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가 만난 의뢰인 중에서 수능점수가 제일 높은 의뢰인이었을 게다. 명문 고려대 학생, 그것도 총학생회장씩이나 되는 청년이었다. 죄목도 그 직함에 제법 어울려 보였다. 도로를 점거하고 반값등록금 시위를 주도했다고 한다. 조서를 들춰보니 경찰조사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나와 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한 장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불굴의 투사.
사무실의 문이 열리더니 그가 들어왔다. 내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과 얼마나 닮았나, 흘끗 올려다보았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얼굴, 길에서 한두번 마주쳤을 법한 친숙한 얼굴이다.
무슨 생각으로 묵비권을 행사했느냐고 물었다. “어차피 사진 한 장이면 기소되고 벌금 나올 건데, 진술까지 협조해 줄 이유는 없잖아요.”
옴짝달싹 못하게 현장채증사진을 수십장씩 들이미는 공권력의 위압 앞에 한편으론 기가 질리기도 하고, 다른 한편 화가 나기도 해서 진술을 거부했단다.
그러면서 고개를 떨군다. 후배들에게 미안하단다. “선배 따라 집회 한번 나갔다가 100만원, 200만원씩 벌금이 나온 새내기들이 많아요.” 그러잖아도 등록금에 허덕이는 후배들에게 혹 떼주려다가 혹 붙여준 격이었다.
보아하니 후배들 걱정만 할 처지는 아닌 듯 했다. 1년 등록금이 1200만원, 물론 생활비는 별도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손을 벌린다 해도 역부족이다.
해답은 속칭 ‘노가다’였다. “한 달 노가다를 뛰면, 많이 벌면, 150만원은 벌어요. 일 끝나면 피곤해서 잠들어 버리니까 돈 쓸 시간도 없지요.” 그게 제일 효율적인 돈벌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일하다 보면 공부하다가 일하는 건지, 일하는 틈틈이 공부를 하는 건지 회의가 들기도 해요.”
‘요즘 흔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이었다. 이념으로 중무장한 채 비타협적인 투쟁의 선봉에 서는, 내 머릿속 그림 같은 불굴의 투사는 요즘은 없단다. 법정에선 진술거부하지 말고 사실대로 이야기하라고 달랬더니 의외로 순순히 ‘그러마’한다.
재판이 열렸다. 그는 약속대로 입을 열어 반값등록금 시위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연좌농성이나 행진으로 길 가던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건 미안하다고 했다. 다만 집회신고를 낼 때마다 대부분 유령단체들이 미리 선점하고 있어 집회를 할 수 없었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행진신고를 하면 대부분 불허되어 다른 방법이 없었노라고 했다.
재판장은 벌금을 낼 능력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없다고 했다. 검사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별건으로 집시법 위반에 따른 집행유예기간 중에 있다는 점이 재판 내내 마음에 걸렸다. 변호인이기 이전에 앞선 세대로서 가슴아프고, 괜시리 미안했다.
결론은 둘 중 하나, 벌금 아니면 집행유예였다. 형벌 자체로만 보면 집행유예가 더 무거운 형벌이지만 투사는 내심 벌금을 더 버거워했다.
국회에 불출석한 어느 재벌 회장님에게 벌금 1500만원은 껌값일 테지만 그에게 벌금 150만원은 한여름을 공사판 뙤약볕에 온전히 바쳐야만 낼 수 있는 노예의 형벌이었다.
재판장이 판결을 선고하며 말했다. “피고인은 공약사항인 반값 등록금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시위를 했습니다. 만일 이행되었다면 피고인과 같은 학생들이 거리에 나올 일은 없었을 겁니다. 피고인이 이 자리에까지 선 데에는 어른들의 책임도 크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고가 내려졌다.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이었다. “피고인에게 다른 집행유예 전과가 없었다면 경제적 능력이 없더라도 벌금형을 검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기 때문에 그 사건의 집행유예 기간과 이 사건의 집행유예 기간이 거의 같은 시기에 끝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판사는 오로지 판결문으로 말한다. 거기에서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곤 해도 판결문에 행간이 없다는 뜻은 아닐 게다.
판결문은 분명 벌금형보다 중한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있는데, 왜 내 눈엔 앞 세대가 뒷 세대에게 주는 응원의 메시지로 보였을까. 그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보다 더 의미있는 위로가 되었길 바란다.



/양은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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