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7. 17. 선고 2011가합56847판결(확정)

I. 사안의 개요

원고는 1973년경 출판된 한자 교재인 ‘자원도해 국제실용한자명해’(이하 ‘원고의 책자’라 한다)의 저자로서, 1973년 12월 10일 위 책자에 대한 저작권을 등록하였다. 원고의 책자 중 ‘부수자의 도설(圖說)’ 부분에는 한자 부수 214자 및 이에 병렬하여 각 대응되는 한자 부수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각 삽화(그 중 원고가 저작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별지 2 목록 ‘원고의 각 삽화’란 표시 삽화 총 82자를 통틀어 이하 ‘원고의 각 삽화’로 지칭한다)가 포함되어 있다.
피고는 1991년 5월 20일 한자 교재인 ‘자원풀이 해법한자’를, 2006년 2월 15일 ‘한문한자 지도자 2·3급’ 및 ‘취업부수한자’(이하 위 세 개의 책자를 통틀어 ‘피고의 책자들’이라 한다)를 각 저술한 다음 도서출판 세진사, 도서출판 시대고시기획, 도서출판 학문사를 통하여 위 책자들을 각 발행·배포하였다.
피고의 책자들에는 한자 부수 214자 및 이에 병렬하여 각 대응되는 한자 부수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각 삽화(그 중 이 사건 각 삽화의 해당 한자 부수에 대응하는 별지 2 목록 ‘피고의 각 삽화’란 기재 삽화 총 82자를 이하 ‘피고의 각 삽화’로 지칭한다)가 각 포함되어 있다.

II. 법원의 판단

1. 원고의 각 삽화의 저작물성 인정 여부
서울중앙지방법원(이하 ‘법원’)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의 요건으로서의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어떠한 작품이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고 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어서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하여는 단지 저작물에 그 저작자 나름대로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되어 있고 다른 저작자의 기존의 작품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이면 충분하다(대법원 2005. 1. 27. 선고 2002도965 판결 등 참조). 다만 작품의 수준이 높아야 할 필요성은 없으나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표현, 즉 저작물 작성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은 창작성이 있는 저작물이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2도446 판결 등 참조)”는 대법원의 판시를 원용하면서, 아래의 그림 2와 같은 일부 한자 부수 삽화의 표현은 한자 부수 자체의 모양과 뜻, 허신의 설문해자 등 만인에게 공유되어 있는 한자 부수의 구성 원리 및 설명을 참조하여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저작물 작성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표현”이라고 판단하여 저작권법상 보호되는 저작물이라 볼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삽화를 제외한 원고의 나머지 각 삽화의 경우, 허신의 설문해자에 나온 설명을 참작하여 원고가 각 삽화의 구체적 형상, 크기, 화면 구성 등의 시각적 요소를 원고 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각 삽화에 원고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되어 있는 점이 인정되므로, 원고의 위 각 삽화는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인 미술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보았다.(아래의 순번 1과 같은 삽화)

2. 손해배상액의 산정
법원은 의거성 및 현저한 유사성을 인정하고 저작자인 원고의 복제권 및 배포권을 침해하였다는 점을 인정하였고, 나아가 성명표시가 되어 있지 않음을 이유로 하여 성명표시권 침해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 손해배상 범위를 정함에 있어 “피고가 이 사건 침해행위를 통하여 받은 이익은 피고가 피고의 책자들을 저술함으로써 각 출판사로부터 받은 인세 상당액으로서, ‘판매부수 × 1권당 소비자가격 × 책자의 전체 내용 중 피고의 이 사건 침해행위로 인한 삽화 부분의 기여도 × 판매부수에 대한 인세 비율’로 계산된다고 봄이 상당한데, 원고가 비록 기여도 부분의 고려를 간과하여 피고의 책자들 전체에 대한 인세 상당액을 구하고 있기는 하나, 그 기여도 부분의 입증이 단순히 해당 책자의 전체 분량 대비 침해 분량을 양적으로 환산하여 피고 책자들의 판매이익(이는 원고가 이 사건에서 구하는 피고의 인세 상당의 수익과 연관된다)에 대한 저작권 침해행위의 기여도를 정량화하는 것으로 충족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위 정량적 요인에 더하여 한자 교육 교재 중 한자 부수 부분에 대한 중요도, 나아가 피고의 책자들 중 이 사건 저작권 침해행위로 인한 한자 부분 삽화에 대한 중요도라는 구체적 특수성까지 고려한 정성적 요인을 참작하여 기여도가 산정되는 것이 상당하여 그 입증이 용이하다고 볼 수 없고, 인세 비율의 인정에 있어서도, 각각의 구체적 출판계약에 있어 계약당사자인 저작자와 출판사의 각 인지도, 마케팅 능력까지 인세 비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출판업계의 현실을 고려하여 볼 때 그 입증이 결코 용이하다고 볼 수 없다 할 것인바, 이 사건은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저작권법 제125조에 따른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하면서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저작권법 제125조 제1항에 의하여 원고의 손해액으로 추정되는 피고의 이익을 산정하되, 정확히 알 수 없는 항목 부분에 관하여는 보충적으로 저작권법 제126조를 유추 적용하였다.
III. 검토

1. 저작권법 제125조와 제126조의 관계
이 사건은 한편으로 삽화의 저작물성을 인정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지만, 평석의 대상으로 삼고자하는 부분은 저작권침해사건에서의 손해배상액의 산정에 대한 부분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다소 특이하게 저작권법 제125조와 제126조를 혼합하여 판단하고 있다.
종래 막연히 상당한 금액을 인정하던 유형에서 대부분 탈피하고 있음이 최근의 특징적 경향으로 제125조를 적용하기 위한 요건에 대한 판단을 모두해 주고난 후 그중 입증되지 않은 요건이 존재하므로 기존의 인정된 사실관계를 참작하여 제126조를 적용한다는 설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이규홍, 저작권법의 적용과 집행- 저작재산권침해에 대한 구제의 현황-, 2012. 11. 30. 자 한중지재권학회 발표문 14면). 이는 저작권법 제126조를 제125조의 보완적인 규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제125조는 저작권침해로 인한 손해액의 입증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증명의 곤란을 덜어줌으로써 저작권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입법취지로 하는 규정으로 특허법 제128조 제2항과 같은 취지의 규정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제125조는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한 특칙으로서 권리자의 손해액의 입증에 관한 부담을 경감하기 위하여 둔 규정이고 손해배상의 관념을 변경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오승종, 저작권법 2판, 박영사, 2011, 1278면)
한편 제126조는 법원이 손해발생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제125조의 규정에 의한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때에 변론의 전취지 및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으로 이 규정은 재산상 손해배상 청구에 있어서도 마치 위자료 산정의 경우처럼 법원이 재량으로 손해액을 산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저작권법 제125조의 규정에 의하여도 손해액의 입증이 어려운 경우 권리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이해된다(오승종, 위의 책, 1290면). 이러한 유형의 조문은 2000년 1월 28일 전면개정된 구 컴퓨터프르그램보호법(현재는 폐지되어 저작권법에 흡수되었음)에 처음 입법된 이래 특허법, 상표법, 디자인보호법,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 등에 입법된 조문으로 손해액 추정규정인 저작권법 제125조에 의한 손해액의 인정이 곤란한 경우에 법원이 변론의 전취지 등을 참작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조문이다

2. 사안의 경우
그런데 이 사건 판결은 제125조와 제126조를 택일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제125조 제1항에 의해서 손해액의 추정이 되는 부분은 제125조 제1항에 의해서 손해액을 인정하고, 손해의 항목이 명확하지 않은 손해에 대하여는 보충적으로 저작권법 제126조를 유추 적용하여 변론의 전취지 등에 의하여 추가로 손해액을 인정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물론 바로 제126조를 적용한 것은 아니므로 제125조와 제126조를 중첩적으로 적용한 것은 아니고, 제126조의 입법취지를 감안 그 손해액 계산방식을 유추하여 적용한 것이기는 하나, 기존의 법원의 선례를 찾기 어려운 선례를 제시하였다. 이 논리를 연장하면 침해자의 이익을 손해로 보는 제125조 제1항이나, 통상으로 받을 수 있는 사용료 상당을 손해액으로 보는 제125조 제2항 등 제125조의 손해액 추정규정에 의하여 손해액을 정한 후 추가적으로 제126조를 유추하여 손해액을 정하는 방식의 주장도 가능할 것으로 보여서 이론적으로 흥미로운 사건이다.

최승재 변호사·lawntech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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