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민자기숙사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반값등록금 운운 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려도 아직은 아이가 어리다보니 그다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니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나도 고학생이었다. 그나마 국립대학이다 보니 학비 부담은 적었지만 대학교 1학년을 마치면 기숙사를 나가야 하는 시스템 때문에 친구와 함께 쪽방에서 자취를 하며 남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배낭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방학 때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고향 한번 제대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대학생활의 중심은 공부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난 그런 내 젊은 시절이 싫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난 그 말을 만든 사람에게 내 고생을 모두 팔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젊은 시절은 양희은의 노래 ‘숲’과 같았다. 내 젊은 날의 눈물인 숲. 너무나 아름답던 숲이었지만 고민과 눈물로 헤매던 숲이었다. 그게 벌써 20년도 넘는 시간 저편에 있다.
비록 1년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았다. 그것이 4년 내내 이어질 수 있었다면 내 젊은 시절은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TV프로그램을 보니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요즘 대학은 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으로 기숙사를 짓는단다. 학교는 민간 자본의 투자를 받아 기숙사를 짓고 민간 자본은 그 기숙사를 10~20년 운영하여 원금뿐만 아니라 투자 수익도 올리고 그 기숙사의 소유는 대학이 갖는 방식이란다. 말 그대로 기숙사가 최대의 수익 창출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맡겨지는 것이다. 놀라운 건 사학재단이 자산을 불려가는 방식이다. 참 돈 벌기 쉽죠잉! 대학은 시간이 지나면 기숙사가 거저 생기는 것이다.

전국 사립대가 쌓아놓은 적립금이 7조원이 넘는다는데 왜 대학이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기숙사를 지으려 하는 것일까. 대학 측 관계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보니 골프장을 지을 예산은 편성되어 있지만 기숙사 신축 예산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기숙사 신축과 운영은 경제성이 없어서라는데, 대학이 그렇게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른다면 국가는 대학에 보조금을 지급해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민자기숙사를 통해 대학은 손해볼 것이 없다. 아니 엄청난 이익을 누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합리한 제도가 왜 생겨난 것일까, 아니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대학이 민자 자본을 끌어들여 기숙사를 짓기 위해서는 법의 정비가 필요했다. 국회의 도움으로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대학을 포함시키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그 하부 법령들이 일사천리로 만들어졌다. 누가 보더라도 사학재단과 민간 자본을 위한 굿판이다. 그런 입법을 해온 사람들이 기존의 정치인들이다.

언론 매체에 얼굴을 내밀고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정치인들은 민자기숙사 제도와 전혀 무관할까. 그들은 전혀 무관한 것 같은 낯빛을 하고서 뻔뻔스럽게도 자신들이 더 나은 핑크빛 미래를 가져와줄 메시아처럼 행동한다. 그럼 그들은 그런 불합리한 입법이 이루어지는 동안 무얼 한 걸까. 나는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법조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들은 입법이라는 무기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 자리로 나아간 게 아니었던가. 너무 교과서적인가.

변호사가 되고 보니 국회의원이 갑자기 가깝게 느껴진다. 내가 그런 꿈이 있다는 게 아니라 주변에 계시던 동료 변호사님이 어느 날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대학 시절 알고 지내던 언니가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학창시절 때 사회 변화를 모색하던 이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입법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있음에도 사회가 그다지 쉽게 변하지 않는 건 무슨 이유일까. 이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세력이 있는 것일까. 가정사 개인사에 파묻혀 선거 때마다 투표권 행사에 무심하던 내가 민자기숙사 고발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과거의 향수에 젖어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도가 국회를 통해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있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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