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수원을 수료하여 바로 변호사가 되었기에 ‘전관예우’에 대해 잘 모른다. 운 좋은 어떤 날 재판장님이 친절하게 절차를 진행해주시면 기쁘고, 운 나쁜 어느 날 재판장님이 호통을 치거나 이해 안 되는 사유로 뭐라 하시면 속상한 정도랄까.
2013년 5월 23일 오후 2시에, 대한변협에서는 ‘전관예우 근절 대책마련 토론회’를 열었었고, ‘전관예우’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발표한 두 분의 발표자와 국회의원, 대법원 판사님, 법무부 검사님, 로스쿨 교수님, 법과대학 교수님, 개업변호사님, 기자님 등이 토론자로 의견을 교환하였다.
예전에는 소위 ‘전관’변호사들이 마지막 근무지 앞에 개인 사무실을 열고 1, 2년 사건을 싹쓸이 하고 그 수명을 다하는 형식이었지만, 소위 ‘전관예우 금지법’이 발효된 이후에는 양태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우선, 법원이나 검찰을 막 퇴직한 변호사님들이 개인 사무실을 여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형 로펌으로 직행하는 케이스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거대한 로펌의 그늘 속에서 인맥과 학연을 찾아 전화 등으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그 해결방식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로펌이 권력화하고, 비단 법조인 뿐 아니라 정치, 경제 분야의 다양한 인사들이 로펌에 안착하여 새로운 전관포트폴리오를 자랑하는가 하면, 일정 기간 거금을 긁어 모은 뒤 다시 공직사회로 돌아가는 소위 ‘회전문 인사’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토론회 1세션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누가 멋쩍게 책 한권을 내민다. 한국일보 법조팀 기자 7명이 심층 분석한 ‘전관예우 비밀해제’. 막내 이성택 기자가 수줍게 건넨 그 책에는 ‘전관예우가 과연 존재하는지’부터 ‘전관이 어떻게 살아남고’, 현재 대한민국이 어떻게 ‘로펌 공화국이 되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러한 ‘전관리턴 사회의 해법이 과연 무엇인지’까지가 총 망라되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조커 변호사’가 무엇인지, ‘전관의 약발이 먹히는 시기’가 과연 언제까지인지, 3조원 법률시장에서 몇몇 대형로펌이 그 절반을 가져가는 구조가 어떻게 가능한지, 특히 ‘현직에 있을 때 기업에 창을 겨누던 경제 관료들이 퇴직 후에는 로펌에 들어가서 오히려 기업의 방패 역할을 하며 기업과 친정 부처 사이에 오작교를 놓는 방법’이 무엇인지까지 예시와 함께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토론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부끄럽고 신기한(?) 한국판 전관예우의 진화론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날 토론회가 끝나고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법원과 검찰의 입장은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기보다는 ‘전관예우가 존재한다는 인식, 특히 그 영향력에 대한 환상 내지는 미신’이 문제라는 쪽으로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전관’이 문제가 아니라 ‘학연, 지연, 연수원 동기’와 같은 ‘인연 문화’가 더 문제라거나, 오히려 요즘에는 ‘전관 학대’가 성행한다는 푸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얼굴을 아는 사람, 같이 공부하고 시간을 보냈던 사람, 그리고 일면식도 없지만 같은 학교,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말 한마디에서 생겨나는 끈끈한 동류의식 같은 것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고 특히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그와 같은 본성 덕분에 ‘내편’, ‘니편’이 갈리면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전관예우’라고 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사라질 수 있을지 참으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전관예우의 현실’이 무엇인지, 실제 ‘전관예우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그것의 존재나 그것이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에 ‘사법 불신’이 생겨나고 ‘무언가 손해 보는듯한 억울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존재여부도 불분명한 ‘전관예우’ 때문에 내가 어떤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인식도 못하지만 막연하게 무언가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전관 예우 비밀 해제’를 통해 해답을 찾아보기 바란다.

/노영희 변호사·변협 수석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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