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면서
미술저작물이나 건축저작물과 같이 일품저작물인 경우에는 이에 대한 저작권과 소유권이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양 권리는 기본적으로 독립적이고 대등한 권리이므로, 양 권리가 충돌하는 경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관한 첫 사건이 발생했다. 이하에서는 간략하게 사안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2. 사안의 개요
1) 사실 개요
본 건은 벽화 형식의 미술저작물을 주문 의뢰한 소유자(정부)가 저작자로부터 저작물을 인도받은 후, 저작자와 일언반구의 협의도 없이 저작물을 완전히 폐기한 사안이다. 본 사안에 관하여 저작자의 동일성유지권과 인격권 침해여부가 쟁점이라고 보이는데, 본고에서는 동일성유지권 침해 부분에 대해서만 다룬다.

2) 판결 요지
피고가 이 사건 벽화를 떼어낸 후 소각하여 폐기한 것은 이 사건 벽화의 소유권자로서의 권능을 행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가 동일성유지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즉 원고가 저작물 원본에 대한 소유권을 피고에 양도하고 이에 대한 대가도 지급 받은 이상, 그 저작물이 화체된 유형물의 소유권자인 피고의 그 유형물 자체에 대한 처분행위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권법상 동일성유지권이 보호하는 ‘저작물의 동일성’은 저작물이 화체된 유형물 자체의 존재나 귀속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저작물의 내용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만일 저작인격권자가 저작물 원본의 소유권 양도 후에도 동일성유지권을 유보하고 소유권의 행사에 대하여 언제라도 이를 추급할 수 있게 한다면, 저작물의 소유권자로 하여금 저작물 보유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과도한 부담을 갖게 하여 오히려 저작물의 원활한 유통을 저해함으로써 저작권자의 권리를 해할 우려도 있다.
그리고 피고가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손상한 행위, 절단한 행위, 방치하여 추가로 손상한 행위는 개별적으로 나누어 보면 동일성유지권 침해 행위를 구성할 여지도 있으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궁극적인 폐기행위를 저작인격권의 침해로 볼 수 없는 이상 위 손상, 절단 등의 행위는 폐기를 위한 전 단계 행위로서 그 폐기행위에 흡수되어 별도의 저작인격권 침해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정 형태의 저작물에 대하여는 소유권자에 대한 저작자의 권리를 보장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는 쌍방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원고 주장처럼 쌍방 이익의 비교형량을 통한 현행법의 해석론으로 이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원고의 주장은 현행 저작권법에 대한 해석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베른협약 제6조의 2의 저작물에 대한 ‘기타의 침해’에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작품의 철거행위가 포함된다는 원고의 주장을 인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고, 위 협약의 규정이 직접 이 사건에 적용된다고 볼 수도 없다(위 협약에서는 저작인격권의 보호를 ‘보호가 주장되는 국가’의 입법에 맡기고 있다).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3. 평석
1) 동일성유지권의 의미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에는 저작권과 관련된 모든 가치내용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저작권법 규정을 통틀어서 보면, 우리 저작권법이 예정하고 있는 질서 중의 하나는 저작물의 포괄적인 금지규정을 통해 저작자가 창작한 저작물이 변경되지 않은 상태로 저작자의 동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전달되도록 하여 저작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저작물 변경금지는 저작물의 이용허락을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저작권법상 어떠한 권리도 취득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저작물 변경금지의 명제는 결국 저작물에 대해서 소유권을 취득한 사람도 저작물을 변경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저작물의 포괄적인 변경금지는 우리 저작권법 제13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는 ‘동일성유지권’조항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동일성유지권은 표현 그대로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의 동일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의미보다 저작자 이외의 자가 저작물을 변경, 훼손, 손상시키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즉 동일성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하여 부작위를 명하는 소극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저작자의 인격, 개성, 사상 등이 투영되어 있는 저작물을 그대로 보존해서 동시대의 사람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전하고자 하는 저작자의 욕망과 소유한 저작물에 대해서 기호나 관심이 변해서 저작물을 변경 내지 파괴하고자 하는 소유자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창작자의 저작물의 동일성을 계속해서 유지시켜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은 저작권법이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유체물인 소유물을 법률의 범위 내에서 사용, 수익, 처분하려는 권리는 민법이 소유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저작권과 소유권은 서로 등가적, 독립적, 병렬적 권리이기 때문에 양 권리의 충돌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2) 본사안의 특성
소유권 행사와 관련하여 : 본 사건의 특성으로서 폐기의 주체가 소유자로서의 정부라는 점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정부가 국가재산을 스스로 폐기하였다. 또한, 소유권 행사로서의 정부의 폐기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판결문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벽화의 색조가 어둡고, 내용이 난해하며,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곤란하며, 민중화처럼 보여 공공장소인 역사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등 다소 정치적인 판단 내지 문화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작물 설치와 폐기 사이에는 불과 2년 남짓의 기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리고 폐기절차를 보더라도 저작자에게 일체 연락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였고, 여론조사 내지 전문가 회의라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친 후에 저작물의 훼손이 발행하는 박리의 형식으로 저작물을 벽으로부터 떼어낸 후, 이 저작물을 결국 소각해버려 완전히 저작물의 존재를 없애버렸다는 점이다. 아마도 소각해버린 이유는 소유권 행사라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 아닐까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다. 소유자로서의 정부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갤러리라든지 미술품을 애호하는 개인의 취향의 변화에 따른 소유권 행사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저작인격권의 실질적 내용 : 원고는 우선 저작인격권 침해에 대한 구제와 예비적으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저자의 일반적 인격권이 침해당했다는 것은 저자의 성명이나 초상, 명예 등 저자의 일반적 인격권이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작인격권은 그 명칭 때문에 인격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은 저작인격권의 내용을 보면 모두 저작‘물’에 관한 권리이다. 저작인격권의 내용인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은 모두 저작물에 관한 권리이다. 마치 인격권인 것처럼 느껴지는 용어인 저작인격권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은 저작‘물’에 대한 권리이다. 우리 저작권법에서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저작인격권의 각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저작물에 대한 침해로 이루어져 있다. 저작물에 저작자 표시를 하지 않았다든지(성명표시권), 저작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저작물을 공표하였다든지(공표권), 또는 타인 저작물의 내용이나 제호 등 동일성을 훼손한 경우(동일성유지권)인데 모두 저작물에 대한 침해이다. 인격권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저작자가 아닌 저작물에 ‘대해서’ 침해한 경우를 의미한다. 이로서 저작자의 인격적 이익인 성명을 저작물에 표시하고자 하는 것, 저작물의 공표 여부를 결정할 권리, 끝까지 창작의 동일성을 저작물에 유지하고 싶은 저작자의 의사 등이 침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강학상 저작물에 화체된 저작자의 정신적 내지 인격적 이익이라고 하고, 이를 저작권법에서 저작인격권이라는 형태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4. 마치면서
대상사건을 통해서 저작자의 동일성유지권을 위협하는 것 중에 가장 위협적인 것이 아마도 소유권일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든다. 소유권은 일반인의 법 감정에도 가장 부합하는 권리이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가장 친숙한 권리이다. 따라서 합법적인 권리로서의 소유권과 일반인의 법 감정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소유권이야말로 저작자의 동일성유지권을 가장 강력하게 위협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대상사건과 같이 저작물의 소유권이 양도된 경우, 저작물에 관한 예술적 운명도 점유자 내지 소유자의 손에 맡겨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사건을 문화정책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전반적으로 저작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일부 저작물의 경우 세계적 수준에 있고, 최근 저작권이라든지 지적재산권에 관한 사회적, 국가적 관심이 제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저작권에 대한 사회전반적인 규범의식은 그렇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또한, 저작물은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문화의 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 저작물이 재산권으로서의 대상, 즉 소유권과 저작권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문화의 근간이 되는 창작물이기 때문에 단순히 소유자로서의 소유물의 폐기 행위가 합법적인 행위인가 여부를 따지기보다‘정당한’행위인가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더 상세한 내용은 본 평석문을 바탕으로 한 독립된 논문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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