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의분’이었습니다.
2008년 4월 총선이 끝난 직후 대통령께서는 미국으로 건너가 30개월 이상 된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안전한 먹거리를 바라던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저도 있었습니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국민을 위험하게 할 여지가 있는 30개월 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여러 나라들의 입장과는 달리 ‘위험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수입재협상을 논하는 것은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라며 시민들의 우려를 한낱 ‘괴담’으로 치부하는 정부의 자세를 보며 큰 상실감을 느낀 사람들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시민들에게 법적 근거도 없이(경찰 내부 운용지침만을 근거로) 물대포를 쏴대면서까지 지켜야 할 ‘국제관례’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었습니다. 마치 조선 전체를 청나라와의 전쟁으로 몰아가 백성들의 삶을 파탄내면서까지 당시 기득권층이 집착했던 ‘사대의 예’를 보는 것 같아 분노를 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거리의 시민들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을 보게 되었고 이분들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소속 변호사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민변에서 6개월간 인턴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 기간을 통해 ‘변호사라는 직분은 사회를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변호사가 될지 다른 진로를 모색할지 고민하던 제가 이 일을 계기로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으니, 2008년의 의분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입니다.
남들에 비해 건강이 좋지 않은 저로서는 로스쿨의 학업일정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위로해주고 같이 걱정해줬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어려운 순간을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종교를 가진 학우들끼리 모였던 신우회,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같은 주제를 놓고 고민하며 토론했던 인권법학회 그리고 모의재판경연대회 참여까지… 이곳에서 얻은 추억들은 제 마음 속에 평생 간직할 것입니다.
대한변협신문의 ‘로스쿨 통신’란에 지난 1년 동안 기고하게 된 것도 큰 영광이었습니다. 1년간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대한변협신문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로스쿨 통신’란을 통해 과분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변호사 집사님, 다른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시는 친척으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음은 물론, 한 로펌의 변호사님으로부터 ‘한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가 좋은 조언을 들었던 일도 있었고, 모 신문사 기자님과 제가 썼던 글에 대하여 전화로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대한변협신문에 글을 기고할 수 있었던 덕분입니다.
의분으로 시작했던 저의 로스쿨 여정은 비록 몸은 힘들지라도 마음만은 추억과 아름다운 순간들로 채워진 채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그의 자서전 말미에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다’고 쓰신 바 있습니다. 비록 그 분의 삶에 비해 3분의 1 조금 넘는 삶밖에 살지 않은 저이지만 로스쿨 3년의 생활을 돌이켜보니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을 잘 마무리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면 다시금 사회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또다시 분노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분노가 이끄는 삶 또한 추억과 기회로 승화될 수 있음을 알기에 오늘 하루도 즐거운 마음으로 제게 주어진 길을 가고자 합니다. 지난 1년간 제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월 4일부터 8일까지 있는 변호사시험을 잘 치르고 필드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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