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A조 소속 연수생들에게,
주말은 잘들 보냈으리라 믿습니다. 언젠가 한 여대생의 형사법정방청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중 ‘범죄를 저지른 나쁜 사람과 피해자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형사법정에서 피고인에게도 피고인을 걱정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지금도 인상깊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법정에서, 도대체 왜 이러한 재판제도가 필요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을 던져 보아 주기 바랍니다. 재판을 도대체 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다보면 여러분들이 수료 후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연수원 2년 과정 중 1개월여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러분들의 사법시험 합격 티켓은 자유이용권이 아니라, 입장만 할 수 있는 티켓입니다. 인생이라는 놀이동산에는 자유이용권이 없습니다. 입장권만 있을 뿐이지요. 사법연수원 수료 후의 자신의 인생을 미리 설계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사법연수원에서 백지인 도화지를 받은 상태입니다. 2년간 그려야 할 그림은 단순하고, 몇시간 고민해서 그릴 수 있는 그런 그림이 아닙니다. 2년간 치밀하게 구성하여 완성을 해야 하는 어려운 그림입니다. 물론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여러분 스스로 그려 내야만 하는 그림입니다. 단시간 내에 절대로 그림을 완성하려 하지 말기 바랍니다.
다 그린 그림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평생 동안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차근차근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잔소리가 되겠지요? 저의 이 말이 여러분 모두에게 너무나도 불필요한 잔소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4월 한달도 활기차게 지내기를 바라면서,
2007. 4. 1. 지도교수로부터.”

지난 2007년도 3월에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조원들에게 입소 1년차 초반에 이루어지는 법정 방청시간을 앞두고 이메일로 보내 주었던 글입니다. 새내기 선생이 새내기 연수생들에게 보내 주었던 글인데, 6년이 지나 새삼스레 읽어보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저로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조원들이 이 글을 읽고 공연히 번잡한 마음이나 가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화살이 시위를 떠났으니 어쩌겠습니까. 이제 사회를 떠받치는 허리의 역할을 하면서 고군분투하는 어엿한 법조인들에게 이런 엉뚱한 글을 써보냈다니 새내기는 새내기였던 모양입니다.
2년여 동안 사법연수원에서 사법연수생들이 입소하였을 때와 수료할 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얼마나 변모된 모습이 나타날까 하는 마음에 자못 설레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당시 나 역시 품고 있던 소망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 사법연수생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여지껏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어떻게 교육이라는 영역에 녹여 전달해 낼 수 있을까. 내가 범했고, 또 범하고 있는 무수한 오류를 잘 골라내어 연수생들만의 순수한 세계를 만들고 있겠지. 그 멋진 세계를 차근차근 건설하면서.’
사법연수생들과 생활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기꺼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순간은, 저마다 입소 당시 가슴에 묻어 두었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얼굴에 나타나는 자책감, 좌절감, 때로는 분노와 마주할 때였습니다. 어떠한 말로도, 어떠한 행동으로도 도움이 되게 해 줄 수 없는 상황.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재를 기르고, 함께 교유할 수 있다는 즐거움의 대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대가를 치를 만한 역량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그나마 함께 한 마지막 기수, 1년차만 함께 한 후배들에게는(꼬박 2년을 함께 한 연수생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자신 있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제가 연수원을 떠남으로써 저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 후임자로 오셔서 나머지 1년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사실, 증명이 필요 없는 사실로서 말입니다. 스승으로서 대단히 뻔뻔스러운 말이겠지만, 지금도 저 스스로는 그것을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잠을 잘 때 기억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꿈을 안 꾸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꿈은 꿀 수 있고, 꿈을 기대하면서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항상 꿈을 꾸고, 때로는 잠 속에서 나타나는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나는 꿈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나가 버린 꿈이라도 추억이라는 디렉토리에 차곡차곡 쌓아, 혹시라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들 때 언제라도 꺼내본 후 다시 꿈을 품고 또 하루를 새롭게, 새롭게 보내시기를 감히 소망해 봅니다.

/김정원 헌법재판소 선임부장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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