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일반 상업영화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풍의 다큐영화를 보기 힘든 우리 현실에 비춰본다면 분명 그 시도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다큐영화?’ 별 생각 없이 다큐영화라고 했지만 이 영화의 장르구분이 사실 그렇게 만만한 건 아니다. 어쩌면 장르를 구분 짓는 순간 이 영화의 감상평을 웬만큼 끝낸 것일 수도 있다.
감독 김재환은 이 아리송한 문제와 관련해 “나는 분노로 인해 가슴이 따뜻해지는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만들었는데 배급사 대표는 호러 코미디라고 한다”(인터넷 스포츠경향, 2012년 10월 14일)며 난처한 입장을 호소했다. 그런데 ‘분노로 인해 가슴이 따뜻해지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을까? 있다 치더라도, 막상 영화 자막엔 ‘정산코미디’로 돼있으니 대충 그렇게 봐야 할 것 같다.
한 가지 더 난해한 문제가 있다. 이 영화는 한창 정치적 에너지가 넘치는 다음 대선 주자들이 활약하는 시점에 개봉됐다. 김재환은 시들시들 레임덕에 빠진 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반(反)시장’적 영화를 어떻게 이 시점에 개봉할 무모한 생각을 했을까?
김재환은 “현직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차기 대통령 선거 전에 다뤄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흘러간 옛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현실을 얘기하자는 거다. 지금 대선 후보들의 모습은 5년 전과 다를 것 같지만 패턴이 똑같다”(프레시안, 2012년 10월 18일)는 말로 자신의 의도를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 정치시계는 계속 멈춰있다는 건데, 설마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앞으로 5년 후에도? 일단 영화를 읽자.

최악의 각본과 최선의 연기
영화 ‘MB의 추억’의 주연은 MB다. 주연뿐만 아니라 기획·각본까지 모조리 MB로 돼있다. 더군다나 다른 일반 영화와는 달리 정동영, 이회창 등 조연들의 출연분량도 터무니없이 적다. 첫 주연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B는 기라성 같은 기성 주연배우들을 능가하는 명품연기를 보여줬다. 감독도 매우 만족했으리라 본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시시콜콜 얘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어디선가 봤음직한 내용인데다 설령 본 적이 없는 장면일지라도 이미 알고 있는 식상한 내용과 별반 다를 것도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다 거실에서 주방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거나, 아예 한 며칠, 심지어는 한 몇 달 보지 않다가 봐도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그런 드라마를 연상하면 된다.
줄거리가 형편없다고 이 영화가 형편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 형편없는 줄거리에 최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반전을 보여준다. 누가 보더라도(?) 이 영화의 기획과 각본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타고 난 배우임을 입증한 주연의 가공할 연기력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거저먹듯이 활용한 교차편집이 이 영화를 극적으로 살렸다고나 할까….

굳이 추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영화는 “우리가 강제한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거야”라는 나치 독일의 국민계몽선전부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과 함께 시작한다. ‘정치적 상황은 좋든 나쁘든 결국 국민이 원한 결과’라는 명제가 깔려있다. 정말일까? 우리가 자부심을 갖는 밝은 역사가 아닌 어두운 역사도 우리가 만들어왔단 말인가? 확인하려면 굳이 추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까지 더듬어야만 한다.
‘MB의 추억’은 바로 우리가 10년 목표 747(7% 경제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강국)을 원했고, MB는 그것을 공약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악착같이 상기시킨다. 그것도 부족해 영화 밖의 김재환은 “유권자는 탐욕스럽다. MB는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줬을 뿐이다”(프레시안, 2012년 10월 18일)고 염장까지 지른다.
1인칭 MB 시점의 내레이터: “정치는 이미지다. 국민은 정작 정책을 따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후보들은 유난히 재래시장을 사랑한다. 재래시장에서 상인들과 두 손을 부여잡고, 생필품을 사고, 서민 음식을 먹으며, 걱정스레 경기에 관한 말을 나눈다.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도 유권자는 많은데 왜 재래시장만 편애하는 걸까? 일종의 ‘서민 코스튬플레이’다. 우리 유권자들이 그런 모습을 소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광고를 촬영한 낙원동 식당 진짜 상인: “여기 있던 할머니는 연기자 할머니…, 주인이 아니고 여기 연기하시는 분이 와서 한 거예요.”
끊임없이 먹어대는 배고픈 MB(난 히딩크 이후 그렇게 배고픈 사람은 첨 봤다)와 욕인지 격려인지를 해대는 식당 할머니의 자기암시적 광고연기는 참 좋았다. 정동영, 이회창 등 조연들의 연기도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MB의 연기를 따라갈 순 없었다. 그는 오염된 해안 청소, 연탄 배달, 군부대 위문 등, 보통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힘든 연기도 척척 해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선거공약이란 무엇인가
상대후보 허경영: “전체 포털 동영상 접속순위가 제가 1위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0.4%가 말이 됩니까? 이번 대선은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선거에 승복할 수가 없어! 음~.”
카메오로 출연한 정치예능인 허경영(IQ 430?)은 이해할 수 없는(?) 대선결과와 관련해 애꿎은 선관위원장을 의심했다. 하지만 감독이 보기에(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문제의 근원은 선관위원장이 아니다. 의심컨대 문제의 근원은 유권자다.
내 생각엔 허경영은 이렇게 물어야 했다. “왜 나의 ‘결혼자금 1억원 지급(재혼 시 5000만원)’ 공약은 비웃고, MB의 ‘임기 내 주가지수 5000’ 공약엔 열광하는가?” 아마도 유권자들은 MB의 공약은 현실적이고, 허경영의 공약은 비현실적이라고 잠시 착각했던 듯하다. 그리고 MB처럼 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지 못하고 정치예능인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 패인일 수도 있다.
허경영에게 투표했다는 한 대학원생 유권자의 고지식한 주장이 뒷골을 때린다. 그는 “다들 네거티브 선거에 빠져 대선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을 때 허 후보만이 유일하게 정책선거로 승부했기 때문”(인터넷 서울신문, 2007년 12월 25일)에 허경영에게 투표했다고 꿋꿋하게 주장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정책선거의 달인 허경영은 이미지선거의 달인 MB에게 완패했다.

잘되는 사람 잘되게 하는 정치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 화려한 선거공약과 어이없는 집권현실을 전 방위적으로 대비하는 교차편집이 관객들을 사정없이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딱 한 번, MB의 선거공약과 집권현실이 완전 일치한 신기한 장면이 나온다.
MB: “나라가 할 일이 뭐 있겠어요? 잘되는 사람 잘되게 만들면 돼요!”
이른바 낙수효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낙수효과는 없었다. 영화는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는 괴벨스의 어록으로 마무리한다. 다시 한 번, 그의 악마적 통찰이 먹먹하게 우리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유세 중, MB는 전 정권에서 자신의 미래를 예지한 듯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신비롭게 예언했다.
MB: “약속한다. 뭘 해주겠다. 그렇게 약속한 걸 지난 5년간 잘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됐겠습니까?”
우리는 왜 주기적인 거짓약속의 노예로 살아가는가? 영화는 젊은 소극적 기권자에게 궁극적 책임을 지운다. 계몽적이긴 하지만 과학적인 결론은 아니다. 적극적 탐욕과 패권을 면책해주는 손쉬운 희생양처럼 보인다. 어쨌든,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몫만큼 역사의 멍에를 메고 ‘대의/민주주의’의 길을 힘겹게 걷고 있다. 명연을 펼친 주연 MB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줬다. 그렇더라도, 그 개운치 않은 눈웃음의 여운만은 이젠 좀 그만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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