3번 무료!!!’, ‘친구끼리 묶어서 소송하면 10% 더!!!’
뭐 이런 건데, 신변이 지난해 00시장에 출마했다가 미끄러지고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하더니만, 김변이 직접 TV에도 나오고 얼마나 신기하던지…. 김변도 벌써 애가 연년생으로 다섯이니 변화에 착착 적응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나도 또 고민이 되고 그렇네.

하…오랜만에 이렇게 편지로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보니 참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 처음 개업하고 겁도 없이 오는 대로 일을 맡아 더 이상 혼자 감당 못할 지경이 되었을 때 황변이 우리 사무실로 왔었지. 잠깐 도와주겠다고 했던 게 오자마자 새벽 4~5시에 집에 가고, 사무실에 방석 깔고 잠자고, 주말에도 서면 쓰고. 그렇게 애 셋 낳아버린 선녀처럼 황변은 우리 사무실에 주저앉아 버렸지. 그때는 나도 초짜에 사무실도 막 개업했던 터라 괜히 한참 때인 황변을 내가 이런 시골촌구석에 주저앉게 한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어. 그래도 그 작은 구멍가게가 자리를 잡아가고, 경험이 늘고, 식구가 늘고, 황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할 것 같던 내가 이렇게 황변 없이 몇 년씩 사무실을 지키고 있고. 참 신기하다.

쳇바퀴같이 계속 쏟아지던 일, 그 일들에 참 힘들었던 시간들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래도 웃고 또 힘을 내게 해 주었던 건 함께 견뎌주었던 황변과 우리의 친구, 동료들이었던 것 같아. 부족한 실력으로 짱구를 쥐어뜯고 있었을 때 한 줄기 빛과 같이 판례를 내려주던 동료들, 연이은 납품기일에 전쟁과 같은 한 주를 이겨내게 해 주었던 주말의 우리들의 반짝여행, 말아먹은 재판에 인생까지 말아먹은 양 주저앉아 있었을 때 자신은 더 말아먹었다며 위로해주던 친구들, 더 열심히 하자며 다독여주던 황변…. 야근때 울리던 조원들의 카톡 문자가 없었더라면 참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 같아. 같이 간다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참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내가 언젠가 이야기했던 글귀 생각나?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다.
‘우리가 숲이 되자’

다들 이제 40줄 넘기고 조장님은 벌써 반백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도 모두는 나에게 푸르른 나무 같아. 든든한 숲 같고. 모두를 만날 때면 아직도 어찌나 설레고 좋은지.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제 황변도 그만 신랑이랑 외국 생활은 접어. 조판도, 이판도, 정판도, 천변, 박변, 이검도 다들 보고 싶다고 얼마나 난리라고. 얘기하다 보니 또 길어졌네. 나머지 이야기는 오면 하기로 하고 이만 줄여야겠다. 옆방에서 윤변이 또 일 안 하고 딴 짓한다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

황변. 잠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렇게 숲으로 돌아와 주어서 고마워. 함께 울고 웃고 힘들었던 언젠가의 그 시간들도 모두 너무너무 고마워.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함께 할 시간들도 미리 고맙다는 말을 건넬게. 언제나 넌 내게 최고의 동료이자 가장 따뜻한 친구,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멋진 동생이니까. 빨리 와서 우리도 홈쇼핑 광고 만들자. 올 때 형부랑 우리 여린이 선물 사오는 것도 잊지 말고! 알지? 언니는 열쇠고리 따위는 받지 않는다!

2019. 7. 1. 친구를 기다리며 강변이.

p.s 참, 우리 이전한 사무실 주소 내가 안 가르쳐 줬지? 혹시 모르니까 지금 써줄게. 경기도 동탄시 YY동 은혜빌딩 법무법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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