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0다86112 판결

1. 대상판결

(1) 사건의 개요 및 경위
피고(재심원고, ‘피고’)의 실질적 대표자이던 소외 1 등이 소송의 상대방인 소외 2와 공모하여 개인적으로 10억원을 받기로 하고 제1심판결에 대한 피고의 항소를 취하하였다. 피고는 항소법원에 기일지정신청을 하여 항소취하의 효력을 다투었으나, 항소법원은 항소취하의 효력을 인정하고 소송종료선언(재심대상판결)을 하고 위 소송종료선언은 확정되었다. 그 후 피고는 소외 1과 소외 2에 대한 배임죄의 유죄확정판결을 받고 제2심법원에 재심의 소를 제기하였다. 재심법원은 비록 소외인들에 대한 유죄확정판결이 있으나 소외 1 등이 항소취하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것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기한 것으로 항소취하의 의사가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 이러한 항소취하행위는 유효하다는 이유로 재심청구를 기각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0. 9. 10. 선고 2009재나440 판결).

(2)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크게 두 가지의 점에 대하여 그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① 형사상 처벌을 받을 다른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아 상소취하를 하여 원심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도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5호의 ‘자백’에 준하여 재심사유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형사상 처벌을 받을 다른 사람의 행위’에는 당사자의 대리인이 범한 배임죄도 포함될 수 있으나, 이를 재심사유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리인이 문제된 소송행위와 관련하여 배임죄로 유죄확정판결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대리인의 배임행위에 소송상대방 또는 그 대리인이 통모하여 가담한 경우와 같이 대리인이 한 소송행위 효과를 당사자 본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절차적 정의에 반하여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고 볼 정도로 대리권에 실질적인 흠이 발생한 경우라야 한다.
② 한편 어떠한 소송행위에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5호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러한 소송행위에 기초한 확정판결의 효력을 배제하기 위해 마련된 재심제도의 취지상 재심절차에서 해당 소송행위의 효력은 당연히 부정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법원으로서는 위 소송행위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를 전제로 재심대상사건의 본안에 나아가 심리·판단하여야 하며 달리 소송행위의 효력을 인정할 여지가 없다.
 

2. 평석

(1) 소송행위의 흠과 소송상 구제방법
통설과 판례는 소송행위에 흠이 있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송행위에는 무효 내지 취소에 관한 민법의 규정이 유추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소취하나 상소취하가 착오, 또는 기망 내지 강박에 의한 경우에도 민법의 규정을 유추적용하지 아니하므로 이들 행위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설·판례는 소취하나 상소취하가 사기·강박 등과 같이 다른 사람의 처벌을 받을 행위로 인한 경우(사기죄, 공갈죄, 강요죄, 배임죄 등)에는 이를 당해 절차에서 고려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러한 재심사유(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5호)를 구제절차상 어떻게 고려하느냐에 관하여 통설과 판례는 입장을 달리한다. 통설은 유죄확정판결을 요구하지 않고 당해 소송절차 내에서 재심사유를 고려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판례는 통설보다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통설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판례는 소취하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처벌을 받을 행위로 이루어진 경우에 원칙적으로 유죄확정판결을 받는 등 일정한 요건 하에 이를 소송절차 내에서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대판 1997. 6. 27. 97다6124, 2004. 7. 9. 2003다46758 등). 다만 판례도 소취하에 관한 약정이 강요와 폭행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소취하서의 제출 역시 강요에 의한 경우에는 이러한 유죄확정판결에 의하지 않고서도 소취하의 약정뿐만 아니라 소취하서의 제출(소취하행위) 자체가 무효가 된다고 보고 있다(대판 1985. 9. 24. 82다카312,313,314).
민사법원이 다른 사람의 사기·강박 등의 행위가 처벌을 받을 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민사절차의 성질상 가능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통설의 견해는 따르기 어렵다. 따라서 소취하 등이 다른 사람의 사기·강박 등에 의한 것인 경우에는 유죄확정판결 등을 요구하는 판례의 입장이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다만 판례는 다른 사람의 행위가 처벌을 받을 행위로서 이에 대하여 유죄확정판결이 있을 것이라는 요건 외에도 이에 추가하여, 처벌을 받을 행위로 인한 소송행위가 외형만 존재할 뿐이고 이에 부합하는 의사 없이 이루어진 경우에만 소송절차 내에서 그 무효를 고려할 수 있다는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판 1984. 5. 29. 82다카963).

(2) 기존 판례 및 대상판결의 문제점
항소취하의 효력을 다투기 위하여 소취하의 효력을 다투기 위한 민사소송규칙 제67조가 준용되므로(민사소송규칙 제128조) 항소인 측에서 당해 항소법원에 기일지정신청을 하는 방법에 의하여 이를 다툴 수도 있다. 기존 판례의 태도에 의한다면 원심판결과 같이, 배임죄로 유죄확정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상소취하가 외형상 존재하고 이에 부합하는 의사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이상(즉 상소취하의 의사에 의하여 상소취하가 이루어진 이상) 상소취하는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비록 대리인의 행위가 상대방 등과의 담합에 의한 배임행위라고 하더라도 상소취하약정이라는 소송상 합의(사법행위)가 비진의표시를 유추적용하여 무효가 될지언정 이와 별개의 상소취하행위(즉 상소취하서의 제출행위)는 상소취하의 의사가 존재하는 한 유효하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이러한 기존 판례의 입장과 달리, 상소취하행위 자체에 가벌적 재심사유가 있는 경우(물론 유죄확정판결이 있어야 한다) 상소취하의 효력은 당연히 부정된다고 보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대상판결은, 기존 판례가 소취하 또는 상소취하와 관련하여 재심사유가 있는 경우 소취하약정 내지 상소취하약정과 이에 따른 소취하행위 내지 상소취하행위는 별개의 것임을 전제로 소취하행위 내지 상소취하행위 자체가 이에 부합하는 의사 없이 외형상으로만 존재할 때에 한하여 그 효력을 부인할 수 있다고 보는 것과는, 그 접근방식 내지 논리전개를 달리 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이를 의식하여, 대리인의 배임행위로 이루어진 상소취하가 재심사유가 되기 위하여 단순히 대리인이 문제된 소송행위와 관련하여 배임죄로 유죄확정 판결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대리인의 배임행위에 소송상대방 또는 그 대리인이 통모하여 가담한 경우와 같이 대리인이 한 소송행위의 효과를 당사자 본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절차적 정의에 반하여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고 볼 정도로 대리권에 실질적인 흠이 발생한 경우일 것을 요구한다. 대상판결이 기존 판례와 달리, 흠이 있는 소취하행위 내지 상소취하행위에 있어서 외형에 부합하는 의사가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절차적 정의에 반하는 실질적인 흠”이 있다면 그 효력을 부정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가져온 이유가 분명치 않다. 뿐만 아니라 “절차적 정의에 반하여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정도”도 구체적인 사안에서 어떻게 확정할 것인지 매우 애매하다.
이러한 대상판결대로라면 앞으로는 소취하 내지 상소취하의 흠과 관련하여, 판례는 매우 복잡한 방식에 의하여 적용되게 된다. 소취하행위 내지 상소취하행위가 형사상 처벌받을 다른 사람의 행위로 인하여 이루어졌음을 전제로, ① 소취하행위 내지 상소취하행위 자체가 강요나 폭행에 의한 경우에는 유죄확정판결을 받을 필요 없이 그 효력이 부정된다. ② 소취하행위 내지 상소취하행위가 사기·강박 등에 의하여 이루어진 경우 이러한 사기·강박 등 행위에 대하여 유죄확정판결을 받는 외에 소취하행위 등이 외형에 부합하는 의사 없이 이루어져야만 그 효력이 부정된다(사기의 경우에는 비록 소취하약정 등이 기망에 의한 의사표시로서 취소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취하행위 등이 무효가 되는 경우는 거의 예상할 수 없게 된다). ③ 소취하행위 내지 상소취하행위가 대리인 내지 대표자의 배임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경우 이러한 배임행위에 대하여 유죄확정판결을 받는 외에 소취하 등의 효과를 당사자 본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절차적 정의에 반하여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고 볼 정도로 대리권에 실질적인 흠이 발생하여야만 그 효력이 부정된다고 볼 수 있다.
기존 판례와 대상판결의 공통된 문제점은 대법원이 소송행위의 흠과 그 효력의 문제에 있어서 소송행위가 사법행위와는 다르다는 점에 집착한 나머지, 통설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무효의 인정에 매우 엄격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송절차를 조성하는 행위가 아닌, 소송절차를 종료케 하는 소취하 내지 상소취하의 흠에 있어서 판례의 이러한 입장은 너무나 형식논리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기존 판례는 유죄확정판결 외에 다른 요건을 추가하여 그 소송행위라는 외형에 부합하는 의사의 존재를 요구하고, 대상판결은 유죄확정판결 외에 상대방과의 담합 등 실질적인 흠의 존재를 요구하는 등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3) 결 어
기존 판례가 통설의 입장과 달리 소송행위의 흠에 관하여 매우 경직되게 보고 있는 상황에서 대상판결은 이러한 경직성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취하행위 내지 상소취하행위와 같은 소송종료행위가 다른 사람의 처벌받을 행위로 이루어졌다면 비록 이러한 행위가 소취하의사 내지 상소취하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유죄확정판결까지 받은 마당이라면 그 효력의 부정을 그토록 어렵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다. 국민을 위한 민사사법절차에서 구제방법을 경직되게 운용하고 있는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소취하 등의 소송행위가 다른 사람의 처벌을 받을 행위로 이루어지고 이에 대하여 유죄확정판결 등이 있는 경우에는 소송절차 내에서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