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전문가 프로보노 영역 되었으면…

가끔 블로그나 온라인 매체에 법적 이슈에 대한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판사의 입장에서는 정식의 학술논문이 아닌 그와 같은 외부 매체에 법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법적 이슈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어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분야인 경우 나름대로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에서 글을 올리곤 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을 쓰다 보면 기초적인 개념을 어느 정도로 설명해야 되는지 고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술논문이라면 기초적인 개념이나 법적 지식에 대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필요하더라도 그 내용을 자세히 쓸 것 없이 관련 논문이나 자료를 인용하면 된다.

그러나 일반인을 위한 글은 이러한 방법을 택하기 어렵다. 기초지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관련 자료에의 접근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야 참고서적이나 논문 DB에 접근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경로가 있지만 오픈 억세스(Open Access) 정책을 채택하지 않은 DB나 논문의 경우 일반인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운 좋게 자료에 접근이 가능하더라도 그들에게 필요한 기초적인 개념이나 법적 지식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아 큰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기초적인 개념 설명으로 지면을 채울 수도 없는 일이어서 결국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상의 콘텐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거의 없거나, 있어도 그 내용이 부실하다는 점이 문제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그나마 있는 내용도 부정확하고 때로는 잘못된 내용이 버젓이 인용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2001년에 시작된 위키피디아(www. wikipedia.org)는 비영리 단체인 위키피디아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모든 컨텐츠는 이용자들에 의하여 채워진다. 현재 200여개의 언어별 위키피디아가 있고, 한국어판은 http://ko.wikipedia .org로서 정식 한글 명칭은 위키백과이다. 가장 방대한 양을 갖고 있는 것은 역시 영어판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집단지성에 의한 획기적인 방식이라 내용의 신뢰성이나 정확성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현수준을 보면 놀라울 정도의 충실한 내용을 보여준다. 이미 기존 백과사전의 수준을 넘어섰고, 학계의 엄격한 인용 기준에 의한 제한의 여지는 있더라도 웬만한 주제어들에 대한 내용은 전문가들마저 참고가 가능할 정도이다.

그러나 한국어판 위키백과의 경우는 그 수준의 차이가 크다. 전반적인 양도 크게 부족하지만 내용의 충실도가 많이 떨어진다. 특히 법적인 주제어에 있어서 그 정도가 심하다. 지적재산권과 같은 전문분야의 경우는 개념정의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한국어판 위키백과의 수준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참여자의 폭, 즉 전문가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특히 법적 지식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함부로 내용을 편집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전문가인 법률가들의 참여가 적으면 내용이 빈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법률가, 특히 변호사들의 프로보노(Pro Bono) 활동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돕는 활동을 의미하는 프로보노는 원래 변호사들의 활동을 의미했던 만큼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동의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프로보노 활동에 대한 인식부족이나 참여하기에는 여유가 없는 현실, 프로보노 활동을 지원하는 체계적인 뒷받침이 부족한 점 등 때문에 아직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 못한 듯하나 점차 확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하여 정보화 시대에 있어 프로보노 활동은 그 폭이 좀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키백과 같은 곳에 법적 지식을 채워놓는 행위가 그 출발이 될 수 있다. 이른바 정보 프로보노는 참여의 문턱이 낮고 각자 자신의 사정에 따라 유연한 공헌이 가능하다. 특별한 절차가 필요없어 여러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다만 개별적인 무료 법률상담이나 법적 지원에 비해 정보 프로보노는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성과를 계량화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꺼려질 수 있다.

게다가 법률가들이 인터넷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경향이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에 있어 모든 이들이 접근가능한 열린 지식의 중요성은 클 수밖에 없고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고 정확한 정보의 양을 늘리는 것은 사회 전반의 후생을 높이는 중요한 작업이고 이는 우리 법률가들의 몫이다. 전문성을 갖춘 인터넷 이용자로서 열린 지식에 공헌하는 것, 어찌보면 21세기의 진정한 프로보노일 수 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