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변호사로 첫발을 내딛을 그 무렵, 동기변호사들과의 모임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화제는 서툰 언행으로 판사님을 멘붕시킨 신참 변호사들의 법정 데뷔 에피소드 내지 일종의 무용담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국선변호인으로 최후변론을 감동적으로 마친 후 “이상 결심하겠습니다”라고 하여, “변호인께서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하시는군요”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받고 당황했다는 에피소드이다.
이제 변호사로 10년 넘게 재판을 받다 보니 내가 판사님을 당황시키는 경우는 드물어졌지만, 아직도 재판에 완전히 적응을 하지는 못하고 법정에 갈 때마다 긴장되고 소화가 안 된다. 첫 변론기일이면 항상 ‘이번엔 어떤 판사님을 만나게 될까’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법정을 들어서게 된다. 나는 아직 10년차 초보변호사다.
이하 내가 10여년간 변호사로 일하면서 당사자로 겪었거나 구경한 재미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천태만상 법정 풍경 가운데, 판사님들이 변호사들의 멘탈을 일순간에 붕괴시키는 비법들이라 할만한 경우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본다.
첫째, 가압류신청을 제출한 후에 피압류채권이 부존재함을 뒤늦게 알게 되어 부랴부랴 취하하였으나, 취하신청 접수 전에 이미 결정이 내려졌다는 이유로 채무자 및 제3채무자에게 가압류결정문을 송달하기. 다른 채권을 가압류함에 있어 밀행성이 보장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에 처하여, 과연 이런 상황에서의 가압류결정문의 송달은 누구를 위한 서비스일까 채권자 대리인을 고민과 사색에 빠지게 하는 ‘오버서비스’ 비법!
둘째, 원고대리인이 증인신문을 하면서 관련 자료 호증을 제시하여 스크린에 띄웠으나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여 증인이 안 보인다고 하자, (한자 정도 더 증인 쪽에 가까이 앉아 있다는 이유로) 피고 대리인에게 “해당 호증을 증인에게 가지고 가서 좀 보여주라” 하기. 일순간에 피고 대리인을 원고 대리인의 비서로 전락시키는 대략난감 비법.
셋째, 의뢰인을 위해 다소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타당성에 호소해가며 열심히 주장하는 대리인에게, 의뢰인 및 관계자들이 방청하는 가운데, “도대체 무슨 주장을 하시는 거냐? 소송을 이런 식으로 진행하시면 곤란하다”며 일침을 놓기. 뒤에서 지켜보는 의뢰인과 관계자들의 뜨거운 눈총에 뒤통수가 다 타버리고 마는, ‘남의 속 나는 모르겠다’ 비법.
넷째, 1심에서 조정의사 있는지 재차 삼차 확인받았으나 조정의사 없다고 거듭 밝히고 2년 조금 못 되는 긴 시간 다툰 끝에 힘들게 승소판결을 받은 사건의 항소심 1회 변론기일에 해맑은 눈빛으로 조정의사 있느냐고 다시 물어보기. 1심 승소시 고생했다며 감사하던 의뢰인이 순간 돌변하여 “대리인이 1심때부터 뭔가 재판진행을 잘못하여 2심 판사님이 다시 조정의사를 물어보시는 것 아닌가”라며 대리인을 이유 없이 원망하기 시작하고, 억울한 대리인은 ‘조정할거면 1심에서 했지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혼자 속으로 중얼중얼거리게 하고야 마는 ‘나는 조정전문판사다’ 비법.
다섯째, 항소심 종결될 무렵 반소를 제기하는 상대방에 대하여 소송절차를 지연시키는 실기한 공격방법이라고 항변하였고, 판사님 또한 상대방의 반소 제기에 원고는 동의하는지에 대하여 확인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거듭 부동의한다고 밝히자 판사님께서 그럼 그렇게 정리하자고 재차 삼차 확인을 한 후 변론종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판결문에서는 반소에 대한 판단과 함께 일부 인용하기. 너무 놀라 변론조서를 다시 열람 등사하여 보았으나, 변론조서의 어디에도 상대방의 뒤늦은 반소제기에 대해 우리가 다툰 흔적은 전혀 없는 ‘백지상태의 순수함’ 비법.
최근에 어떤 판사님은 노트북으로, 변론조서는 아니지만 변론상황을 요약정리하는 문건을 띄워놓고 실시간으로 키보드를 치면서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그 변론요약문건을 변론이 끝나는 순간에 출력해서 당사자에게 나누어 주기까지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반가워서 손으로 무릎을 딱 쳤다. 변론조서 띄워놓고 재판합시다!
사실 증인신문할 때는 신문조서에 이거 꼭 기재해 주십사 애드립을 하면서 진행할 수 있지만, 변론기일에 재판장님이 당사자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답하는 과정에서는 “재판장님께서 지금 저한테 질문하신 내용 그리고 제가 지금 답변한 내용을 변론조서에 꼭 기재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실제로 중요한 진행사항은 당연히 기재하므로 그런 확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재한 상태라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겠다.
다음으로 여섯째, … 이 글을 시작할 때 대략 열 가지 정도의 비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허락된 지면도 지면이거니와 내 방 창문 너머 저기 저 북쪽 법원건물에서 반짝 빛이 나는 것이 이 글을 그만 써야 할 듯싶다. 저 빛은 나에게 “이런 글 쓰기 전에 대리인으로서 재판준비는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살피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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