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영국의 절대군주 헨리8세의 일대기를 다룬 미국드라마 ‘튜더스’시리즈를 본 후 전제군주의 무제한적 만행과 횡포에 역겨움을 느껴 이를 해소하고자 토마스 페인의 ‘상식’과 ‘인권’을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왕 한사람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하고, 왕의 욕망을 채우는 일은 무제한으로 허용되고, 종교까지 획일적으로 강요하며 국민의 목숨은 벌레보다 가치없게 취급당하고, 아무도 목숨을 걸지 않고는 왕에게 반대를 하기 어려운 전제군주제의 횡포를 보노라면 왕이라는 한 사람에게 저런 무제한의 권력을 남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던 인류의 어리석음에 오히려 개탄하게 된다.
토마스 페인의 ‘상식’만큼 절대 군주, 그중에서도 세습군주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책은 드물다. “어떻게 인간의 한 종류가 나머지 인간들 위에 높이 자리잡고 앉아 마치 새로운 종족인 듯 특별한 대우를 받아가면서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됐는지… 왕이 다스리는 국가는 악마가 우상숭배를 증진시키기 위해 내세운 발명품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었다.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위대하게 높이는 행위는 자연의 평등권이라는 측면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페인은 ‘상식’의 결론에서 “지금까지 왕관들을 썼던 모든 악당들보다는 정직한 보통 사람 한 명이 사회에 더 가치가 있다”고 했다. 답답했던 가슴이 이 한 구절만으로도 펑 뚫리는 효과가 있었다.
1776년 미국에서 팸플릿 형태로 발표된 토마스 페인의 ‘상식’은 미국독립운동 방향을 영국 군주제의 통치권 아래에서 왕에게 무엇을 바라는 방향이 아니라 영국과 완전 결별하고 독립된 헌법을 만들어 별도의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영국의 왕이 지배함은 상식이 아니고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수립이 상식이라고 주장한 50쪽 분량의 팸플릿이 미국민들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그 후 1791년과 1792년 발표된 페인의 ‘인권1부’와 ‘인권2부’는 프랑스혁명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씌어졌다. 보수주의 원조로 알려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기 위해 쓴 책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에 대한 반박으로 인권1부가 씌어졌고, 인권2부는 버크의 반론에 대한 재반박이다.
인권1부에서 페인은 프랑스 혁명의 정당성을 열렬히 옹호하고 1789년 프랑스 국민회의가 채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 규정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찬양하고 있다. 오랜 전제군주제와 귀족 특권계급 밑에서 신음해온 민중들이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도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모든 주권의 근원은 본질적으로 국민이다” 등의 선언과 함께 역사무대에 주인으로 등장한 것은 왕의 주권을 찬탈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국민의 권리였던 것을 회복한 것이었다. 최근 ‘레미제라블’ 영화에 등장하는 프랑스 혁명 후 왕정복고 시대의 인권이 후퇴된 상황에서 다시금 혁명의 물꼬를 트고자 하는 학생들의 바리케이드 저항장면은 바로 국민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투쟁이다.
페인은 ‘인권1부’에서 자연권과 시민권을 구분하고 있는데, 자연권은 국민의 주권, 개인적 자유권, 선거권, 언론의 자유, 혁명권이고, 시민권은 자연권에 근거한 것으로서 자유, 평등, 안전, 재산, 사회적 보호, 압제에 대한 항거를 그 내용으로 한다고 한다. 페인의 인권2부에서는 대중교육, 빈민구제, 노인연금, 실업구제, 누진적 소득세 징수, 재산권의 사회적 책임, 빈민층 보호등 오늘날의 사회적 입법에 해당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인권2부의 출판 후 그 영향을 두려워 한 영국정부에 의해 판금 조치와 함께 페인은 반란죄로 선고받고 죽을 때까지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페인은 영국인으로서 조국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위해 일했고, 동시대 사람들의 인식수준을 끌어올려 당시에는 상식이 아니었던 것을 상식으로 만들어나갔으며 미국과 프랑스를 왕래하며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양대혁명인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성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세계최초의 국제혁명가이다. 오늘날에도 그의 사상과 힘있는 주장을 읽어보면서 가슴이 뛰는 경험과 정의로움을 체험하고자 하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볼 만하다.
배금자 변호사 baesan0708@gmail.com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