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코믹코드는 실상과 허상의 부조리와 전복
법은 더 요령껏 티 안나게 ‘한 놈’만 패온 게 아닐까
누구의 ‘법대로’가 진짜인가? 진짜 ‘법대로’는 있는가



2012년 4월, 파이시티 인허가 알선수재 혐의를 받던 전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이 “MB하고 직접 협조는 아니라도 내가 독자적으로 여론조사를 하고 했거든. 그래서 그 한 부분을 OO이가 협조를 한 게 있어”(인터넷 YTN, 2012년 4월 23일)라는 고백을 했다. 이 고백이 있은 직후, 당시 친박계 한 핵심 인사는 “그 돈 갖고 경선 결과를 조작하는 데 쓴 거 아니냐”(인터넷 국민일보, 2012년 4월 24일)고 분통을 터트렸다.
2012년 11월, 최시중은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2013년 1월, 대통령 이명박은 “투명하고 법과 원칙에 맞”(연합뉴스, 2013년 1월 29일)게 최시중을 특별사면했다. 그러자 대통령 당선인 박근혜는 “국민들이 법 적용이 불공정하다고 느끼거나 억울하게 나만 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안 될 것”(연합뉴스, 2013년 1월 29일)이라고 날선 비판을 했다.
최시중은 ‘법대로’ 실형선고를 받았고, ‘법대로’ 특별사면을 받았는데, ‘법대로’ 공정하게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도대체 누구의 ‘법대로’가 ‘진짜 법대로’일까? 아니, ‘진짜 법대로’라는 게 있긴 있는 걸까?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여론조사 대선 경선’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정말 “그 돈 갖고 경선 결과를 조작”했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법은 그 궁금증을 풀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온통 복마전 같은 불량한 세상 속에서 ‘주유소 습격사건’ 같은 불량한 영화나 보며 그저 허탈한 웃음을 터트릴 뿐이다.


전복되는 실상과 허상

‘주유소 습격사건’은 동네 건달 4인조가 한 애꿎은 주유소를 밤새 점거해 ‘그냥’ 난동을 부리는 불량한 영화다. 그냥 웃자고 만든 영화라지만, 그냥 웃음만 나오지는 않는 건 왜일까? 사장이 지배하는 주유소든 건달들에게 점거당한 주유소든, 말하자면 법치주의 세상이든 무법천지 세상이든,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을 어쩔 수 없이 언뜻언뜻 씁쓸하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들 4인조도 태생적 건달들은 아니었다. 돈이 없었던 유망한 야구선수 노마크, 음악 없이는 밥도 못 먹는 딴따라, 전위적(?)인 화가지망생 페인트, 거짓말을 모르는 무식한 무대포, 모두 실패자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있었던, 아니 최소한 그런 무법자 건달이 되지는 않았을 청년들이었다.
이 영화의 코믹 코드는 실상과 허상의 부조화와 그 전복에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눈치로 먹고 사는 주유소 알바 고교생 건빵은 겁이 많다. 그가 4인조에게 잡혀있는 힘겨운 시간에, 학교 짱 패거리들이 상납까지 받으러 찾아왔다. 그들도 얼떨결에 4인조의 ‘포로’가 된다.
무대포가 내실에서 그들을 지키고 있던 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짱과 건빵을 맞짱 뜨게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을 세상은 단 한 번도 시켜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무식한 무대포가 일을 저지른 것이다. 건빵이 위기를 모면해보려고 무대포에게 애걸복걸한다.
건빵: “저기요. (얜) 싸울 때 있잖아요, 형광등이고, 의자고, 뭐고, 닥치는 대로 휘두른다고요. 저, 진짜 못하겠거든요.”
무대포: “죽어두 해! 맨주먹으로 해!”
그 결과가 우리 모두를 허망하게 만든다. 짱은 요란하게 씩씩거리다 우연히 날린 건빵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져 버린다. 건빵은 자신의 돌주먹을 믿을 수 없어 신기한 듯 쥐어본다. 짱은 상상조차 못했던 물주먹이었다. 그 허당의 뒤를 양아치 용가리 형님이 봐줬을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허풍으로 가득 찬 주유소의 기득권 질서와 그 전복을 보며 마음껏 비웃을 수 있을까? 우리 사는 세상엔 맞짱 뜰 기회가 없어 그저 숨죽이며 살아가는 진짜 실력자는 없을까? 문어발 재벌과 전문 중소기업, 일류대학 출신자와 삼류대학 출신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과연 누가 있어 실력으로 맞짱 떠보라고 그들을 공평한 무대로 올려 보내줄까?
전복된 세상이 들춰내는 진실들
신질서가 지배하는 주유소를 들렀다 봉변을 당한 구질서의 수호자가 있다. 투캅스다. 평소에 주유소를 제집 드나들 듯 했지만 주유소가 점거당한 것은 눈치도 못 챈 채 기름만 양껏 넣고 떠나려 한다.
노마크: “6만2790원이요.”
경찰1: “(사장) 이 인간 이거 애들 교육 안 시키나?”
투캅스는 기름값 대신 어이없는 실소를 남기며 떠난다. 하지만 스쿠터를 타고 뒤쫓아 와 거머리처럼 기름값을 요구하는 노마크에게 투캅스는 진저리를 치며 돈을 내놓는다. 전복된 세상이 만든 새로운 질서의 승리다.
전복된 세상은 곳곳에서 고소한 진실을 드러낸다. 재벌 2세 애인을 믿고 안하무인이던 뺀질녀가 포로가 됐다. 그녀는 다른 포로들에게 화장빨, 성형빨을 의심받으면서도 도도하다. 무대포를 무식하다며 인간 취급도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끝말잇기 하나 이기지 못하고 옷을 하나씩 벗는 굴욕을 당한다. 뒤늦게 달려온 재벌2세 애인은 곤경에 처하자 제 몸밖에 모른다.
사장을 빼놓을 수 없다. 돈 없다는 소리가 너무 자연스러운 사장은 종이박스 안에 숨겨놓은 돈뭉치가 발견돼 곤욕을 치른다. 노마크는 전화기들을 때려 부순 뒤 무조건 고쳐놓으라고 억지를 부린다. 그 와중에 딴따라는 노래까지 시킨다. 사장은 노마크에게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받으면서 직원들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느꼈을까?

표적행패, ‘난 한 놈만 패!’
짱을 구하러 온 용가리 패거리도 코피가 터지고 포로가 된다. 알고 보니 살벌하다던 용가리도 동네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셈이다. 무대포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그들이 ‘한꺼번에 덮쳐버리자’고 속삭이는 걸 건빵이 듣는다. 건빵이 싹싹하게 무대포에게 언질을 준다.
건빵: “저기요. 필드에서 다구 붙을 때요, 여럿이서 한꺼번에 덤비면 어떻게 하세요?”
무대포: “백명이든 천명이든, 난 한 놈만 패!”
유명해진 이 대사를 듣고, 용가리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여럿이서 힘을 합쳐 한꺼번에 봉기하면 이 부당한 난국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로 ‘그 한 놈’이 될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노릇이다. 역사적으로 부당한 권력일수록 ‘앞에 나서는 한 놈’만 패며 그렇게 지배했다.
법은 더 요령껏 티 안 나게(?) ‘한 놈만 패’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법이 그렇게 한 놈만 패는 것을 우리는 표적수사라 부른다. 그걸 항변해봐야 부질없다. ‘불법의 평등은 인정할 수 없다’는 공자님 말씀만 들을 것이다. 수사 받을 만한 피의자의 막무가내 항변을 막는 당연한 법리지만, 표적수사를 정당화하는 황당한 법리로 변신하면 난감할 뿐이다.
페인트는 주유소 사장이 정권 바뀔 때마다 보기 좋게 걸어놓던 정권구호 액자들을 보며 분노한다. 딴따라는 예기치 않게 노래실력을 발휘한 용가리들에게 주유소에 들른 엔터관계자가 명함을 건네는 것을 보며 씁쓸해한다. 주유소를 무법천지로 만들어놓은 그들은 왜 세상의 법치주의 질서를 냉소하는 걸까?
새벽녘, 노마크는 시비가 붙었던 의리의 철가방들, 조직 양아치들, 그리고 출동한 경찰들에게까지 휘발유를 흠뻑 뿌려놓은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이겠다고 위협한다. 라이터를 넘겨받은 무대포는 ‘전부, 대가리 박어(!)’를 외친다. 4인조는 뺀질녀의 흰색 오픈카를 타고, 만세를 부르며 난장판이 된 주유소를 떠난다. 모범적인 관객들이 꽤나 불편해했던 반권선징악적 엔딩이다.
현실은 어떨까? 최시중은 검은색 에쿠스를 타고, (만세를 불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취재진으로 북새통이 된 서울구치소를 떠났다. 역시 모범적인 국민이 많이 불편해했던 반권선징악적 엔딩이다. 법치주의는 불량한 구질서를 맹목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어둠 속에 가려져있는 약자의 진실을 법치주의를 통해 담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에 대한 모두의 진정한 승복을 가능케 할 것이다.
wkimline@chollian.net


/김욱 서남대 교수
‘영화 속의 법과 이데올로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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