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어릴 때 친구를 만났다. 대뜸 “요즘 넌 무슨 낙에 사냐? 변호사들 돈도 별로 못 번다는데…” 라고 한다. 죽마고우나 할 수 있는 위험한 덕담이다.
그 친구가 돌아간 다음에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요즘 무슨 낙으로 살고 있지?’ 그리고 궁금했다. ‘우리 연수원 19기들은 무슨 낙에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고, 몇 명 만나도 보았다.
우선 우리 기수는 고등부장, 검사장이 되고 있는 기수이다. 따라서 그것을 바라보는 분들이나 된 분들, 즉 그 근처에 있는 분들은 그 낙에 살 것 같다. 뻔해서 만나보지도 않았다.
그런 승진을 남의 일인양 묵묵히 사는 판사, 검사 동기들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변호사들을 만나보니 놀랍다. 나름의 다양한 낙을 개발하여 즐기고 계셨다. 여전히 일독에 빠져서 이것이 삶의 낙이라 우기는 분들, 역시 술만한 친구가 없다고 믿고 계시는 분들, 미술에 전문가적인 지식을 자랑하시는 분, 중국어·일본어 학원에 다니는 분, 샹송과 중국노래로 어학공부를 겸하시는 분…. 신기한 것은 예전 같으면 이쯤에서 현직을 나와 변호사 준비하는 낙, 새로운 직업을 갖는 낙도 감지될 텐데 그런 분위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삶의 낙은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존재확인 방식이다. 남자들의 존재확인 방식은 사회적인 지위와 돈이었다. 그런 면에서 예전 법조인은 편했다. 사법시험에 붙는 순간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력도 어느 정도 확보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덤으로 삶의 낙이나 재미까지 보장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절이 변하여 사회적인 지위와 돈만으로는 행복감을 주지 못하는 시대가 분명 도래했다. 설상가상으로 법조인의 경우는 변호사 수가 압도적으로 늘어나 생계보장투쟁 운운하는 시절이 되다보니, 더더욱 지위나 경제력으로 내 존재감을 확인하기 어려워졌다. 어쩌면 예전에 직함만으로 인정받고 행복감을 빌려올 수 있었던 기존의 ‘법조인’에게는 위기의 시간인지 모른다. 나의 존재감을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나만의 개인기를 갖추어야 하는 전혀 새로운 사회분위기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영국의 영웅 처칠 수상은 성격적으로 괴팍하고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많았단다. 그렇지만 그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전쟁에서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나름의 존재확인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란다. 그의 존재확인 방식은 바로 ‘그림 그리기’였다. 나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그림 그리기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곧 내 나이 50이다. 변호사로서 살아야 할 날보다는 노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이 남아있게 되는 시점이 점점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의 성공, 통장의 잔고, 사회적 지위같은 것들이 아닌 처칠의 그림 그리기와 같은 나만의 개인기를 개발하고 찾는 것을 큰 사건 하나 수임하는 것보다 좀 더 신경 써야겠다.
음… 그런데 생각하니 사건만 계속 잘 수임되면 그런 것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이래서 삶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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