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철 교수
일반인이 생각할 때 우리나라 법 체제는 성문법을 위주로 하는 대륙법 계통이고, 영미법은 성문법이 아닌 판례법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우리와는 아주 다른 법 체제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긴 역사적으로 볼 때 영미법의 발달 과정이 판사가 판결(Stare Decisis)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법을 만들어 온 셈이니, 국회가 입법한 법령을 해석하여 사건에 적용하는데 그쳐야 하는 우리나라 사법제도와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법의 법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선, 영미법을 단순히 판례법으로 파악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즉 초기 미국법은 영국의 판례법 제도를 계수함으로써 시작됐지만, 근대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압도적으로 많은 성문법규(Statutes)가 의회에 의해 입법되어 미국법의 주류를 이루게 된 까닭에, 성문법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대륙법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영국과 달리 건국초기에 성문 연방 헌법을 채택함으로써 연방 대법원이 헌법조문을 시대 상황에 맞게 어떻게 해석하여 구체적 사례에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씨름하게 됨으로 대륙법 전통이 미국법 운용에 자동적으로 유입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법이라 호칭하는 미국에서 통용되는 법의 법원의 숫자와 그 복잡성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상상을 초월 하리라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미국 50개주 중의 하나인 루이지애나주는 원래 프랑스 식민지였던 관계로 지금도 그 주법은 프랑스법을 모법으로 한 대륙법 계통이다. 따라서 미국 전체가 영국의 판례법 전통만 계수한 것이 아니고, 동시에 대륙법 전통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전술했듯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연방의회나 각 주 의회에서 입법하는 성문법의 숫자가 워낙 많은 까닭에 미국법을 판례법이라고 단순 결론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속한 캘리포니아주만 하더라도 주 헌법 이하 주 의회가 법률로 제정한 성문법의 양이 대한민국 전체 법령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되니, 미국 50개주의 성문 법령을 다 합친다면 얼마나 많을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둘째로, ‘미 연방공화국’으로 번역되는 ‘U.S.A.’란 나라의 구조란, 고희에 가까운 나이의 내가 일생의 삼분의 이 이상을 미국에서 살았건만 아직도 좀처럼 파악하기 어려운 나라다. 미국의 주를 마치 우리나라의 ‘도(道)’와 유사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을 것 같은데 이는 큰 잘못이다. 미국의 각 주인 State나, County, City는 우리나라의 도나 시 같이 대한민국이라는 단일정부에 속한 지방자치단체가 아니고, (비록 수직적으로는 차등이 있지만) 연방 정부와 마찬가지로 각각 독립된 정부(Government)에 가까운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이들 각 지방 정부들은 각각의 독립된 입법 사법 행정 조직을 갖추고, 독립된 예산을 가지고 운영되는 정부인 셈이다. 따라서 각 정부가 입법하는 지방정부의 법령들(예컨대 각 주법, 카운티나 시의 조례 등)은 비록 수직적으로 차등은 있지만, 연방법과 마찬가지로 미국법의 법원(法源)이 되는데, 과연 미국 내 이러한 정부가 몇이나 되는지 알고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놀랍게도 최근 미국의 센서스 통계를 보면 미국 내 정부 숫자가 약 8만3000개라고 하니, 이 복잡한 연방국가 정부 조직 구조나 미국법의 법원을 단일 정부 밑에서만 생활해온 한국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셋째로, 연방정부와 주정부(州政府) 혹은 주(州)정부 상호간의 관계가 위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수평적으로는 독립정부 간 관계인 탓으로 인하여, 연방법과 주법 간의 우선적 혹은 보충적 관계, 또는 주법 상호간의 상충 등 복잡한, 마치 국제법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니, 어떤 의미에서 미국인들은 미국법을 통해 요즘같은 세계화 시대의 법적 이슈들을 국내법적으로 체험하고 발전시키는 이점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내가 기억하는 재미있는 미국 헌법 판례 중에, 미국 각 주 사이의 상업활동을 규제하는 연방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 시절 각 주가 법률로 제정한 화물 트럭 바퀴의 진흙받이 모양이나 크기가 다 달라서 화물 트럭이 주 경계선을 지날 때마다 정차하여 각주 법률에 따른 진흙받이를 갈아 끼워야 했다는 케이스를 읽으면서, 만일 한국에서 화물트럭이 각 도 경계선을 지날 때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생각하며 속으로 혼자 웃은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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