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93025 판결

Ⅰ. 사실관계
소외 D발전 주식회사는 2005. 3. 1. 원고 B에게 C화력발전소 3 ~ 6호기 질소산화물저감설비 설치공사를 도급 주었다. B는 2005. 6. 30. 피고(아무개 공제조합) 보조참가인 A에게 위 공사 중 기계, 배관 및 철골공사를 공사기간은 2005. 6. 30.부터 2007. 5. 31.까지, 공사대금은 10,093,000,000원으로 정하여 하도급 주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그 내용에는 기성신청일로부터 10일 이내 기성 확정 후 부분기성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대금지급 조항이 있다. 그 밖에 계약이행보증금, 공사의 변경·중지, 물가변경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변경, 계약의 해제·해지 등 그 계약의 주요 내용은 생략한다).
그 후 B와 A는 1차·2차 변경계약을 체결하였고, A의 채무의 일부 이행과 B의 공사대금의 지급이 있었으나, A의 제15회·제16회 기성 청구가 있었으나, B가 그 지급을 거절함으로써 A는 2007. 3. 27.부터 공사를 중단하고 작업인부들을 모두 공사현장에서 철수시켰다.
그러자 B는, ‘A는 이 사건 하도급 계약에 따라 공사기간 내에 이 사건 공사를 완료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공사대금의 증액을 요구하며 4호기 공사 중인 2007. 3. 27.경부터 이 사건 공사를 중단하였고, 이에 B가 2007. 3. 29.과 같은 달 31. 등 수차례 계약 이행을 최고하였으나, B에게 공사재개 의사가 없음을 통보하여 2007. 4. 4.자 B의 해지 의사표시에 의하여 이 사건 하도급 계약은 해지됨으로써, 이 사건 각 보증보험계약에 따른 보증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피고는 A의 보증인으로서 B에게 계약이행보증금 합계 1,533,042,500원(1,110,230,000원 + 210,870,000원 + 211,942,500원)과 이에 대하여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소를 제기했다.
B의 주장에 대하여 피고와 A는, ‘이 사건 하도급 계약의 계약조건인 건설공사 표준하도급계약서 제25조의 2 제1항에 의하면 B가 선급금이나 기성금을 지급하지 아니하면 A는 공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일시 중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급인이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는 기성부분에 대한 공사대금 지급의무를 지체하고 있고 수급인이 공사를 완공하더라도 도급인이 공사대금의 지급채무를 이행하기 곤란한 현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수급인은 그러한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자신의 공사완공의무를 거절할 수 있다 할 것인바, B는 A가 기성 공사대금 등의 지급을 수차례 요구하였음에도 공사대금이 초과 지급되었다며 공사대금 지급의무를 부인하였으므로 A로서는 공사를 완공하더라도 B로부터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할 현저한 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A의 채무불이행을 전제로 한 B의 피고에 대한 보증보험금 청구는 이유 없다’고 항변했다.

Ⅱ. 소송의 경과
1. 원심판결
이 법원이 이 사건에 관하여 설시할 이유는 아래 제2항과 같이 고쳐 쓰는 부분 및…외에는 제1심 기재이유와 같으므로 ((前略)…2차 변경계약에서 정한 공사대금이 이 사건 공사대금을 최종 확정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할 것이고, 2차 변경계약에서 정한 공사대금이 이 사건 공사대금을 최종 확정하는 것이 아닌 이상 B는 A와 사이에 추가 공사대금을 정산한 후 A에게 이를 지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A가 추가 공사대금을 청구한 때로부터 약 1년이 경과한 후 일방적으로 그 금액을 정하고, A가 이에 이의하면서 제15회 기성금 청구를 하자 더 이상 지급할 기성금이 없다는 취지의 통보를 하면서 공사대금 지급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여, 이에 따라 A가 이 사건 공사 현장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므로, 결국 이 사건 공사 중단에 대한 귀책사유는 B에게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이 사건 공사 중단에 대한 귀책사유가 A에게 있음을 전제로 피고가 보증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B의 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의하여 이를 인용한다.
2. 대상판결
도급계약에서 일정 기간마다 이미 행하여진 공사부분에 대하여 기성공사금 등의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정되어 있는데도 도급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지급하지 않아 수급인에게 당초 계약내용에 따른 선이행의무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 공평에 반하게 되는 경우, 수급인이 민법 제536조 제2항에 의하여 계속공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민법 제536조 제2항의 이른바 불안의 항변권을 발생시키는 사유에 관하여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 악화와 같이 채권자 측에 발생한 객관적·일반적 사정만이 이에 해당한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특히 상당한 기간에 걸쳐 공사를 수행하는 도급계약에서 일정 기간마다 이미 행하여진 공사부분에 대하여 기성공사금 등의 이름으로 그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수급인의 일회적인 급부가 통상 선이행되어야 하는 일반적인 도급계약에서와는 달리 위와 같은 공사대금의 순차적인 지급이 수급인의 장래의 원만한 이행을 보장하는 것으로 전제된 측면도 있다고 할 것이어서, 도급인이 계약 체결 후에 위와 같은 약정을 위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기성공사금을 지급하지 아니하고 이로 인하여 수급인이 공사를 계속해서 진행하더라도 그 공사내용에 따르는 공사금의 상당 부분을 약정대로 지급받을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게 되어서 수급인으로 하여금 당초의 계약내용에 따른 선이행의무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 공평에 반하게 되었다면, 비록 도급인에게 신용불안 등과 같은 사정이 없다고 하여도 수급인은 민법 제536조 제2항에 의하여 계속공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Ⅲ. 평석
1. 검토
쌍무계약의 경우에도, 선이행의무자는 원칙적으로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예외적으로,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한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불안의 항변권은, 공평의 원칙과 신의칙에 근거한 사정변경의 원칙의 구체적 적용의 일례라 할 것이다.
제536조 제2항 소정의 선이행의무자의 불안의 항변권을 발생시키는 사유는,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악화와 같은 상대방(후이행의무자)의 객관적·일반적 사정변경만을 의미한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하여야 하는지 여부가 의문이다.
독일의 경우, 불안의 항변권은 후이행의무자의 재산상태가 본질적으로 악화된 경우에 인정하고 있는데, 그 바탕은 행위기초의 상실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불안의 항변권의 발생사유인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한 현저한 사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판례는 계약 성립 후 상대방의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악화 등의 사정으로 반대급부를 이행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사정변경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당초의 계약 내용에 따른 선이행의무를 이행하게 하는 것이 공평의 관념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대판 2002. 9. 4. 2001다1386)고 함으로써 상대방의 재산상태가 본질적으로 악화된 경우에 한정하지 않는다. 그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판례는 당사자 쌍방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대판 1990. 11. 23. 90다카24335)라고 한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 판례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불안의 항변권의 행사를 긍정한다. 가령 ‘토지매수인·시공회사 및 신탁회사 간에 신탁방식에 의한 오피스텔 신축 및 분양사업에 관한 기본약정을 맺은 후 외환위기로 신탁회사가 사업자금 차입 곤란 등으로 공사선급금 등의 지급 확보책을 제시하지 못한 경우, 시공회사가 이를 이유로 자신의 선이행의무인 토지대금의 대여 및 지급보증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대판 2003. 5. 16. 2002다2423)고 하며, ‘계속적 거래관계에 있어서 재화나 용역을 먼저 공급한 후 일정 기간마다 거래대금을 정산하여 일정 기일 후에 지급받기로 약정한 경우에 공급자가 선이행의 자기 채무를 이행하고 이미 정산이 완료되어 이행기가 지난 전기의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였거나 후이행의 상대방의 채무가 아직 이행기가 되지 아니하였지만 이행기의 이행이 현저히 불안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536조 제2항 및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공급자는 이미 이행기가 지난 전기의 대금을 지급받을 때 또는 전기에 대한 상대방의 이행기 미도래 채무의 이행불안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선이행의무가 있는 다음 기간의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대판 2002. 9. 4. 2001다1386)고 한다.
또한 ‘매매 목적 부동산에 처분금지가처분등기와 소유권말소예고등기가 기입되어 있는 경우에는 매도인은 이와 같은 등기를 말소하여 완전한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상 선이행의무를 부담하고 있는데 그와 대가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채무가 아직 이행기에 이르지 아니하였지만 이행기의 이행이 현저히 불투명하게 된 경우에는 민법 제536조 제2항 및 신의칙에 의하여 그 당사자에게 반대급부의 이행이 확실하여 질 때까지 선이행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대판 1999. 7. 9. 98다13754·13761)고 하며, ‘법령상의 제한 때문에 매매목적 토지를 당초에 지정한 중고자동차 매매시장의 용도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계약목적달성이 불가능하고 장래에도 불가능한 경우에 토지매수인은 매매대금의 선지급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대판 1997. 7. 25. 97다5541)고 한다.
나아가, ‘계속적 임가공거래에 있어서 변제기가 지난 기간의 임가공비를 지급받지 못하였고 정산완료 후 변제기 미도래의 임가공비에 대한 지급보장수단이 없다는 이유로 불안의 항변권을 긍정하기도 하고’(대판 1995. 2. 28. 93다53887), ‘구상권자에 대하여 파산이 선고된 후에 사전구상권을 행사하는 경우, 구상금채무의 보증인은 민법 제536조 제2항을 유추 적용하여 사전구상에 대한 보증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대판 2002. 11. 26. 2001다833)고 한다.
2. 대상판결의 의의
도급계약의 경우, 도급인의 보수 지급시기는 당사자 사이의 약정·관습이 없는 한 후급이 원칙이다(제665조·제656조 제2항). 이 사건의 경우, B의 A에 대한 공사대금 지급의무는 후이행의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제536조 제2항은 공평의 관념에 근거한 양당사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기능을 갖는다 할 것이어서, B에게 신용불안 등과 같은 객관적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A에게 이를 허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B의 기성공사금 지급의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A는 계속공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대상판결의 태도는 제536조 제2항의 법리에 비춰볼 때 정당하다.

/한삼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saminh@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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