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소용없던 할머니 침4대 맞고 편한 잠 이뤄
한의학을 서양의학으로 설명해야 하는 현실 안타깝다

얼마 전에 60대의 할머니 한분이 오셨다. 암 수술을 한 이후로 가슴이 답답하면서 영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 그분의 주소증(主訴症)이었다. 항암치료도 다 끝나고 그동안 힘들었던 수술 후 증상들도 거의 사라졌는데 잠은 예전처럼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수면제 처방도 받아봤지만 중독이 무섭기도 하거니와 일시적인 효과뿐인 것 같다면서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감도 심한 편이었다. 비단 수면제뿐만 아니라 한약에 대한 거부감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문진을 해보고 병력을 청취한 다음 변증을 하고서 일단은 침치료로 접근하기로 했다. 심화를 사하는 혈자리를 선택해서 침을 4개 놓았을 땐 “이것이 치료의 끝인가요?” 묻는 것이 좀 시덥잖아 하는 눈치였다.
그 다음날 출근하니 간호사 선생님들이 그분께서 문을 열기 한참 전부터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단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대뜸 “선생님 어떻게 한 거에요? 어떻게 잠이 온거죠.?” 라고 물어보신다. 잠 안오는 밤이 얼마나 지긋지긋했었으면 겨우 하룻밤 달게 잔 것으로 아침 일찍부터 문 앞을 서성였을까 싶어서 그저 루틴하게 처리했던 어제의 치료가 조금 미안해질 참이었다.
솔직히 이런 질문을 하는 환자는 매우 드물다. 주로 “왜 병에 걸렸나? 다른 가족은 괜찮은데 왜 나만 당뇨인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먹었는데 왜 나만 탈이 났는가?” 하며 자신의 불운에 대한 원인을 합리적으로 이해시켜주길 바란다.
이 질문에 대해 성실히 설명을 하고 치료의 계획을 밝히고 안심시키는 일까지도 치료겠지만, 환자의 눈높이로 잘 알아듣게 설명을 해야 하는 임상가로서의 요령이 필요한 그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한의학은 동아시아 전반에서 일어났던 제국주의 침탈과 병행된 근대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사장되었던 동양적, 전통적인 학문에 속했다. 아시아적 세계관과 가치, 학문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몰려 더 이상 보편적으로 뒷세대에게 학습되지 않았다.
그리스 로마신화부터 읽고 초등학교부터 학습된 서양철학에 기반한 지식구조를 가진 환자들에게 동양학에 기반을 둔 한의학적 치료원리를 설명하면 단번에 이해될 리가 없다. 부득이하게 이해를 돕기 위해 양방적인 해부학적 지식을 이용하거나 서양의학의 견해를 곁들여서 설명을 해야만 한다. 이것은 현대화 과정에서 현실적이고 발빠르지 못했던 한의학계의 실패의 단면이기도 하다.
근거지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 cine)이 장악하고 있는 의료계에서 한의학을 설명하려면 꾸준히 한의학적 치료들을 검증하고 재현하여 근거지중심의학에서 요구하는 의학적 근거들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것도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은 한의학발전육성책이나 이에 관련된 예산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고 검증하는데 필요한 의료기기의 사용도 막혀있다. 심지어 얼마 전 의사협회에서는 한의대에 의대교수들의 출강을 저지할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보건의료분야에서의 이런 극심한 대립과 갈등이 있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몇이나 될까 싶어 안타깝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다른 나라에서는 대체 보완의학의 개념을 도입해서 두 영역이 조화롭게 협업하는 과정이 생겨나고 있는데 풍부한 인적자원을 가진 우리나라에선 그저 부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식이 권력화되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의학은 강제력을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고 나는 믿고 싶다.
결국 약을 잘 써서 혹은 침을 잘 놓아서 수술이 잘되어서, 염증이 사라져서 그것만으로 병이 낫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수술이 잘되어도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회복된다. 침을 똑같이 놓아도 어떤 사람은 회복되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한다.
결국은 병자의 체력이나 면역력과 같은 힘이 병의 회복을 결정하는 좀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본다면 누구의 말처럼 환자의 회복력과 의지에 의학은 그저 숟가락만 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미경 오디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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