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고향에 만년설이 덮혀 있었는데 40년 만에 고향에 찾아갔더니 산에 눈이 다 녹고 없어졌는데 토박이로 살던 친구는 산에 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40년 만에 찾아 온 친구가 눈덮힌 산을 이야기 하니 그제서야 그 산이 과거에는 눈이 하얗게 덮혀 있었던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이를 ‘풍경기억상실’이라고 한다. 매일 보던 사람은 어제와 오늘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모두 사라져버려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풍경을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어떤 풍경이 우리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될까.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하고 있을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내가 보고 있는 게 보는 게 아니고 내가 아는 게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할 일도 태산인데 살면서 시계바늘을 과거로도 미래로도 자꾸 돌려봐야 하나.
얼마 전 한 유명한 스타 강사가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한순간 그가 했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그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많았으나 그가 그동안 쏟아낸 독설로 지친 마음들과 그가 잊어버린 초심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에 안타까움은 묻혀버렸다.
그 스타강사는 ‘나’라는 풍경기억상실에 걸렸던 것은 아닐까. 그 강사가 이야기하던 증평의 한 소녀가 어느새 자라 한번에 3000만원 받는 스타 강사가 되고 나니 그 강사 마음 속에 있던 ‘초심’과 ‘진심’ ‘순수한 열정’이 있었던 자리가 어느새 녹아 없어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보다보면 조금씩 바뀌는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려운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의 작동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조금씩 변하는 온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냄비 속 개구리처럼 산 채로 삶기게 된다.
언젠가 어느 작가가 인문 고전 독서의 필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읽었다. 공교육이라는 세례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공장에서 일할 정도의 지식을 갖춘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라 그것을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 그대로 받아들인 우리나라 공교육 제도로는 진정한 지식인을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교육에서 접할 수 없는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적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진정한 지식은 인문 고전 독서를 통하여만 가능하다고 역설하였는데 이와도 맥락이 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매일 매일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를 작동하기 위하여는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가늠해봐야 하는데 이를 알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 시간을 넓혀 훑어 읽어내고 맥락을 짚어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이 그 변화를 직접 알아채기는 어려워 인간의 역사를, 자본주의 역사를, 돈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를, 문명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며 전체를 펼쳐봐야 오늘이 보이고 오늘의 변화가 보이고 가만히 있다 산 채로 삶기는 것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밖에는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지난해에도 그렇듯 목련이 피고 곧 있으면 벚꽃이 피고 나들이들을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여름을 맞을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무섭게 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변화에 적응해 큰 부를 쌓거나 큰 명성을 쌓고 싶은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해 쓸려 없어지거나 도태되는 것은 꼭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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