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목표를 잘 성취하는 사람은 남들보다 슬럼프에 잘 빠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슬럼프를 받아들이고 남들보다 슬럼프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사람이다.”
오래전 학부시절 누구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느 선배로부터 들은 조언이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법한 흔해빠진 말인 탓에 늘 잊고 지내다가도 나른해질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항상 머릿속의 방어기제처럼 문득 떠오른다. 여전히 그 조언을 해준 선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여전히 전북대 로스쿨 3학년의 새 학기는 다음 수업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들과 변호사시험을 대비한 각종 모의고사들로 더할 나위 없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지만, 3월 내내 기숙사를 나와 학교로 향하는 길에 아침햇살이 새삼 따뜻해졌음을 느끼는 순간 어김없이 들뜬 마음이 된다. 학교 앞에 다다르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법학도서관 앞은 온통 벚꽃나무로 가득한 탓에 봄이 되면 늘 계절의 따뜻함을 만끽하고, 흩날리는 벚꽃 잎을 손에 쥔 휴대전화에 담아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들뜬 마음을 다잡고 수험생이라는 긴장감에 도서관 책상에 앉아보지만 책이 온전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어느 공장에서 만들어졌을 빵조각을 입 속에 집어넣으며 밤늦도록 정석이니, 디딤돌이니 하는 책을 들여다보았던 것 마냥, 그때까지 살았던 시간이 다시 한번 지나간 지금도 여전히 어느 도서관 책상 한구석에 앉아 한끼 식사를 대신해 빵조각을 털어 넣고 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한 움큼 잡히는 옆구리 살을 보며 호밀빵을 집어드는 정도일까.
그때는 고민할 것도 없이 대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달리던 시절이었으니 - 지금은 우습게 느껴져도 - 여유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쓰여 있는지 궁금해 하는 정문을 가진 학교에 입학했으니 어찌 보면 목표달성이라 할 만한데.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는 착각은 선택지에 담아본 적도 없고, 특별히 일신의 안녕을 위해서 법을 공부하는 게 아닌데도 긴 시간을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봄의 여유를 즐기려면 의식 한켠에 죄책감을 잘 숨겨놓아야만 하는지 고민하며 손에 쥔 펜을 내려놓는다.
아저씨 소리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나이에 사춘기 소년 같은 고민으로 한껏 나른해질 즈음이면 앞선 조언이 떠오른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순간에 스스로의 나약함에 실망하는 따위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선배의 조언은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해준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다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전공을 바꿔가면서 로스쿨 입학을 마음먹은 건 법이라는 도구로 사회를 바라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3학년이 되어 이제 졸업을 맞이해야 하는 지금도 여전히 눈앞은 짙은 안개 속처럼 뿌옇다. 따뜻한 봄날에 도서관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깨어있는 정신을 가지고서도 눈앞이 흐려 잘못된 길을 선택하지 않도록 2년 전에 큰맘 먹고 새로 구입한 법이라는 안경을 깨끗이 닦아내기 위해서이다.
안경이 투명해질 즈음이면 옆에 앉아 묵묵히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다른 많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안녕에 미약하나마 일조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봄을 타는 자신을 새삼스럽게 깨닫고는 슬며시 웃는다. 다시 슬럼프에 빠지는 게 내일일지 모레일지 어쩌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다음번일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자리에 앉아 눈으로는 법서 위의 글자를 쫓고 머리는 활자들의 의미를 판단하며, 붙잡은 펜을 다시 고쳐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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