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건강 관련 정보과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 ‘나는 괜찮은 걸까’ ‘어머, 이런 증상은 나도 있는데 그렇다면 나도 혹시?’ 이런 걱정을 누구나 한 번쯤 했을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10가지 증상 중에 7개 이상이면 이런 질환을 의심하라는 식의 테스트도 비껴가기 힘들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만 하는 고민이고 실제로 어떤 의료기관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구체적인 불편함과 마주 섰을 때이다. 또 넘쳐나는 의학지식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소개로 왔다며 훤칠하니 잘생긴 젊은 남자가 원장실로 들어왔을 때 그저 ‘발목이나 허리쯤을 삐끗해서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남자의 증상과 기왕력들을 듣고 치료를 시작하고 한주일 한주일이 지날 때마다 점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주신경 실신증이라는 병명을 진단받고 갑작스런 기절을 두 번 한 이후에 온갖 검사와 진찰, 투약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 한의원에 내원하기 전부터 혹은 내원한 이후에도 초음파와 심전도, 각종 부위의 CT촬영, 소화기 내시경 등을 두루두루 돌아가며 하고 있었다. 처음 2주 동안은 상담 내내 일주일간 다녔던 병원과 검사항목들을 체크하는 것으로 차트가 한 장 넘어갈 정도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검사와 상담을 병원을 바꿔가며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심계항진 증상으로 병원에 가서 심초음파를 받고 아무 이상 없다는 소견을 듣고서도 그 다음날 여전히 같은 증상이 있다면서 다른 병원에서 다시 심초음파를 받는 식이었다. 결국 발작성 OOOO이라는 병명을 듣고 나서야 심초음파와 심전도 검사는 멈추었다.

병원간의 진료기록이 어느 정도로 공유될 수 있는지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검사기록들이 모두 공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틈을 타서 그 남자가 두 달에 걸쳐 심전도를 5회 이상이나 하게 되었던 것이다.

변명 같지만, 나도 첫눈에 이 환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처럼 다른 선생님들도 초진환자가 심계항진을 호소했다면 이 환자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기보단 일단 심장초음파나 심전도검사 오더부터 내리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 부분이 주치의 제도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내가 주치의를 자처하고 치료기간을 일정정도 잡고서 격려하고 설득하면서 아직까지는 잘 치료해 나가고 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이 없거나 불안장애의 정도가 심해져 어느 한계를 넘어가면 아마도 이 환자는 “고진선처를 바랍니다” 라는 진료의뢰서와 함께 정신과로 전과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확신하거나 또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건강염려증’이 이 환자의 병명이다.

대체로 꼼꼼하고, 고집이 센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주위에 넘쳐나는 정보매체를 통해 습득한 지식을 활용하여 구체적이고 정확한 신체적 증상으로 호소했다. 웬만한 의학용어를 사용해도 거의 알아들을 정도로 반의사가 다 되어있는데다가 자신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 하루에 3번씩 혈압과 맥박수를 체크해서 일주일치의 기록을 가져온 적도 있다.

일단은 식은땀, 가슴뜀, 어지럼증 등 가벼운 증세를 너무 확대해석하여 심장병 등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고 이로 인해 불안해하거나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의학적 지식으로, 검사결과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오진이라고 여기거나 적절한 치료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것은 치료과정을 통해 차츰 진정시킬 수 있었다. 또 불안장애의 일종이라는 병식(病識)이 생겨서 이 병에서 저 병으로 갈아타는 증상도 덜해지고 있다.

건강염려증이라는 불안장애 증상이 6개월 이상 되면 사회생활 또는 경제활동을 하는 데 지장이 있게 되고 심하면 또 다른 안 좋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가정이 혹은 직장생활이 파탄 나기 전에 빠른 치료가 되길 바랄 뿐이다.

자신이 건강하다는 믿음, 그것은 어쩌면 모든 자신감의 시작일 것이다.
수많은 병원균과 나쁜 환경과 악질적인 스트레스에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버텨내고 있다. 그 근간에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변형시키며 조절하는 건강한 우리 몸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성선설처럼 우리 몸의 기본 상태는 ‘건강’이다. 질병은 병인(病因)뿐 아니라 그 안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몸의 노력까지를 포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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