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칠 일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일들이 한꺼번에 생기면 마치 무슨 징조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개업할 무렵 축하선물로 받았던 가방이 얼마 전에 망가졌다. 받을 당시 생각으로는 꽤 비싸게 생각되었던 가죽가방인데 나사 하나가 사라져 잠금 장치가 분리되어 있는 모습도 그렇지만 온통 긁힌 상처투성이에 축 늘어진 모습이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중년은 넘어선 모습이다. 다시 그런 큰 가방을 사려니 앞으로 기록 잔뜩 넣은 가방 들고 다닐 일이 그렇게 많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 놈을 고쳐 쓰면서 변협에서 준 작은 가방을 함께 사용할까 고민 중이다.
걷는 것 빼고는 운동하고 담 쌓고 살다가 주변의 강권에 헬스 클럽에 등록하고,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자며 트레이너 지도 하에 유격훈련 같은 운동을 한 일주일 하고는 허리를 다쳐 7개월째 정말 얌전한 생활을 하고 있다. 운동하고는 다시 전처럼 담을 쌓았고, 가끔 침도 맞아가며 본의 아니게 쉬는 시간도 많아졌다. 허리는 가방과 달리 바꿀 수가 없으니 그저 낫기만 기다리며 얌전히 쉴 수밖에 없다.
문득 생각해보면 이런 사소한 일들이 나에게 뭔가 내 생활을 바꾸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려주는 징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선배분들에 비하면야 길게 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정신없이 사건만 바라보고 8년째 변호사를 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일도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아깝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불안감도 들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수년 전부터 가끔 그런 느낌이 들어 ‘내려놓으라’든지 ‘잘 놀라’든지 하는 책도 사 보았지만 읽을 때뿐이고 복잡한 사건 하나 오면 금방 다 잊고 정신없이 달릴 뿐이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허리를 다친 효과는 좀 더 강하고 길게 가는 것 같다.
사실 변호사 업무만 하며 20~30년간 한 우물 파는 식으로 사는 것은 좀 지루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경제적 필요조차 줄어들면 그런 지루함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곁눈질을 하거나 같은 길을 가더라도 다른 리듬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런 저런 마디가 생기게 되고 마디마디를 전혀 다른 즐거움이나 수고로움으로 채운다면 나름 만족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 마디는 성격이나 운에 따라 모습이 다르겠지만 변화의 징조가 보일 때 스스로 잘 선택하고 준비하면 그 다음 마디가 그래도 조금은 더 즐겁고 덜 후회스러운 기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마음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다짐처럼 조금 덜 일하고, 잘 쉬고, 좀 더 성질대로 살고, 조금 더 나누며 사는 그런 마디를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늘 그렇듯이 이런 마음조차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바꾸어야 할 것 같은, 조금은 절박한 마음도 느낌도 생기는 것이, 그러지 않으면 가방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망가질 것 같아서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허리 부상의 후유증은 조금 더 갈 것 같으니 마음 다질 시간도 좀더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개인뿐 아니라 단체에도 그런 변화의 징조는 온다. 변호사들도 십수년 간 외부 압력 때문에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특히 수년 전부터는 변호사 수의 급격한 증가, 시장 개방 등으로 그 압박이 더욱 거세졌는데 금년에 직선제로 변협 협회장을 선출하면서 겪은 과정은 그런 압박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준 것 같다.
또 다소 시끄럽긴 했지만 회원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변호사 업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선거 결과도 지방변호사회 회장 출신이라는 점 외에도 전임 협회장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분이 대한변협을 대표하게 되는 변화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큰 흐름에서 보면 변화의 징조일 뿐이고 아직 변화의 내용은 뚜렷하지 않다는 느낌도 든다. 변화에 쓸려가고 있는지 변화를 끌고 가고 있는지도 불분명하지만, 그래도 새 협회장이 당장 할 일은 이번에 들려왔던 그 많은 약속과 요구들 가운데 다른 후보자들이 전했던 회원들의 바람까지 잘 새겨 담아 변화의 방향을 잡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몇 달 동안 시끄럽게 치렀던 홍역이 헛되지 않게. 그리고 다음 2년이 좀 더 즐겁고 만족스러운 시간이 되도록.


-김치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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