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바다의 봄 전령은 알이 통통하게 찬 주꾸미다. 평상시엔 낙지에 치여 ‘쪽’도 못쓰던 놈이 요맘때가 되면 짧은 다리 곧추세우며 폼을 잡는다. 딱 한철이지만 톡톡 씹히는 ‘알’덕을 톡톡하게 보는 게다.
문어, 낙지, 주꾸미로 이어지는 ‘민대머리 해산물 삼총사’. 사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도 있다. “주꾸미는 문어 새끼냐? 아니면 낙지 동생이냐?” 답은 이렇다. 주꾸미는 주꾸미고, 낙지는 낙지일 뿐이다. 똑같은 문어과 해산물에 다리(발)수 8개도 같지만 부자(父子)나 형제 관계는 아니다.
평상시엔 민대머리 삼총사 중 주꾸미의 매력이 가장 떨어진다. 문어처럼 덩치가 큰 것도, 낙지처럼 다리가 늘씬한 것도 아니다. 작은 몸집에 숏다리다. 특히 맛에 있어선 듬직함으로 요약될 문어의 꽉 찬 맛과 거리가 있다. 야들야들 척척 감기는 낙지의 애교 맛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그런데 요맘때 주꾸미는 오독오독 알 씹는 식감을 앞세워 ‘민대머리 삼총사’의 대표 자리에 등극한다. 왕초 문어나 형님 낙지 둘 다 “막내 주꾸미 귀엽다”며 뒤로 나앉아 주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겨우내 찬 물에서 다진 몸통 살의 쫄깃함과 봄기운을 듬뿍 담은 빨판의 힘은 문어와 낙지의 흐느적거림을 훨씬 능가한다.
요즘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보통 살아있는 것 1㎏에 2만원선. 큰 것은 6마리, 작은 것은 12~13마리 가량이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 알박이는 아니다. 값은 국산이 5000원가량 비싸다. 국산인지 수입인지 구별하는 건 전문가도 어렵다고 한다. 수입물량이 70%에 달하고 원산지 표시 품목도 아니니 국내산만을 고집하지 말라고 한다.
알 찬 주꾸미는 평상시처럼 뻘겋게 볶아 먹을 일은 아니다. 낙지연포탕이나 샤브샤브처럼 맑은 국물에 익혀먹는 게 좋다. 다리부분만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몸통은 푹 읽혀서 초간장에 찍어먹는 방법도 있다. 먹통을 제거하지 않으면 국물이 금방 검게 변하는데 일부러 먹통을 남겨 ‘먹물라면’을 끓여 먹는 것도 재미나다.
주꾸미전문점은 물론 전국 방방곳곳의 낙지전문점에서도 이맘때면 알 찬 주꾸미 메뉴를 내놓는다. 살랑살랑 봄 바닷바람의 쐬며 현지에서 맛보면 최상이겠지만 굳이 자동차를 몰고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산지라고 값이 헐한 것도 아니므로 편안하게 근처에서 직장동료나 가족과 함께 주꾸미를 즐기며 봄날의 나른함을 달래는 게 훨씬 낫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