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는 문화이다. 그 역사도 오래고 종류도 많다. 고대 중국에서는 선승들의 차 마시는 일이 깨달음과 직결되면서 차 문화는 1000년의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의 차 문화는 산사에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으나 대중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략 30년 안팎의 역사에 불과하다. 그런 까닭에 자연히 차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스타벅스’가 테이크아웃 커피를 선보인 지 10여년 만에 커피 시장은 날개를 달아 욱일승천의 기세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출근길에 오르는 직장인들, 점심 식사 후 근처의 좁은 가게에 모여 커피를 마시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커피 시장의 무서운 성장세를 읽을 수 있다.
요새 내담자와 소통을 하기 전에 커피 한잔을 나누는 것은 변호사 사무실의 일상 풍경이 되었다. 소통의 도구로서 커피는 맛도 맛이지만 향이 있어서 내담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브랜드 커피가 주는 상품의 신뢰성 또는 좁은 사무실 공간에서 ‘마실 거리’를 공유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 소통의 두려움을 가라앉힌다는 점에서 커피 한잔이 주는 효용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커피와 전통 차의 불꽃 튀는 경쟁에서 마치 법률시장의 무한경쟁을 보는 듯하다. 그동안 전통 차의 주된 고객은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는 중장년층과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추구하는 선승들이었다. 그런 이미지 탓에 바쁜 직장인들이나 젊은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서 전통 차 시장은 위축되었다.
흔히 전통 차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녹차·덖음 차, 중국에서 생산된 보이차·녹차·우롱차, 일본에서 녹차·말차 등을 말한다. 차의 종류는 색에 따라 녹차, 백차, 청차, 홍차, 황차, 흑차로 나뉘고, 또 채엽 시기에 따라 명전차, 우전차, 세작, 중작, 대작 등으로 나뉘고 있다. 하지만 차를 분류하는 가장 큰 기준은 뭐니 뭐니 해도 발효 정도에 따른다.
녹차는 불(不) 발효차이고, 우롱차는 반(半) 발효차이고, 보이차는 발효차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쓴맛, 떫은 맛, 단맛, 신맛, 짠맛 등 5개의 맛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보이차가 필자가 즐겨 마시는 차이다.
당나라의 유정량은 차의 덕을 열 가지(飮茶十德)로 밝혔다. 머리를 맑게 하고, 귀와 눈을 밝게 하고, 입맛을 돋우고 소화를 촉진시키며, 술을 깨게 하고, 피로를 풀어주고, 몸의 양기를 충만케 하고, 잠을 쫓아내고, 몸의 병기(病氣)를 덜어주고, 예의와 인의를 빛내게 하고, 끝으로 차는 도를 행하게 한다(以茶可行道)라고 말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다도의 달인이었다. 그가 제주도 유배시절 오로지 의지했던 것은 차와 시(詩)였다. 그는 다담(茶談)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자신과의 소통을 한 고결한 선비라 말할 수 있다.
변호사의 일상은 사건을 분석하고 선택하는 일의 연속이다. 언제나 머리 굴리고 헤아리며 법률전문가로서 그어놓은 선이 법률요건에 맞는지 안 맞는지 가늠해본다. 분석하고 선택하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변호사가 무엇입니까?”라고 자문해본다. “차나 마시게”라고 답한다. 나 자신을 위한 일종의 타임아웃이다. 타임아웃은 짧은 이탈로서 휴식이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깐의 변화를 의미한다. 소장, 준비서면, 사건의 추이 등 산적한 문제들을 뒤로 한 잠깐의 외출이다. 타임아웃은 행동치료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사용하는 행동수정법이지만 넒은 의미로 타임아웃은 내 영혼에게 휴식을 주는 잠깐 호흡을 고르는 쉼표이다.
“차나 한 잔 드시게(喫茶去)”라는 화두는 1200년 전 당나라 시대 조주 선사(778~ 897)가 어떤 수행승이 “불법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대답한 말이다.
차를 마시거나 도를 닦는 일 모두 사람의 삶이다. 문제는 차를 어떤 마음으로 마시는가 하는데 있다. 차를 마실 때 범부들은 온갖 망상과 잡념을 갖고 마신다. 과거, 현재, 미래의 온갖 세상사를 다 마신다. 변호사들도 자신의 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뢰인의 일까지 마신다. 그래서 조주 선사는 “차나 마시게”라고 말씀하셨다.
차는 개개인의 취향과 선호도가 있는 기호음료이나, 차를 마시는 그 마음이 문제이다. 사건에 대한 사량(思量) 분별을 쉬고 청정하고 텅 빈 마음으로 차의 맛과 향을 느끼면서 마신다면 그 청다(淸茶)의 유익함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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